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25년 홍수로 침수된 한강 모습이다. 사진=서울역사박물관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라 불린 을축년 대홍수(乙丑年 大洪水)가 1925년 7~9월 동안 총 네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특히 7월 9~11일과 15~19일 두 차례는 한강 연안에 비가 집중되어 경성과 그 일대가 피해를 입었다. 현재까지도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수해가 일어날 때마다 언급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미증유의 대홍수]포스터.jpg](/editor/cheditor/attach/2025/20251003162139_fodiyksu.jpg)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최병구)은 을축년 대홍수 발생 100년을 맞이해 <미증유(未曾有)의 대홍수: 1925 을축년>을 11월 16일(일)까지 기획전시실(1층)에서 개최한다.
고난을 전국적으로 함께 이겨낸 경험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 1부는 을축년 대홍수의 원인과 피해, 구제 등 재난 당시에 일어난 일을, 2부는 을축년 대홍수가 도시 경성과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3는 현대의 한강 홍수 관리와 앞으로 도래할 기후 위기 시대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을축년 대홍수는 단지 1925년 여름의 일시적 피해에 그치지 않고, 도시에서의 치수 시설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 이후 도시계획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수해의 대명사로 남아 현대까지도 수해에 대한 경계를 강조할 때 소환되곤 하며, 고난을 전국적으로 함께 이겨낸 경험은 재난에 대한 사회적인 연대로까지 이어졌다.


(위) 1925년 당시 침수된 서울 이촌동 일대 모습이다.
(아래) 그해 수해로 한강 인도교가 끊어졌었다.
홍수는 경성 도시계획의 기준
당시 경성 도시계획에 있어 홍수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어, 조선총독부와 경성부 사이에 도시계획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총독부는 치수 공사가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라 믿고 영등포 등 한강을 건너 행정구역을 확장하고자 하였으나, 경성부에서는 ‘고지도시론’을 내세우며 치수 부담이 적은 산지와 한강에서 먼 지역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수주 변영로가 기억한 '을축년표류기(乙丑年漂流記)'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1898~1961년) 선생의 저서 《명정(酩酲) 40년》(1953)에 을축년 대홍수에 얽힌 일화가 나온다.
변영로 선생의 저서 《명정40년》(1953)
<을축년표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변영로는 무위무수의 세월을 보내던 중 을축년 대홍수를 맞는다. 그 해는 바다와 하늘이 뒤집힌 듯 퍼붓는 장대비가 며칠이고 쏟아져 모든 교통이 두절되고 사람마다 노아의 홍수를 떠올리던 때였다. 그는 혜화동에 살면서도, 그런 비 속에 종로의 주정(酒亭)으로 부름을 받고 나간다. 초대자는 고 강상희, 자리는 술꾼과 말썽꾼이 뒤섞인 시끌벅적한 술판이었다. 변영로는 결국 끝까지 진취(盡醉)하고 술집을 나섰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인력거를 타고 귀가길에 오른다.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폭우 속에서 인력거꾼은 수영하듯 짐을 끌고 갔고, 그는 지쳐 있었을 차부의 고통을 상상도 못 한 채 어느 순간 “다 왔습니다”라는 말만 믿고 내린다. 내린 곳은 집 문전이 아니라 물에 잠긴 미지의 공간, 사방은 빗소리뿐이고 지척도 분간할 수 없다. 그는 은의 장막 같은 폭우 속을 발끝 감각만으로 더듬어 가다 결국 무릎까지 차오른 급류에 휩쓸려 버린다. 순간 모든 것을 단념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몇 시간 뒤 그는 모래언덕 같은 곳에 누워 깨어난다. 희미한 눈으로 둘러보니 사방이 격랑이고, 자신은 어떤 작은 사구(砂丘) 위에 얹힌 채 살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 그가 빠진 곳은 혜화동 석교 근처였고, 그가 발견된 곳은 지금의 서울대 부근, 급류와 복사흙이 밀려와 형성한 임시 모래언덕이었다. 그는 천우신조로 표류 끝에 그 위에 얹혀 살아난 것이었다.
이 글에서 변영로는 한낱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생사의 체험을 술 취한 삶, 시대의 혼란과 겹쳐 유머와 자조로 그려낸다. 폭우·홍수·표류는 그의 개인사와 당시 사회를 함께 비추는 은유가 되어, 술과 표류 사이에 선 지식인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3. [참고] 경성부근 대수해실황 사진엽서세트(京城府近大水害實況繪葉書) (3).jpg](/editor/cheditor/attach/2025/20251003162400_zeoafmef.jpg)
사진=서울역사박물관
다음은 수필 속 문장이다.
