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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오늘 역사 앞에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은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선포하는 날이라서 큰 죄를 짓고 있고, 저희는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교과서를 막지 못해서 큰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참담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교과서를 만들겠느냐?’,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라고 여당 의원님들은 말씀하십니다.
교학사 교과서를 보았습니다. 그 교과서가 얼마나 적나라하게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지, 그리고 2천 개가 넘는 잘못된 내용들을 여당 의원님들은 다 고쳤기 때문에 ‘그런 교과서 안 만든다.’ ‘균형 잡힌 중립적인 교과서, 정말 질 높은 하나의 교과서, 국민 통합적인 교과서를 만든다.’고 말을 합니다. 그 말 거짓말입니다. 내년부터 사용하게 될 초등학교 사회 6학년 교과서[표지에는 5-2로 되어 있음-필자 주], 내년부터 사용할 국정교과서입니다.
내년부터 사용할 교과서의 내용 중에 교학사 교과서에서 그렇게 문제가 되었던, 쌀을 수출했다는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수탈당한 역사를 수출로 바꾸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기술이 내년에 사용할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때 어떻게 의병을 토벌했다고 할 수 있냐고 비판했습니다. 학살당한 의병들을, 그런데 이 교과서 역시 토벌로 나와 있습니다. 보십시오, 일제 의병 대 토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게 내년부터 사용할 초등학교 국정 사회 교과서 6학년 교과서입니다.
이렇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 교과서를 만든다는 말이냐.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가지고 그렇게 비난할 수 있냐라고 말을 하지만, 이게 목적입니다. 이게 목적인 거는 10년 전부터 알고 있고, 10년 동안 진행해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나머지 교과서를 모두다 좌편향 교과서라고 매도하고 있습니다. -중략-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국민들을 이간질 시키고 있습니다. 국민들 앞에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2015년 10월 12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관련 현안 보고에서 당시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 의원(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발언한 내용이다. 그 중 쌀 수출과 관련한 부분은 ‘교학사 교과서에 쌀을 수출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와, ‘쌀을 수출했다는 서술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친일 미화다.’로 요약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8종 교과서에 쌀 수출과 관련한 서술을 정리했다.
8종 교과서 쌀 수출 관련 서술 上은 조선 입장/下는 일본 입장 | |||
교학사 |
리베르스쿨 |
미래엔 |
금성출판 |
반출 |
반출 |
반출 |
반출 |
수탈 |
수입 수탈 약탈 |
수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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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사 |
천재교육 |
비상교육 |
동아출판 |
반출 |
수출 반출 |
수출 유출 |
판매, 유출 |
가져가다 |
가져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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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다 |
도의원은 교학사 교과서에 쌀을 수출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고 했으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반출과 수탈은 있어도 수출이라는 단어는 없다. ‘교학사 교과서를 보았습니다.’라고 한 도의원의 발언은 거짓말이다. 반면 천재교육과 비상교육 교과서에는 수출로 명시되어 있음에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교학사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른 교과서도 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만약 보고도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의도적으로 숨긴 것이다. 왜 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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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사 교과서 244쪽 |
다음으로, ‘쌀을 수출했다는 서술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친일 미화다.’라는 부분이다. 도의원의 주장을 따른다면 일단 ‘수출’로 명시한 천재교육과 비상교육 교과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입각한 친일 미화 교과서다. 동아출판사의 ‘판매’라는 용어는 판매 후 일본으로 실어 보냈으므로 ‘수출’이란 뜻이기에 마찬가지 친일 미화 교과서다. 리베르스쿨 교과서에는 ‘수입’, ‘수탈’, ‘약탈’ 등 생각나는 대로 쓰긴 했지만 그 중에 ‘수입’이란 표현이 있다. ‘수입’은 ‘수출’의 상대어이므로 결국 조선에서는 수출을 한 것이다. 따라서, 이 교과서 역시 친일을 미화했다.
‘수출’로 쓴 비상교육과 ‘판매’로 쓴 동아출판 교과서를 제외한 나머지 6종은 모두 반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반출은 ‘운반하여 보내다.’는 뜻을 지닌 단어로 당시 신문에서는 거래 후 국내의 他 道(타 도) 또는 타 지역으로 보낼 때 사용하였다. 교과서에서 일본으로 보낸 것을 반출이라 했다면 이것도 시장 원리에 따라 거래를 마친 후 일본으로 실어 보낸 것이기에 역시 수출이다. 당시 쌀은 대부분 현물을 취급하는 미곡 시장과 선물(先物)을 취급하는 기미(期米) 시장에서 거래되었으며, 매일 신문에 조선과 일본의 미가(米價) 시세가 공시되어 철저히 시장 원리에 따라 거래되고 수출되었다. 수많은 지주와 미곡상의 금전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거래에서 수탈이나 약탈은 구조적으로 개입할 수 없다. 반출은 표현만 달리 했을 뿐 수출이라는 용어와 동의어다. 따지고 보면 모든 교과서가 쌀을 수출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도의원 말대로라면 모두가 친일 미화 교과서인 셈이다.
