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중간고사 앞두고 대치 학원가에서 일어난 마약범죄, 생각보다 더 체계적이다 : 월간조선

중고등학생들이 밤늦은 시간 걸어다녀도 안전한, 학생들에게는 '안전지대'인 대치동 인근에서 최근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마약시음사건과 납치살인사건이다. 두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사건 발생 장소가 심야에 걸어다녀도 안전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건은 대치동 주민은 물론 학원가를 이용하는 수많은 학부모들에게 큰 걱정을 가져왔다.

특히 마약사건은 중간 조직과 제조 조직 일부가 검거됐지만, 이밖에 대치동 학원가의 특징을 잘 아는 일당까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진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

대치동 학원가 큰길에서 학생들에게 마약음료를 시음하게 하고 그들의 학부모에게 "당신 자녀가 마약을 했다"고 금전을 요구하는 협박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4월 3일. 일반적으로 4월의 대치동은 지난해 입시결과를 분석하고 향후 입시를 앞둔 학부모를 상대로 이를 알리는 입시설명회, 그리고 4월말 중간고사를 앞둔 내신특별반 개강 등으로 분주한 분위기다.

또 여름과 겨울 방학 기간의 대치동은 전국에서 몰려든 학생과 학부모들로 가득하지만, 4월 특히 평일은 방과 후 학원 왕래가 가능한 8학군(강남-서초) 중고등학교에 다니거나 또는 특목고, 자사고에 다니면서 강남-서초 등 가까운 지역에 사는 학생들만이 오가는 시점이다.

즉 범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중산층 이상 가정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중간고사를 앞두고 성적과 집중력때문에 고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 범행 시점을 치밀하게 조사했다는 뜻이다. 총책과 제조, 유통 외에 또 다른 일당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범인들이 범행에 앞서 사전조사를 하며 해당 거리를 자주 오가는 특정 학생들을 노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학생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부주의하다고 탓할 이유도 없다. 그 지역에서는 건강음료와 에너지음료 시음회도 종종 열리고 학생들은 에너지음료를 애용한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체력을 위해 건강식품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학생이 학원가 시음행사에서 받은 것을 먹어보는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에게 마약음료를 건넨 일당 중 일부가 CCTV에 찍힌 모습.

사진=강남경찰서

이번에 범행이 이뤄진 장소인 은마사거리는 학원가의 중심 중 중심이다. 대치동 학원가는 워낙 넓은 범위에 펼쳐져 있어 학원가 초보자는 길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은마사거리는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중심지역이다. 워낙 중심가이다보니 저녁시간대에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어느 식당이건 밥 한 끼 먹기 힘들 정도로 붐비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범인들은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 음료"라며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간 크게’ 은마사거리에서 마약음료를 나눠주고 부모를 협박한 일당은 대체 이 나라의 수사당국을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대한민국은 2015년 전까지는 마약청정국이었지만 그 이후 지위를 잃었다. 문재인정부때부터 검찰의 마약수사 담당부서는 계속 축소돼왔다. 2018년 정부는 검찰 조직을 줄이며 마약 담당 부서를 통폐합했다. 대검 강력부 내 마약수사부서는 없어졌다. 2020년 대검 마약과가 조직범죄과에 흡수됐고,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부터는 검찰이 마약 밀수 중에서도 500만원 이상만 수사할 수 있게 됐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지난해 말 “학생 마약사범이 10년간 5배가 늘었고 20-30대 비중이 50%를 넘긴 지 오래”라며 정부가 마약범죄를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이후 마약단속이 확대된 것은 물론, 병원에서 마약성분이 포함된 다이어트악 처방도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