<하여간 나는 대취하여 술집을 나섰는데, 내가 잡아탔는지 누가 태워들 주었는지 상세事는 至于今 알 길이 없는 중, 인력거 한 대에 탁신托身하여 전기前記한 혜화동 내 우거를 찾아가려 한 모양이었다. 사정없이 내리퍼붓는 비와 싸우며(물론 전등도 없었다) 질주라기보다 무거운 짐을 끌고 수영식으로 가던 그때 그 당시 거부車夫의 고통이 어떠하였을지! 기진맥진하였을 것은 상상키 어렵지 않다.
얼마를 집 있는 방향으로 걸었는지, 갑작스러이 차를 멈추고,
“다 왔습니다. 댁 문전이올시다.”
하는 차부 말에,
“이 우중에 오긴 참 빠르게 왔다.”
하며 어련하라는 듯이 앞뒤 생각 않고 인력거에서 내렸다.
막상 내리고 보니 내 집 문전은 그냥 水宮에를 들어선 듯한데 이제 와서는 술도 언제 먹었냐는 듯 다 깨버렸다. 두리번두리번 나는 사위四圍를 둘러보려 하였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귀에 들리느니 요란스런 빗소리뿐이었다.
나는 비에 흠뻑 젖은 채 수건과 옷자락으로 얼굴을 닦고 눈을 부비며 방향을 알아보려 하였다. 문자 그대로 지척을 분간치 못했다. 그때 나의 실감은 앞뒤 진로를 막는 일대 '銀甁'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었다.
(중략)
좌우 연도에 혹여나 하는 석유불 하나 빤짝하는 창호 하나도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향하는 곳이 집 가는 길이여니만 치고 나는 걸었다. 발등 위로 흐르는 물이 차츰 무릎에까지 범하게 되며 전후좌우 뢰뢰轟轟한 물소리 귀를 찢는 듯, 나는 분명코 어느 급류권 내에를 들어선 것을 직감하였다.
그러나 벌써 시이만의時已晩矣, 퇴각 개시도 하기 전에 뒤밀려드는 격랑에 휩쓸려 풍덩 하고 나는 걷잡을 새 없이 어디인지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순간, 이제는 그만이라고 모든 것을 단념하는 것이 나의 의식의 최후였다. (하략)>

(위) 경성부 수재도(京城府水災圖). 사진=서울역사박물관
(가운데) 1966년 7월 24일 오후7시 33분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우로 29명이 사망하였다. 사진은 7월 25일 제1한강교(지금의 한강대교)와 중지도(지금의 노들섬)가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조선일보 헬리콥터인 청룡호가 기상에서 항공촬영한 모습이다. 사진=조선DB
(아래) 2022년 8월 9일 오전, 거센 폭우가 휩쓸고 지나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일대 차로에서 침수된 차량과 출근 차량이 뒤엉켜 있다. 사진=조선DB
광복 이후 현대 서울과 치수 사업
6.25 전쟁 중에도 서울은 한강 제방이 무너지는 일이 있었고, 주민들이 흙자루·임시 목책으로 범람을 막는 수준에 머물렀다.
1950년대 후반부터 정부가 국제 원조 자금과 함께 제방을 보수했다.
1960년대 이후 한강 제방 확충 사업이 시행돼 정부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 대규모 개발과 병행해 서울 시내 한강 본류와 지천(청계천·중랑천 등)에 임시 제방을 보강했다.
1970년대 들어 서울 인구가 급증하고 산업단지가 형성되면서, 정부는 한강 개발과 치수를 동시에 추진하는 중앙집중 치수 정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본격적인 한강개발이 시작됐고 여의도, 잠실 등에 대규모 방수로 및 제방이 설치됐고 팔당댐과 연계한 유량 조절도 가능해졌다. 한강종합개발사업(1982~1986)으로 제방을 확장·보강하여 한강 제방을 40km 이상 축조하면서 치수 대책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현재도 기후 변화로 인한 국지성 호우로 수해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2022년 8월 폭우로 강남 일대, 관악·동작 저지대 침수된 일이 있었다. 국지성 호우에 대비한 배수펌프장 용량 문제가 관건이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을축년 대홍수를 통해 홍수의 심각성을 돌아보고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극한 호우로부터 안전한 미래 서울을 다 함께 고민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모두 무료로 관람 가능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금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 월요일은 휴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