국권상실기 대일 쌀 수출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 서술이다. 이는 앞서 몇 차례의 글에서 밝힌 바가 있으며, 모든 교과서에도 수출 또는 수출에 버금가는 뜻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사실 대로 쓴 것이 친일 미화이고 지탄의 대상이 된다면 일본과 관련한 서술은 사실과 상관없이 무조건 비판적 서술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 서술인지 묻고 싶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하며 거짓이나 왜곡을 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역사 전문가도 아닌 정치인이 전문가 영역인 학술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당시의 기록이나 연구 성과를 살피지 않고 단지 일제 식민지라는 결과에 모든 것을 결부시킨 데서 출발한다. 심지어 현재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고 말하고 있다.
도 의원은 교학사 교과서를 살피지도 않고 ‘교학사 교과서를 보았습니다. 그 교과서가 얼마나 적나라하게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옹호하는지’라고 했다. ‘수출’로 명시한 천재교육과 비상교육 교과서 서술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린 채 정작 수탈로 쓴 교학사 교과서를 친일 미화 교과서라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국민들을 이간질 시키고 있다. 국민들 앞에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며 정부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누가 국민들을 이간질 시키는지는 도의원 스스로에게 물어볼 일이다.
대일 쌀 수출과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출판사를 비판하고 집필자를 비난한 정치인에는 도종환 의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과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 그리고 이재명 성남시장도 정도와 방법의 차이를 달리하여 비판의 대열에 참여했다. 교과서 한 줄 읽지 않고 도종환 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으나, 민병희 교육감의 경우 한 도의 교육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首長)으로서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교육 정책으로 실현될 수 있기에 우려된다.
“쌀 수탈을 ‘수출’로 표시하는 표현도 있는데 국권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대등하게 수출을 할 수 있겠느냐.”며 “사진자료도 호화로운 거리를 삽입하고, 우리 민중들의 어려웠던 삶에 대해서는 조금만 조명하는 등 그 당시가 상당히 살기 괜찮았던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 교육감은 “이런 것들을 볼 때 국정교과서가 나올 수 있는 방향은 훤히 들여다보인다.”면서 “집필진도 안 나온다고 했기 때문에 아마 교학사 교과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라고 예상했다.(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연합뉴스 2015. 10. 19)
역사는 사료가 생명이다. 민 교육감은 사료에 대한 검토도 없이 그냥 그 당시에는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좋은 임금, 선조는 나쁜 임금’ 수준의 주장이다. 또 아직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국정 교과서에 대해 예단을 하면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교학사 교과서를 끌어들였다. 교학사 교과서에 ‘쌀 수출’이라고 써져 있고, 다른 교과서에 그렇지 않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민 교육감은 이와 같은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국정 교과서를 극력 반대하고 대안 교과서를 거론한 바 있다.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5년 10월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철도 신작로도 조선근대화를 위한 지원과 투자였겠지. 청산 못한 친일 잔재들이 드디어 발광을 시작하는구나.’라고 그 전날 방송 토론에서 ‘쌀 수출’을 주장한 권희영 교수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수출’이라 말한 권희영 교수가 친일 잔재이고 발광한 것이라면, 천재교육과 비상교육의 집필자도 친일 잔재이고 발광을 한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발광(發狂)을 ‘미친병의 증세가 밖으로 드러나 비정상적이고 격하게 행동함. 또는 그런 행동.’이라 하였다. 이 사회 지도층 인사로서, 젊은 세대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한 정치인으로서 뱉어낸 말로는 그 格(격)이 참으로 천박하다.
