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선 공중전도 중요하지만 승패를 가르는 건 대부분 지상전이다. 지상군이 밀리면 전쟁에서 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선거도 마찬가지다. SNS 등 온라인을 비롯한 미디어 홍보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지만 선거캠프와 정당의 조직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 판세는 밀리기 일쑤다.

이번 대선에선 코로나 확산 상황과 맞물려 미디어 홍보전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지만 조직력을 앞세운 홍보전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리나라가 대선을 수차례 치러왔지만 결국 조직력에서 강한 국민의힘 계열 정당과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간의 경쟁이란 점은 변하지 않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저변에도 국민의힘에 입당, 당 조직력을 등에 업을 수 있었다는 점이 자리해 있다.

올해 대선에서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는 당내 후보경선 초반 때만 해도 한 자리수 여론 지지율에 그칠 정도였지만 젊은 층의 지지세가 확산되면서, 당내 선두주자였던 윤석열 후보를 긴장시킬 정도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내 지지세력을 확산시켜나가는 데는 실패했고 결국 대권에서 멀어졌다.

홍 후보 스스로도 인정했듯 취약한 당내 조직력을 극복하지 못했던 게 패인이 됐던 것. 윤 후보의 경우 국민의힘 텃밭이라는 영남권의 대부분 지역구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던 만큼 당내 지지기반에선 홍 후보가 한참 밀릴 수 밖에 없었다.

홍 후보는 경선 패배직후“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조직기반을 다져나가기에는 시간이 늦었고 그래서 공중전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 것으로 한 참모가 전했다.

홍 후보가 젊은 유권자들로부터 당내 다른 후보들과는 비교될 정도로 많은 지지를 이끌어냈다고는 하지만 온라인을 통한 지지기반이었을뿐, 이들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 지지세력을 확산시켜 나가지는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이 홍 후보처럼 당내 비주류였음에도 후보경선에 이어 대권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핵심 지지세력인‘노사모’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활동영역을 넓혔고 이를 기반으로 새정치를 열망하는 젊은층으로 지지세를 확산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대선 본선에선 소속 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의 조직력이 가세했다.

2014년 3월 16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어 야권 신당 이름을‘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했다. 이날‘새정치민주연합’공동 창당준비위원장에 선출된 김한길(왼쪽)·안철수(오른쪽) 창당준비위원장이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노 전 대통령보다 10년 후인 2012년 대선 때 또 다시 새 정치를 기치로 ‘무소속’ 출마했던 안철수 후보는 실패했다. ‘안철수 신드롬’까지 낳았을 정도로 젊은층 지지세가 강했던 그는 유력후보들이었던 박근혜, 문재인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이기기도 했으나 출마선언 2개월 만에 중도하차했다. 문 후보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이 진통을 겪은 것도 원인이었지만 저변에는 무소속 후보로서의 조직력 한계를 절감했던 점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안사모’라는 지지세력이 있기는 했으나 노사모처럼 부각되지는 못했다.

안 후보가 대선 이듬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정치인으로 공식 데뷔 하자마자 새정치를 기치로 신당 창당에 나섰던 것도 이와 맥락이 닿아있다. 그는 중도성향의 새정치연합 창당을 준비하다가 여의치 못하자 민주당과의 합당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게 됐다. 무소속에서 벗어나 정치세력화에 본격 뛰어들었던 셈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윤 후보의 당내 조직력이 다른 후보를 압도할 정도였던 만큼 홍 후보는 물론, 국민의힘 다른 후보들도 비상이 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후보는 경선 막판 윤 후보와 가까웠던 영남권의 중진 의원을 만나 지원을 호소했으나 영입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함께 했던 정치인은 “중진 의원이 후보의 얘기를 듣다 선약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고 후보는 그를 더 이상 붙잡지 못했다”고 전한 뒤 “대선후보라는 사람이 절박감이 약했는지, 아니면 선거판 생리를 제대로 몰랐던 건지...”라고 덧붙였다.

일부 후보들간 단일화 움직임도 있었으나 윤 후보의 당내 조직력을 얼마나 약화시킬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갑론을박이 무성했던 가운데 성사되지는 못했다.

결국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결과는 다른 후보들보다 크게 앞서는 당내 조직력에 힘입은 윤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물론, 조직이 바람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만큼 조직의 영향력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직은 선거판의 상수인데 반해 바람은 변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