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음대 안희숙 명예교수(安熙淑·피아노 전공) 제자 모임인 ‘희연회(회장 이정재)’의 제16회 정기연주회가 19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렸다. 작년에는 5월의 따스한 봄밤에 열리더니 올해는 10월의 깊어가는 가을밤에 열렸다.

즉흥곡이나 환상곡을 들려주는 피아노 독주 대신 두 사람의 연주자가 ‘네 손’으로, 혹은 세 사람이 ‘육 손’, 심지어 네 사람이 ‘팔 손’으로 연주하는 ‘색다른’ 듀오 연주로 가을밤을 웅장하게 수놓았다.

이런 듀오 콘서트는 낯설었으나 피아노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귀가 얼얼해서 연주회가 끝난 지 12시간이 지났지만 환청처럼 무언가의 선율이 들렸다.

특히 스승인 안희숙 교수의 구순(九旬)을 축하하는 자리여서 뜻깊은 연주회였다. 사제가 모두 서로의 감동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으리라.

꽃다발을 든 이가 안희숙 연세대 명예교수다. 29년여 동안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제자들과 함께 16번째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사진=희연회 제공

선곡을 고심한 흔적이 느껴졌다. 색채가 선명한 멜로디로 채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각하고 딱딱한, 슬프거나 비장감이 느껴지는 곡들은 없었다. 그렇다고 줄곧 피아니시모로 다가서는 느리거나 달콤한 곡도 없었다. 고운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축제 같은 곡들로 가득했다.

포르티시모로 연주하는 구스타비노의 <세 개의 아르헨티나 로멘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에서 오케스트라적인 화려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날 연주회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을까. 탄력 넘치는 연주로 선명한 선율의 색채를 객석에 넘겨주었다.

바이올린과 함께 한 엘가의 <사랑의 인사>, 그 유명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과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이 가장 귀를 충족시켜줬는데 아무래도 자주 듣던 익숙한 곡 때문이었으리라. 귀를 즐겁게 하는 ‘오곡’ 만찬을 객석에 떠먹였다.

곱씹어 보면, 비제의 <카르멘 환상곡>을 두 대의 피아노로 편곡한 맥 윌버그의 곡도 흥미로웠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을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그리그 곡 역시 연주자들의 진심이 느껴졌다. 다시 듣고 싶어졌다.

끝 곡인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연주는 시종 웅장하고 화려했는데, 마치 영웅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이 원곡에 담겨 있듯, 구순을 맞이한 스승에게 헌정하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듀오 피아노 콘서트 후 희연회 제자들이 모두 나와 안희숙 교수의 구순을 축하했다. 사진=희연회 제공

또한 안희숙 교수가 1968년 3월 24일 국립국장에서 연주한 나운영(羅運榮, 1922~1993, 연세대 음대 학장 역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을 수 있어 행복한 밤이었다.

무엇보다 올해는 ‘한국 음악 여명기’를 살찌운 나운영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날 연주회에 선생의 장녀 나효선(羅孝璇) 동덕여대 명예교수와 아들 나건(羅鍵) 나운영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함께 해 자리가 더 빛났다. 나효선 교수는 이날 연주회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스승의 구순을 축하하기 위한 화려한 ‘불꽃 축제’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안 교수는 또 2010년 6월 9일 연주한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를 영상으로 들려주었다. 이날 직접 연주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영상으로나마 뭉클한 감동이 듣는 이의 귀와 심장, 뇌로 이어져 충만함을 선사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도한다.

어느 음악평론가는 “목사나 신부의 설교를 듣기보다 바흐의 칸타타나 조곡 하나를 듣는 편이 훨씬 복음적”이라고 했는데, 이날 희연회의 가을밤 연주도 충분히 ‘복음적’이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