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시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디오니소스'라는 신(神)이라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신(神)으로서 풍요·즐거운 생활과 환대·예술을 관장하였으며, 박쿠스(Bacchus) 또는 박코스(Backchos)라 불리기도 했다(윤명희).
인간사에 있어서 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무미건조 할 것 같다.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도 술잔을 나누면서 친구 관계 관계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비즈니스도 술잔을 부딪치면서 성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잔을 들고 나누는 대화 속에 인간적인 관계가 녹아 흐르는 가운데 업무가 취기처럼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지만......
아무튼, 필자는 지난 달 말(5/30) 일본 유수의 모델 회사 사장인 기무라 오사무(木村 攻, 59세) 씨와 함께 술꾼들의 잔치에 초대되어 나고야 관광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슈(地酒)와 도우지(杜氏)의 모임
이 모임은 아이치(愛知) 현의 주조(酒造)기술연구회<구. 아이치 현의 도우지(杜氏) 연구회>가 주최한 모임이었다. 호텔 3층의 연회장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명록에 이름을 쓰면서 행운권 추첨을 위한 번호표를 받고 있었다. 어디선가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는 접수자 한 사람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어떻게 알고 참석하게 되었느냐?'고 의아해 했다. 필자를 국제적인 술꾼(?)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연회장 내에 들어서자 200여 명의 신사들이 원탁 테이블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분 남성들이었지만, 여성들도 제법 눈에 들어왔다.
필자는 도우지(杜氏)라는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기무라(木村) 씨에게 물었다.
"아- 술을 빚는 사람을 말 합니다. 이른바 술의 맛을 결정하는 기술자이지요."
소위 술을 만드는 기능집단의 통솔자를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구라비토(藏人)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고대에는 제사 등 신(神)과 관련하여 술을 만들었는데, 그 일을 여성이 총괄했다고 한다. 그 여성을 도지(刀自)라고 불리게 된데서 도우지(杜氏)의 어원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인지 여성 도우지(杜氏)도 몇 사람 모임의 대열에 끼어 있었다.
필자의 테이블에는 아오이(相生) 유니비오社의 '구노 아츠시(久野敦史)'라는 50대 초반의 도우지(杜氏)가 자리했다. 그는 자기 회사에서 생산되는 술을 5-6병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회사를 대표하는 명주라고 했다. 요미우리신문사 기자와 아이치 TV의 심사역도 자리를 같이 했다. 동석자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술에 관한 것이었다.
도우지(杜氏)인 '구노 아츠시(久野敦史)' 씨는 "자연의 혜택과 전통의 기(技)가 맛있는 술을 만든다"면서 "깨끗한 물도 있어야 하지만, 특히 품질 좋은 쌀에서 고급술이 빚어진다"고 강조 했다. 엄선된 쌀을 정성스럽게 도정하여 숙성시켜야 하며, 엄격한 품질관리가 뒤따라야 명품(名品)이 탄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술병에 표기되어 있는 긴조(吟釀)와 다이긴조(大吟釀)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대부분의 니혼슈가 쌀을 50% 정도 도정을 하는데, 이 쌀로 빚은 술을 긴조(吟釀)라 합니다. 그리고 60-70% 도정한 쌀로 만든 술을 다이긴조(大吟釀)라고 합니다. 다이긴조(大吟釀)가 값이 더 비싼 것은 도정의 차이 때문입니다."
아이치 현의 술 회사가 다모여
<지슈(地酒)와 도우지(杜氏)의 모임>에는 아이치 현의 23개 양조 회사가 각각 제조한 술병을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이 모임이 올해로 50주년이라고 했다. 그동안은 자기들끼리만 모여 술에 대한 품평회를 가졌었는데, 금년에는 일반인들도 참가토록 하는 이벤트를 가졌다. 참석 범위를 넓힌 덕택으로 참가자들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 모임의 회장인 도우야마 히사오(遠山 久男) 씨는 "니혼슈(日本酒)가 소주와 와인 붐에 밀려 소비가 감소되고 있는 현실은 대단히 안타깝습니다. 이러한 하락세가 어디까지 갈지 모릅니다. 니혼슈(日本酒)의 붐을 다시 일으킵시다."
참으로 애절한 목소리였다. 도우야마 회장은 특히 젊은 층이 전통적인 니혼슈(日本酒)를 외면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시대는 전통을 고수하지 못하고, 새로운 조류에 의해 밀려나는 것일까? 그는 "5년 후, 10년 후에도 「아이치의 술은 맛이 있군요」, 「전국적으로 자만심을 가질 만 하군요」, 「이러한 술을 마시게 되어서 행복합니다」는 말이 나오도록 다 같이 노력하자"면서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
나고야를 중심으로 한 아이치(愛知)현은 효고(兵庫), 교토(京都), 니이카타(新潟)에 이어서 네 번째의 니혼슈(日本酒) 산지라는 사실도 이번 행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술판이 무르익자 분위기 고조되다
니혼슈(日本酒)의 효력은 곧바로 나타났다. 학구적인 세미나 장을 방불케 하던 진지한 모임이 시간이 흐를수록 소란스러워졌다. 술병을 들고 테이블을 돌아다니는 도우지(杜氏)들이 늘어났고, 행사장 양편에 늘어선 제품 PR 테이블에 손님들이 몰려갔다. 양조회사들이 자사의 제품들을 설명하면서 무제한으로 술을 공급을 해주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마냥 즐거워했다. 이 지역의 술을 종류별로 다 마셔보는 기회를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고야의 초여름은 무척 더웠다. 더불어 호텔의 세미나장도 열기를 더해갔다. 드디어 제3부 순서인 행운권 추첨이 이어졌다. 상품은 물론 니혼슈(日本酒)였다.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할 때 마다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필자와 같이 간 기무라(木村) 씨가 당첨되었다. 그는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듯 즐거워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상품을 필자에게 선물로 건넸다. 필자가 그의 행운을 물려받은 셈이다. 밤이 무르익자 행사가 막을 내렸다.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처음으로 본 술꾼(?)들의 모임이 신기했다. 전통주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이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오재환은 <술과 의례>에서 "문화는 사회가 가지고 있는 행위들의 결합이며, 한 사회가 개인들의 행위에 부여하는 상징들의 의미화 과정이기도 하다. 술 문화도 그 사회를 대변하는 중요한 문화의 구성요소다"고 했다.
우리의 술 문화는 어떠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을까? 전통적인 술 맛을 음미하면서 그윽한 정취를 느끼는 술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술이라 할지라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분위기에 휩싸여 일상에서 일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술에 취해 호기를 부리다가 망신을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