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지도부 암살 기도는 '참수(斬首)작전'이 아니라 민족 엘리트 말살 기도

스탈린 치하에서도 우크라이나 지도자 암살-처형, 폴란드 점령 후에는 '카틴 학살 사건' 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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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키예프를 지키고 있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그를 암살하기 위한 용병들이 이미 침투해 있다는 보도가 있다. 사진=우크라이나 대통령궁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정부 요인들을 암살하기 위해 용병들을 침투시켰다는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가 반드시 죽이기로 작심한 인사들의 명단(킬 리스트)가 있다는 얘기도 있다. 월간조선과 인터뷰한 적이 있는 혼차루크 전 총리도 그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이나 혼차루크 전 총리 등도 자신들이 러시아의 암살 대상에 올라 있음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는 순간 '이는 단순히 전시(戰時)에 적의 최고지도부를 제거하는 참수(斬首)작전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엘리트층을 말살하려는 음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례가 있다. 제2차세계대전 중 소련 비밀경찰(NKVD;KGB의 전신)은 1940년 4월~5월 소련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 숲에서 포로가 된 폴란드군 장성, 장교, 부사관은 물론이고 경찰관, 공무원, 의사, 언론인, 법조인, 교수, 종교인, 기술자, 조종사 등 2만 2000여명을 학살했다. 이것이 악명 높은 '카틴 학살사건'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군인이나 경찰 뿐 아니라 민간 공무원과 전문직 종사자, 지식인들까지 조직적으로 학살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폴란드가 다시는 독립 국가로 다시 설 수 없게 하기 위해 국가의 중추가 되는 엘리트층을 조직적으로 말살하려 한 것이다. 
이는 폴란드를 '인위적 국가'로 여긴 스탈린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살은 비밀경찰 총책 라브렌티 베리야가 기획하고 집행했지만, 이를 승인한 자는 당연히 스탈린이었다 (이런 식의 학살은 폴란드 뿐 아니라 발틱3국이나 몰다바 등 다른 소련 점령지역에서도 자행됐다).
1943년 4월 나치 독일군이 피학살자들의 무덤을 발견했다. 나치 독일은 이를 소련의 만행을 보여주는 사례로 선전했고, 소련은 나치의 흑색선전이라고 잡아떼면서 학살을 저지른 것은 나치라고 덮어씌웠다. 영국에 있던 폴란드 망명정부는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소련의 동맹국이던 미국과 영국은 침묵했다.
 
 
2차대전 후 폴란드 공산정권 아래서도 카틴의 진실은 계속 어둠 속에 묻혔다. 소련 말기인 1990년에 이르러서야 고르바초프가 학살을 시인하고 사과했고, 1992년에는 이와 관련된 소련측 비밀문서들이 해제됐다. 하지만 푸틴 정권 이후 러시아는 이를 베리야와 NKVD의 일탈행위이지 소련(러시아)의 국가범죄는 아니라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어서 폴란드와 마찰을 빚고 있다.
2007년 폴란드에서는 카틴학살사건을 다룬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 '카틴'이 나왔다.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아버지도 카틴학살사건 때 목숨을 잃었다. 2010년에는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폴란드 요인들이 카틴 학살 사건 70주년 추도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스몰렌스크로 향하다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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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 '카틴'의 한 장면. 뒤통수에 권총을 쏘아 죽이는 것은 소련 비밀경찰의 전형적인 처형방식이었다.

 

 
6.25 당시 북한 점령 지역 내에서 자행된 납북이나 학살도 카틴학살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즉 반동분자의 숙청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없게끔 국가의 중추가 되는 엘리트층을 조직적으로 말살하려 한 것이라는 측면도 강하다. 당시 북한 정치보위국장, 사회안전상,내무상으로 있던 방학세가 소련 비밀경찰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주지하다시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소련 비밀경찰 KGB출신이다. 또 스탈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의 지정학적 참사'라며 애석해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분리할 수 없는 러시아의 일부'이고 '우크라이나는 단 한번도 안정된 전통이나 국가성을 가진 적이 없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때문에 푸틴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요인들의 암살을 꾀한다면 이는 '참수작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우크라이나 정치지도자들과 고위 관료들에 대한 조직적인 제거를 꾀하겠지만, 우크라이나를 병탄하거나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괴뢰정권이 들어선다면 보다 광범위한 국가(민족) 엘리트 말살 작전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스탈린 치하 우크라이나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자행되었다. 1차대전 후 우크라이나가 잠깐 독립했을 때의 지도자들은 살해되거나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페틀류라 같은 망명 정치인들은 망명지까지 쫓아온 비밀경찰에게 암살당했다. 1932~1933년의 홀로도모르(대기근)는 부농 및 지방 엘리트층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이 결사적으로 러시아와 싸우는 것도 그런 비극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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