당시의 ‘쌀 수출’은 굳이 학문적 소신이라 할 것도 없다. 권희영 교수는 그냥 사실 대로 이야기 했을 뿐인데도 억울하게 혼자 험악한 소리를 듣고 사방의 공격을 받았다. 권희영 교수는 방송 토론에 나와서 쌀 수출을 이야기 했다가 이런 화를 자초하였다. 천재교육과 비상교육 필진처럼 ‘수출’이라 해놓고도 가만히 숨죽이고 있었으면 아무 탈 없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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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천재교육 253쪽 / (우)비상교육 278쪽 |
이상에서 거론한 정치인은 역사 전문가가 아니다. 역사 전문가가 아닌 정치인이 잘못된 지식을 근거로 특정 교과서와 특정 연구자를 매도하고 공격하였다. 굳이 교과서 내용을 문제 삼으려면 모든 교과서를 문제 삼아야 한다. 쌀 수출에 대해 문제 삼으려면 다른 교과서에 있는 표현도 문제 삼아야 한다. 교학사 교과서와 국정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하려면 다른 교과서의 오류도 함께 지적해야 한다. 교과서 집필진의 전문성을 문제 삼으려면 모든 교과서 집필진도 함께 문제 삼아야 한다. 27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정교과서 집필진의 전문성은 문제 삼으면서 4명의 교사와 1명의 영어과 출신 회사 대표로 구성된 검정 교과서 집필진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이러고도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든 교과서를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교과서를 비판하려면 먼저 교과서를 읽어야 한다. 특정 교과서를 비판하려면 나머지 교과서도 모두 읽어야 한다. 국정 교과서를 비판하려면 국정뿐만 아니라 8종 검정 교과서도 모두 읽어야 한다. 국민에게 영향력이 지대한 정치인은 더더욱 그렇다. 비판할 교과서조차 읽지 않았으니 없는 것을 있다하고, 나머지 교과서를 읽지 않았으니 어느 교과서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애써 눈을 감고 귀를 막고는 미운 놈만 두들겨 팬다.
모든 학교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육 정책’, ‘교과서 편찬’, ‘현장 교육’이라는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그동안 있었고 지금도 시행되고 있는 국정이나 검인정 교과서 체제는 모두 교육 정책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박근혜 정권의 국정 한국사 교과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정해지면 그에 따른 ‘교과서 편찬’이 이루어진다. ‘교과서 편찬’은 전문가 영역이다. 국어 교과서는 국어 전문가에 의해, 수학 교과서는 수학 전문가에 의해 편찬되듯이 역사 교과서는 역사 전문가에 의해 편찬된다.
그동안 있었던 국정교과서 사태를 보노라면 모두가 역사학자이고 모두가 역사 전문가가 되어 전문가 영역인 서술 내용을 두고 특정 교과서를 공격하고 특정 집필자를 공격했다. 다른 과목에서 볼 수 없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선두에 그릇된 역사 인식을 역사 사실인양 확신하고 이를 무기로 삼은 유력 정치인이 있었다.
유력 정치인이 사이다 발언으로 앞장을 서니 교과서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모두 역사학자가 되고 역사 전문가가 되어 출판사를 비난하고 집필자를 비난한 것이다. 그러니 교과서에는 수출을 수출이라 하지 못하고 조삼모사(朝三暮四) 격의 온갖 용어들이 난무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끝까지 소신을 지켜 수출을 고수한 천재교육과 비상교육 교과서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는 초중고 학생들이 그들의 나이와 지적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편찬된 책이다. 당연히 교과서 소비자인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편찬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게, 중학교 교과서는 중학생 눈높이에 맞게, 고등학교 교과서는 고등학생 눈높이에 맞게 편찬되어야 한다. 그러한 교과서는 결국 해당 과목의 전문가에 의해 편찬된다. 역사 교과서는 역사 전문가들이 그동안 축적된 연구 성과와 집필 기준에 따라 편찬한다. 이러한 전문가의 학술 영역에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이 그릇된 지식과 불공정한 잣대로 개입을 하고 압력을 행사하였다.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는 헌법 제31조 ④항에서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그동안의 역사 교과서 논쟁을 보노라면 역사를 공부할 학생인 우리 아이들은 없고 오로지 어른들의 싸움만 있었다. 역사 교과서는 철저하게 아이들 입장에서 편찬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논란이 없는 정설을 위주로 편찬해야 한다. 주장이 첨예한 내용은 아이들에게 제공되기 전에 연구자들끼리 먼저 합의를 보아야 한다. 연구자들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한 학설을 중구난방으로 아이들에게 던져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 모든 일은 역사 연구자가 해야 할 일이며 역사 전문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여기에 역사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전문성이 부족한 정치인들이 그릇된 지식과 불공정한 잣대로 개입하게 되면 사회적 논란과 갈등만 惹起(야기)할 뿐이다. 정치인들이 할 일이라면 연구자들의 연구 환경을 조성하여 우수한 연구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정치인들이 연구자를 성원하고 신뢰할 때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신뢰하고 나아가 역사 교과서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이에 역사 교과서 내용에 대해 과도하게 개입하는 정치인들에게 다음 말을 전해주고자 한다.
“교과서는 학자와 교육자들이 결정할 사항이고, 역사적 지식이 얕은 정치인들이 나서서 정치적 전쟁으로 끌고 오면 안 된다.”
도종환 장관이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