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중구 서문시장 국수골목 모습이다. 4000원 하는 국수, 수제비 등을 먹기 위해 시민들로 붐빈다. 사진=조선DB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과 상인을 만났다. ‘대구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작년 8월 이후 7개월 만이고, 김건희 여사는 지난 1월 따로 서문시장에 갔다.
윤 대통령은 “대구 시민의 땀과 눈물이 담긴 역사의 현장인 서문시장에 우리의 헌법정신(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 법치)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강조했다.
역대 대통령, 대선 후보, 정치인마다 ‘민심 온도’를 체감하러 서문시장을 찾고 있다. 전통시장 몰락은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서문시장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위상과 지명도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이 서문시장에 대해 “대구 시민의 땀과 눈물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왜 중세와 근현대를 넘나들며 “땀과 눈물의 현장”이 서문시장일까.
시장의 역사를 더듬어 보자. 2015년 대구시가 펴낸 《대구 전통시장 스토리》를 인용해 소개한다. 이 책에는 대구지역 전통시장 3곳을 소개하는데 서문시장 외에 교동시장, 평화시장이 있다.
조선 말기 서문시장을 중심으로 한 대구의 시가지 모습. 1895년쯤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 속 빨간 동그라미 안에 보이는 정자가 북후정이다. 북후정은 서문시장 초입에 있었던 정자로 이 곳에서 1907년 2월 21일 국채보상운동 취지서를 낭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조선DB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
대구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에 형성되었다. 조선시대에 평양장, 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 중 한 곳이었다.
처음부터 서문시장이 전국적인 장터였던 것은 아니었다. 대구지역은 조선 중기만 해도 군수가 주둔하는 조그마한 고을로 영남 지방에서도 낙후된 곳이었다. 서문시장 또한 대구군 성벽 북문 밖에 초라하게 자리잡은 시장이었다. 과거엔 ‘대구장’이라 불렀다.
이 대구장이 서문시장으로 번창한 것은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1597년) 양 왜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양난(兩亂) 이전 대구읍성은 남해로 통하는 큰길에서 완전히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난이 일어났을 때 왜(倭)의 주력 부대는 큰길 대신 대구로 진격하여 이곳을 그들의 아성으로 삼았다. 대구는 영남지역의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분지였던 것이다.
북쪽으로는 금호강, 서쪽으로 지하 강 수로가 천연적으로 발달되어 있고 남으로 비슬산(해발 1084m), 북으로 팔공산-가산(해발 1193m, 902m)이 버티고 있다.
두 번의 난(亂)을 통해 대구가 정치적 군사적으로 영남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지리적 구색을 갖추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할까.
낙동강을 경계로 좌도, 우도로 나눠졌던 경상도는 양난 이후 통합되었다. 이를 다스릴 수 있는 경상감영(慶尙監營,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99)이 선조 34년인 1601년 대구에 들어서게 됐다. 경상감영이 대구에 정착하면서 대구는 정치, 경제적 요충지가 됐다.
옛 서문시장 모습. 사진=대구시가 펴낸 《대구 전통시장 스토리》(2015)
경상감영의 설치와 대구장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되고 행정권이 하나로 통일되자 낙동강을 이용한 수로교통과 그것을 타지와 연결하는 육로교통이 발달하게 되었다. 낙동강 수로로 남해안의 소금, 미역, 김, 어물 등 온갖 해산물이 돛단배에 실려 올라오게 됐다. 낙동강을 통해 많은 왕래가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대구의 경제적 위치가 크게 부각되었다.
여기다 1677년 대동법 실시와 대구약령시의 개설은 대구의 경제적 발달을 가속시켜 주었다. 종래까지 일반 백성들이 정부에 바치던 현물 공납을 포와 쌀로 대체하면서 토지의 생산물 중에서 일정량의 미포만 바치고 나머지 각종 농산물은 모두 시장으로 모여들어 거래되기 시작했다.
또한 약령시가 활성화됨에 따라 대구는 영남의 중심 상권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거래량이 급격히 늘어나자 대구장은 종래의 북문 밖(현재 북성로에서 태평로로 통하는 미창골목 언저리로 추정된다.)에서 서문 밖, 즉 오늘의 대구 중부경찰서 서문지구대(옛 동산파출소.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99길 12) 언저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매월 2일, 7일에 개최되던 도매업 중심의 대구장(서문시장)과 4일 9일에 개장되던 대구신장(동문시장)은 경상도내 각지의 5일장을 연결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1770)에 따르면 당시의 대구의 시장들은 인접한 고을의 장시와 부분 통합을 이루어 하나의 시장망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제9회 서문시장 패션 대축제가 열린 2009년 10월 12일 오후 부보상으로 분장한 상인들이 대구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인근 도로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보부상의 도시 대구,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 대구
일제 때 간행된 《대구부사》(1943)에 따르면 19세기 말엽의 대구 인구는 약 7만5000명.
