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육군사관학교
지난 5월 30일 국가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생도전투대대’에 편성돼 전쟁 초기 북한군에 맞서 싸운 ‘육군사관학교 생도1·2기’를 ‘2025년 6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38선 전역에서 야포 사격과 함께 옹진반도와 개성, 전곡, 포천, 춘천, 양양 등지를 통해 전면 남침을 개시했다. 북한군 제1군단은 ‘서울 점령과 국군 주력의 격멸’을 목표로 경기 연천과 운천을 거쳐 의정부로 이어지는 지역에 전력을 집중했다.
북한군은 경기 포천에서 퇴계원으로 이어지는 47번 국도의 분기점인 내촌면 내리 일대는 적의 수중에 들어가면 의정부와 포천 방면 아군의 퇴로가 차단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시, 이 지역을 담당하던 국군 제7사단은 전황의 급박함 속에 병력을 재배치하게 됐고, 해당 지역은 방어 공백 지대로 남게 됐다. 중서부 전선의 전황이 급격히 불리해지자, 채병덕 총참모장은 이준식 육군사관학교장(당시 준장)에게 “생도들로 1개 대대를 편성해 경찰대대와 함께 372고지와 330고지(포천)로 출동, 남침한 적을 격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임관을 불과 보름 앞둔 1기생과 입교한 지 25일밖에 되지 않은 2기생 등 총 생도 539명이 교육훈련을 중단하고 ‘생도전투대대’로 편성됐다.
같은 날인 6월 25일 오후 4시, 전투 편성을 마친 생도들은 민간 차량에 나눠 타고 기산리 방향으로 출동했으며, 포천에 있는 372고지의 방어를 맡았다. 철야 경계 태세 속에서 밤을 지새운 생도들은 다음날 진지 구축을 시작했으며, 뒤이어 도착한 경찰대대 300여 명은 372고지 동북쪽의 330고지를 방어했다.
6월 26일, 의정부를 점령한 북한군 제3사단 9연대는 경찰대대가 방어 중인 지역으로 진출했다. 경찰대대는 화력을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밀려 고지 남쪽으로 후퇴해야 했고, 북한군은 생도전투대대를 향해 박격포와 대전차포 등을 앞세운 정면 공격을 했다. 이에 생도들은 보유한 화력을 총동원해 북한군을 격퇴하며 응전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새로운 병력을 투입해 재차 공격에 나섰고, 생도들은 백병전을 벌이며 싸웠다. 같은 날 저녁, 생도전투대대는 태릉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고 철수했다.
이후에도 생도들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북한군의 남침에 맞서 지연전과 유격전을 전개했으며 생도 13명은 서울에 남아 잔류한 병력과 함께 ‘불암산 유격대’를 결성해 끝까지 적에 맞서 싸웠다.
육군사관학교 생도1·2기는 주요 전선에서 활약 6·25전쟁 기간 총 245명이 전사했다.
글=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