
소리탄생1
가수이자 작곡가 김수철이 50여 년간 이어온 또 하나의 작업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 꺼낸다. 제목은 ‘소리그림’. 음악이 시간의 예술이라면, 김수철은 소리를 색과 필획(筆劃)의 리듬으로 번역해 공간에 걸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김수철-소리그림’은 그의 ‘소리=그림’ 세계를 한 자리에서 조망하는 전시다.
전시는 2026년 2월 14일부터 3월 29일까지 열린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김수철이 50여 년 동안 작업한 소리그림 1000여 점 가운데 100여 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주제는 사물·인간·행성·선(禪)이다. 전시 구성도 이에 맞춰 ‘소리 푸른’, ‘수철소리’, ‘소리탄생’, ‘소리너머 소리’ 등 4개의 장으로 나뉜다.
전시의 첫 장 ‘소리 푸른’은 ‘천지만물의 소리’를 다룬다. 김수철은 소리의 본색을 ‘푸를 청(靑)’으로 설정하고, 아크릴과 브러시 스트로크를 무한 반복·중첩해 화면을 쌓아 올린다. 점·선·면이 분리되기 전의 상태처럼 보이는 획면(劃面)은 폭포처럼 쏟아지는 굉음과 잔잔한 미세음 사이를 오간다. ‘푸른 소리’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소리의 결을 감각으로 ‘보이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소리너머소리9
두 번째 장 ‘수철소리’는 인간의 소리로 이동한다. 작가의 감정과 무의식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물감 덩어리로 짓이기고, 꼬고, 비틀어 점획 군집으로 만든다. 화면 곳곳에는 문자 같기도, 기호 같기도 한 형상이 스친다. 하지만 의미가 분명해지기 직전의 ‘옹알이’에 가깝다. ‘말=글자’가 되기 전 단계의 원초적 소리를 다시 ‘그림’으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소리탄생’은 전시의 분위기를 급격히 바꾼다. 김수철은 이 장을 ‘다른 행성의 외계인 친구와 오가며 나눈 이야기’에 비유한다. 메탈릭한 색감과 액성의 물질이 겹치고 흘러내리며, 원과 원통, 나선형의 반복이 우주적 질서를 떠올리게 한다. 둥글고 둥근 소리의 근원, 원음(圓音)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지막 ‘소리너머 소리’는 외물의 소리를 벗어나 ‘저절로 나는 소리’로 나아간다. 실재하지 않는 관념의 소리, ‘적멸(寂滅)의 소리’를 지워내며 그렸다는 설명처럼 화면은 한층 선적(禪的)으로 기운다. 여기서 소리는 명명되기 어렵다. 고요함조차 소멸한 상태, 말과 감정의 층위를 지나 ‘성(性)의 소리’로 들어가려는 시도에 가깝다.

수철소리1
이번 전시가 주목받는 건 ‘부캐’ 같은 취미 공개가 아니라, 반세기 동안 축적된 또 하나의 예술 언어를 본격적으로 제시한다는 점 때문이다. 김수철은 1978년 데뷔 이후 가요 12장, 국악 26장 등 총 38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88서울올림픽 전야제와 2002 한일월드컵 등 대형 국제행사 음악감독·작곡을 맡으며 장르의 경계를 가로질러 왔다. 그가 음악에서 보여준 ‘혼종의 감각’은 회화에서도 반복과 리듬, 색의 분출로 이어진다. 다만 감정의 폭발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소리들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전시 기간에는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된다. 2월 28일에는 정재승 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교수가, 3월 7일에는 방송인 양희은이, 3월 21일에는 김수철이 직접 관객을 만난다. 진행은 이번 전시 책임큐레이터인 이동국 전 경기도박물관장이 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