가구 수는 약 1만5000호였는데 직업별 인구구조는 신분상 지배계급에 속하는 양반과 준 양반층 비율이 총인구의 20~25%, 서민층이 60%, 노비층이 8% 가량이었다. 서민층 60% 가운데는 보부상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보부상은 보상(봇짐장수)과 부상(등짐장수)을 통칭하는 말로 시장을 중심으로 행상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를 매개하였던 전문적인 상인을 일컫는다. 조선 중기 이래 발전하기 시작한 지방의 5일장은 거의 보부상들의 독무대였고,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대구는 보부상의 도시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조선 후기 보부상단은 철저한 조직 체계를 갖춘 집단으로 떄로는 조정의 명령을 수행하는 행동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로 알려진 서상돈(徐相敦, 1851~1913)은 낙동강을 무대로 쌀, 소금, 베, 창호지, 기름 등을 배로 실어 나르면서 부산에서 안동까지 800리 길을 누비던 청년 보부상이었다.
일제하로 접어들면서 교통망이 발달하고 점포가 크게 늘어나면서 대구 상권은 급속히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1905년 경부선 개통, 1907년 부산역과 부산항을 잇는 궤도 부설로 철도수송과 해상수송이 접속된 것은 대구 상권을 인근 지역을 확대시킨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는 대구를 부산의 상업권에서 벗어나게 만든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3.8만세운동과 서문시장의 이전
1919년 대구 3.1운동의 발원지가 대구장(서문시장)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울, 평양 등 주요 도시로부터 시작된 3.1운동이 대구에서 3월 8일 전개됐는데 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구장의 장날이 8일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시작된 만세운동은 미션스쿨인 대구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등의 학생들과 종교인, 상인 및 주민 등 1000여명의 군중이 가세해 대구장으로부터 달성군청(동성로 대구백화점)까지 행진했다.
대구장은 1922년 9월 29일 서남쪽에 있던 천왕당지를 매몰하여 현 위치로 옮기게 됐다. 현재 서문시장 주소는 ‘대구 중구 대신동 115-38번지’, 도로주소는 ‘중구 달성로 50’이다.
서문시장 이전에 대해 총독 부관은 도심에 주거지와 신작로 상권을 확장하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정치적인 배경도 한몫을 차지했다.
즉, 서문시장이 기미년 3.8만세운동 집결지였던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던 터라, 당시 정치 경제의 중심이었던 대구부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1923년경 서문시장을 완전히 이전시켰으며 그 규모는 2만5000여평이었다. 계성학교 담장을 따라 건어물 가게가 있었고, 서쪽 끝머리에 옹기전이 있었으며 그 옆 구석진 곳에서 말과 소를 거래하였다. 장날은 2, 7일(5일장)이었다.
서문시장을 찾은 대선 후보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 직후 서문시장을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조선DB, 한나라당 제공
대통령 당선자 시절,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4월 12일 낮, 첫 지역순회 일정으로 서문시장을 찾아 환영 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조선DB
6.25 전쟁과 오늘의 서문시장
8.15 해방과 6.25 전쟁은 서문시장을 전국 최대의 의류 도매시장으로 도약시켰다.
전쟁 기간 중 대구에는 피난민들이 몰려 인구가 급증했고 군사 중심지가 되었다. 다행히 일제가 건립했던 섬유공장 등 관련 시설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시장이 상설화되면서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은 다투어 생필품을 시장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또 휴전 후 정부는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기 위해 섬유 관련 산업을 육성했다.
결국 대구가 섬유도시 기반을 갖추는 것과 함께 서문시장은 전국 최고의 포목 판매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서문시장 포목부를 중심으로 한 시장 주변에는 섬유도매상이 집중되어 대구지역 도매상의 50% 이상이 서문시장에서 영업을 하는 정도였다. 1950년대 서문시장의 상권은 영호남 및 강원도 일부까지 뻗쳤고 직물 도매업은 특히 전국 섬유시장을 석권했다. 전쟁으로 파괴된 사업시설의 복구가 이뤄지고 각 지역 시장들이 제 기능을 회복하면서 서문시장의 위치는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같은 화학섬유가 시장을 장악하면서 서문시장의 상권은 더욱 위축되었다.
거기다 197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 따라 제조업 분야의 성장이 진전되고 대량 유통기관의 등장, 경부 고속도로 개통 등 일대 변혁이 이루어졌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구미, 포항 등 신흥 지방산업도시가 형성되면서 서문시장의 상권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시장 내 도매 점포들은 점차 주변 지역으로 분산되어 갔다.
현재 서문시장은 오랜 침체 속에서 다시 옛 서문시장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아케이드 실치 및 리모델링을 통해 시설의 현대화와 고객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을 확충했다.또 위생과 편의시설을 개선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