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이후 내 자신이 줄곧 정체되어 있다고 느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취업준비를 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내 인생이 달라진 점은 없었다. 자격증을 따고 토익 점수를 취득하기는 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움직임은 하지 않았다. 자소서를 쓰고 회사에 지원하는 진짜 취준은 하지 않았었다. 나는 아직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약 3년이 제 인생의 가장 어두운 나날들입니다. 당시에 언니는 저를 히키코모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람과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당장 재미있고 비용이 들지 않는 인터넷에 빠져 살았습니다. 방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잡생각이 많아지고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인터넷의 온갖 정보들을 보는데 하루를 보내고 인터넷의 부정적 이슈들에 쓸데없이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의 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없었습니다.” 

(지난 1월 12일 열린 국회 '청년의 고립' 해소를 위한 정책 토론회 중에서)

코로나19 이후에도 고립된 청년들이 늘고 있다. 미래 사회의 일꾼이자 버팀목인 청년들이 점점 외톨이가 되고 있다.

‘고립 청년’은 일종의 19~30대 외톨이를 말한다. 가정의 붕괴나 학업실패, 취업실패, 학교폭력 피해, 학교와 직장 내 집단 따돌림, 1인 자취 생계위협, 그리고 신경정신과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경우다.

서울시가 지난해 5~12월 사이에 전국 지자체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지난 1월 발표했다. 서울지역 청년 중 고립·은둔 청년 비율이 4.5%(고립 3.3%, 은둔 1.2%)로, 이를 서울시 청년 인구에 적용하면 최대 12만 9000명으로 추정됐다. 또 전국 단위 청년인구로 확대하면 최대 약 6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서 서울시가 ‘고립 청년’이란 규정을 내리기를, 정서적 또는 물리적으로 최소 6개월 이상 고립 상태로 정했다. 또 ‘은둔 청년’은 집 안에서만 지내며 6개월 이상 사회와 교류를 차단하고, 최근 한 달 내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청년으로 범주화시켰다. 만약 범주 기준을 조금이라도 좁히면 더 많은 청년들이 고립되어 있거나 은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립되거나 은둔하는 상황에서도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니트(NEET, Neither in employment nor in education or training)와 구별된다. 그러니까 고용이나 교육 훈련에 포함되지 못한 백수가 니트 범주에 든다.

여기에 히키코모리 유형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인데, 가족 외 인간관계를 거의 가지지 않고 집안에서만 지내며, 집밖으로 나가도 거의 사람과 일정한 관계를 맺지 않는 이들이다.

일러스트=조선DB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9년 34만 명이었던 고립청년 수가 2021년 54만 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코로나19 여파 때문인지 2년간 20만명, 60% 이상 증가했다. 청년의 고립이 더는 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고립 청년을 두고 은둔 청년, 자립 준비 청년, 구직단념 청년, 금융취약 청년, 가족돌봄 청년, 장기 미취업 청년 등등으로 이름 붙이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을 뿐 거의 같은 의미다.

고립 청년은 결국 연애나 결혼뿐만 아니라 자녀 출산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사회적 동력(動力)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고립과 은둔은 장기적으로 고독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일러스트=조선DB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만 19세에 은둔을 시작한다고 가정하면 은둔의 경제적 비용은 은둔자 1인당 약 16억원에 이르고 25세에 은둔을 시작하면 약 15억원, 45세에 은둔을 시작해도 약 10억원의 사회적 은둔 비용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성아 부연구위원은 “은둔자에 대한 공적 지원은 당사자와 가족의 심리사회적 활력 회복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고립되거나 은둔하고 있지 않은 다른 주민들과 어울리는 사회로의 재통합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각기 다른 이유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54만명의 청년들이 다 함께 대한민국에서 제 역량을 마음껏 필칠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정부 여당이 튼튼한 징검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했다. 윤 의원은 지난 1월 12일 (재)청년재단과 함께 청년의 고립 해소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자립준비청년협회 주우진 회장은 “자립준비 청년들의 사회적 고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친부모와의 관계회복, 지역사회 중심의 지속가능한 이웃(지지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아울러 우울과 대인기피나 고립 등 심리정서의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발굴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흐름도(2023년 기준). 자료=서울시

이와 관련 서울시는 지난 4월 24일 ‘고립·은둔청년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주민센터 복지서비스 신청·조사·확인 시 상담 단계에서 고립·은둔 대상 여부가 감지되면, 사업안내와 연계의뢰가 이뤄진다. 통반장 등 지역사회 내 접점을 활용해 고립‧은둔 청년에게 정책을 안내한다.

고립·은둔 청년의 가족, 친구 등도 상담·신청 가능한 상담센터도 운영한다.

‘활동형 고립’ 청년에게는 사회로 나가는 힘을 스스로 키울 수 있도록 대인관계 기술, 사회복귀 훈련, 조직 적응력 향상 프로그램, 취업역량 교육 등을 제공하고, ‘비활동형 고립’ 청년에게는 자아 및 진로 탐색, 관계형성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은둔형’ 청년에게는 일상 회복을 위한 신체건강·관계건강·정서건강 프로그램과 함께 성격유형 검사, 강점찾기 등 자기이해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개별 회복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서울청년문화패스’를 비롯해 자기주도적 건강관리를 돕는 ‘손목닥터9988’, 정신질환 진단 5년 이내 청년을 대상으로 치료비를 지원하는 ‘고위기군 전문치료 지원’ 등 서울시 대표적인 사업들도 패키지 프로그램에 포함될 예정이다.

한편, 2023년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은 서울 거주 만19~39세 청년이 신청할 수 있다. 참여 신청은 청년몽땅정보통 누리집 및 전화(02-6953-2520)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이 대리 신청하는 경우 비대면 상담과 내방 상담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