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과 수도권에 엄청난 양의 장맛비가 쏟아졌다. 문득 레드 제플린의 4집 앨범 《언타이틀드 포트 앨범(Untitled fourth album)》(1971)에 실린 ‘When the Levee Breaks’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When the Levee Breaks’는 존 본햄의 드럼 비트, 로보트 플랜트의 금속 같은 보컬과 맹렬하고 오싹한 하모니카 연주가 일품. 록 역사상 가장 훌륭한 블루스 명곡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 앨범에는 한국인이 특히나 좋아하는 8분이 넘는 대곡 ‘Stairway To Heaven’이 담겨 있다.)

레드 제플린의 4집 앨범 《언타이틀드 포트 앨범(Untitled fourth album)》(1971)

오리지널 곡은 1929년에 만들어졌다. 참혹했던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The Great Mississippi Flood)에 영감을 받아 부부 듀오인 멤피스 미니(Memphis Minnie)와 캔자스 조 맥코이(Kansas Joe McCoy)가 작곡했다. 이를 레드 제플린이 1970년대식 도시적 교향악 블루스로 재구성한 곡이다.

존 본햄의 쏟아지는 홍수와 같은 해머 드러밍 사운드, 심장을 울렁울렁하게 만드는 무거운 지미 페이지의 기타, 현란한 혹은 비통한 로버트 플랜트의 하모니카 연주가 듣는 이를 정신없게 만든다.

사운드는 제방(levee)에 몰아치는 악천후, 잿빛 폭풍우를 형상화시키는 듯하다. 폭우로 삶이 부서졌던 이재민의 끔찍한 고통이 연상하면 더 오싹하다. 전체 곡 길이가 7분 4초인데 강렬한 전주(前奏)가 1분 25초 동안 이어진 뒤 찢어질 듯한 보컬이 시작된다.

여기다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지미 페이지의 리버스 에코(Reverse Echo) 효과가 더해져, 물벼락의 재난을 로큰롤로 창조했다는 평가다.리버스 에코는 보통 공포영화에서나 쓰는 음향 효과. 음악 전문가가 아니어서 뭐라고 하기 어렵지만, 에코 효과를 줘서 소리를 길게 늘어뜨려 으스스하게 만드는 기법이랄까.

많은 힙합 래퍼들도 이 곡을 샘플링했는데 비티스 보이스(Beastie Boys)의 데뷔 앨범 《License to Ill》의 오프닝 트랙인 ‘Rymin' Stealin'’이 대표적이다.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를 연상하며 만든 만큼 노랫말은 비극적이다.

대홍수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농장 노동자들 모래주머니를 쌓으며 총구를 겨누고 제방(堤防) 위에서 일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노랫말이 나온다.

“I works on the levee, mama both night and day, I works so hard, to keep the water away. (난 밤낮 제방에서 일해요. 이 물을 막기 위해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제방이 뚫리고 말았고 흑인 이재민들은 보급품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수용소에서 생활하며 구호와 복구에 힘써야 했다. 이들은 모든 농장이 파괴된 후 미시시피 델타 지역에서 다시 살 수 없었기에 이렇게 노래했다.

“Oh cryin' won't help you, prayin' won't do no good. I's a mean old levee, cause me to weep and moan, gonna leave my baby, and my happy home. (오, 울어도 도움이 안 되고, 기도해도 소용없어요. 나는 못되고 늙은 제방, 울면서 신음하게 만들었어요. 어린 아이와 내 행복한 집을 두고 떠날 거예요)”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Great Mississippi Flood of 1927)의 모습이다. 사진=아칸소네 엔사이클로피디아(Encyclopedia of Arkansas)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Great Mississippi Flood of 1927)는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강력한 홍수로 기록된다. 비교적 근래에 발생한 2010년 테네시 홍수보다 더 강렬했다고 한다.

1927년 미시시피 대홍수는 27,000평방 마일이 30피트 깊이까지 침수된 것으로 이후 미국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제방 및 방수로를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홍수 피해를 입은 63만명 중 94%가 아칸소주, 미시시피주, 루이지애나주에 살며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미시시피 델타 지역이었다. 20만명 이상의 흑인들이 미시시피 강 하류에 있는 집을 떠나 구호 캠프에서 오랜 기간 거주해야 했다. 이후 농업에 복귀하기보단 남부에서 북부, 중서부 산업도시로의 흑인 대이동이 이뤄졌다. 흑인들이 미국 곳곳으로 흩어져 살게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1927년 《조선일보》 5월 29일자 2면 <홍수난리> 기사(붉은색 부분)를 캡처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의 물난리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1927년 당시 《조선일보》가 현지 발(發)로 보도할 정도였다. 그해 5월 21일자와 29일자 2면에 실린 기사 중 일부다.

기사는 《조선일보》 사장을 지낸 안재홍(安在鴻 1891~1965) 선생과 김흥범 특파원(?)이 썼다. “수(水)세계를 이루고, 태평양을 하나 또 만드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5월 29일자 기사 중 일부다.

<홍수난리

제2신 잭슨시(市) 김흥범(金興範)

안재홍 좌하(座下)

이번의 홍수(洪水)는 사백년래(四百年來)의 대홍수(大洪水)라고 합니다. 우리 속담(俗談)이 무엇이 속(速)히 들어가는 것을 물 붓듯 한다더니 미국 남부 중앙(米國 南部 中央)에서 불어가는 물을 보고 그러한 인상(印象)을 얻었나이다. 일주일 전(一週日 前)에 삼천방리(三千方哩)쯤 되던 물이 금일(今日)에는 이만구천방리(二萬九千方哩)나 되는 수세계(水世界)를 이루었나이다. 마치 태평양(太平洋)을 하나 또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물은 지금도 점점 증가(增加)됩니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