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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럼

긴자(銀座) 이야기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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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시계획 학자인 ‘조나단 바넷(Jonathan Barnett)’ 교수는 “서양 문명에서는 아름다운 도시를 디자인하려는 여러 가지의 시도와, 비교적 그런 도시를 어렵게 만드는 복잡한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 사이에 오랫동안 대립과 충돌이 계속되어 왔다”고 했다. 그리고 “도시 디자인은 사회적 개혁이라는 유토피아적 기대에 근거를 두면서, 그 개념은 그 시대에 현존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현실적으로 치유하고 부분적으로 수행되며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 의해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도시가 디자인되고 있다.

 

‘조나단’ 교수는 또, 현대도시의 거대화를 얘기하면서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등이 일본의 거대도시다”고 했다. 서울, 부산 등도 일본과 맞먹는 거대도시다. 그러나 외형적인 거대화 보다는 도시의 디자인을 아름답게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거대도시 도쿄에는 비교적 잘 디자인된 긴자(銀座) 거리가 있다. 이 긴자는 메이지 시대 때부터 유행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서양식 신사복을 입기 시작한 것은 1870년이며, 가죽구두도 이때부터 신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등불 대신에 가스등의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한 것도 1872년이며, 긴자(銀座) 거리에 서양식 벽돌건물이 들어선 것도 그 때라고 한다. 어찌했던 긴자(銀座)는 전통과 패션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도쿄에 갈 때마다 이곳 긴자에 있는 자그마한 호텔에 머문다. 숙박비도 저렴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긴자거리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기 때문이다.

 

긴자(銀座)는 은화 주조소(銀貨 鑄造所)

 

기록에 의하면 도쿄는 원래 ‘강의 입구(江戶)’라는 뜻으로 에도(江戶)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긴자(銀座)라는 지명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화폐주조소에서 비롯된다.
에도막부(江戶幕府)가 이 지역에 은화주조소(銀貨鑄造所)를 두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즈오카(靜岡)에 해당되는 순푸(駿府)에 있었던 긴자는 1612년 에도(江戶)에 이주되었다고 한다. ‘자(座)’라는 것은 화폐와 도량형에 따른 특별한 면허품을 제조했던 장소라는 것이다.
 긴자 외에 킨자(金座), 쇼우자(枡座), 슈자(朱座) 등도 있었다. 실제로 금화를 제조하였던 ‘킨자(金座)’는 지금의 일본은행이 있는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긴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번했다.
1800년에는 에도, 교토 오사카, 나가사키 등에 있었던 긴자(銀座)가 폐지되었다. 그 중에서 에도긴자(江戶銀座)만이 재건되어 그 이름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처럼 긴자(銀座)는 본디 화폐제조기관의 명칭이었으나, 메이지(明治) 2년에 긴자거리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니까 1868년에 오늘의 긴자가 탄생한 셈이다.

 

도쿄 올림픽과 긴자

 

1964년 10월 10일, 도쿄의 국립경기장에서 올림픽 개회선언을 했다. 도쿄는 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국제화의 물결을 가속화 시켰다. 이 도시는 올림픽 개최 5년 전부터 거국적인 올림픽 준비를 했다. 경기장 시설과 선수촌 건설, 신간선과 고속도로 개통, 호텔 신축, 아름다운 거리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 거리는 언제까지 변화를 계속할 것인가? ‘오노데라’는 생각에 잠겼다.......그가 10대였을 때 올림픽이 열렸다. 그때 거리는 거의 일변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변했었다. 올림픽  뒤에도 공사는 계속되어 도로는 파헤쳐지고, 덤프트럭이 질주하고, 빨갛게 녹슨 철골과 거대한 크레인이 이 거리 위에 난무하고 있다. 언제쯤 이 거리가 아름답게 완성되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인가?> ‘고마쓰 사코’의 ‘일본 침몰’에 나오는 얘기다.

 

아름다운 도시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시민들의 인내도 필요하다. “올림픽을 위해서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협조하자”는 도쿄 시민들의 인내심도 아름다운 도시 디자인에 한 몫을 했다고 한다.

 

해외로부터 몰려 들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하여 긴자는 또 다른 도전을 했다. 긴자에는 일본을 세계에 어필하는 상품이 가득했으나, 그것을 잘 팔 수 있는 수단이 모자랐던 것이다. 그 수단은 바로 영어였다. 긴자의 상점들은 ‘Good Afternoon. May I Help You?’ 등의 간단한 영어에서부터 손님을 맞이할 특별 영어 교육을 시행했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따뜻한 미소와 영어 인사말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국가나 시가 아닌 긴자통연합회(銀座通連合會) 중심의 특별훈련을 상점의 말단 종업원들도 잘 견디어 냈다고 한다. 상품의 설명, 도로 안내, 일본의 문화와 관습에 이르기 까지 점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민간대사’ 역할을 했단다. “꿈속에서도 영어로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회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덕택으로 외국의 관광객들은 긴자에서의 쇼핑에 대만족을 했음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오늘의 긴자에도 세계 각국의 상품들이 즐비하다. 소위 일류 브랜드 제품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긴자의 품위와 높은 격조는 다른 지역의 상권과 맞서서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백화점과 전문점의 공존

 

긴자는 1초메(丁目)에서 부터 8초메(丁目)에 이르기 까지 백화점과 쇼핑 몰, 전문점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메이지 중기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한다.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을 이어오는 시니세(老鋪:오래된 전통 가게)와 현대적인 패션의 가게들이 공존하고 있다. 귀금속의 ‘와코(和光)’, 양복의 도야(田屋), 진주의 ‘미키모토’, 양갱의 ‘도라(虎屋)’, 문구의 ‘이토야(伊東屋)’, 안경의 ‘마스시마(松島)’, 포목의 ‘에치고야(越後屋)’ 등의 시니세(老鋪)는 시대를 주름잡아 온 전문점들이다.
 이 뿐만 아니다. 긴자에는 유명 기업체들의 쇼룸이 많다. 전자 제품, 자동차, 휴대폰, 화장품들의 신제품들이 선보이고 있으며, 세계적인 화랑들이 즐비한 화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휴일마다 전개되는 ‘보행자 천국’이라는 테마의 ‘차 없는 거리’는 놀이 마당이자 문화의 거리가 되기도 한다.
필자는 이러한 긴자의 모습들이 참으로 좋았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전통적인 시니세(老鋪)와 백화점을 기웃거리며 걷는 것도 재미를 더 해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다가 올 미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울거리와 비교해 본다. 서울에도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거리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긴자와 필적할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는 전통을 지키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무시하고서는 존립할 수가 없다.

 

요즈음 정치인들의 입에서도 신도시 건설 문제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앞으로 건설되는 신도시는 미리 디자인을 잘해서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기념비적인 도시(The Monumental City)’가 태어나야 할 것이다.

입력 : 200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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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팬택전무(기획홍보실장) 동국대 행정학과/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인하대 언론정보학과대학원 박사(수료). 육군 중위(ROTC 11기)/한국전력/대우건설 문화홍보실장(상무)/팬택 기획홍보실장(전무)/경희대 겸임교수 역임. 현재 JSI파트너스 대표/ 부동산신문 발행인(www.renews.co.kr) 저서:홍보, 머리로 뛰어라/현해탄 波高 저편에/홍보는 위기관리다/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오타줄리아(공저) 기타:월간조선 내가 본 일본 일본인 칼럼 215회연재/수필가, 소설가(문학저널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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