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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4월 7일 오후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가 정부 서울청사에서 실무급인 8인 연석회의를 열고 노동계사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해고요건 완화 등 5개 항을 집중 논의하고 있다. /조선DB |
노사정위원회는 어떻게 등장했는가?
한국경제가 1997년 12월 3일에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자마자 정권을 미리 인수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IMF의 요구에 따라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는 '노동개혁, 기업개혁, 공기업 민영화, 금융개혁’으로 일컬은 '4대개혁’ 가운데 하나인 '노동개혁’을 이야기합니다.1)
당시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노동개혁의 주요 내용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사회적 합의체 도출, 사회안전망 구축’ 세 가지였습니다. 이 가운데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는 목표이고, '사회적 합의체 도출’은 목표를 추구하는 절차이며, '사회안전망 구축’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의 보완장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사회적 합의체’로서 1998년 1월 10일에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시장에 대한 새로운 규제 요인이 되리라 보고 거의 모두 입을 모아 반대했지만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끝내 이를 발족시켰습니다. 노사정위원회란 노·사·정 및 공익단체가 참여하여 경제·사회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한 후 1998년 2월 6일에 60개항의 사회적 합의사항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 또는 집단해고를 허용하는 법과, 28개 업종에 한정된 근로자파견법을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현행 근로기준법 제23∼26조 및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가 도입한 정리해고법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기는커녕 오히려 고용보호만 강화시키고 말았습니다. OECD가 1998년에 평가한 회원국들의 고용보호 수준을 보면, 한국은 정규직 고용보호가 심하기로 포르투갈에 이어 2위였습니다. 근로자파견법 도입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기여했지만 28개 업종에 한정되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노사정위원회의 성격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도입한 노사정위원회는 그 실체가 사회적 합의주의(corporatism)였습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다양한 이익집단들을 정책 결정에 참여시키고, 이들 이익집단들의 합의를 통해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같은 성격을 지닌 한국의 노사정위원회는 출범하자마자 노동시장을 경직시키고 구조개혁을 지연시키고, 합의 도출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한 예로, 민노총은 1998년에만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했을 뿐 그 후로는 줄곧 불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시킨 노사정위원회에 관해 남성일 교수는 일찌감치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2)
첫째, 노사관계의 성격이 정치적 노사관계 및 노정관계로 변질되었다. 김대중 출범 당시 노동조합은 정부의 정책 가운데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서는 투쟁으로 대응하고, ‘사회적 합의 도출’에 대해서는 협상과 투쟁을 병행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노사정위원회를 협의기구가 아닌 정치적 의사결정기구로 만들어버렸다.
둘째, 법과 원칙이 무력화되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원칙이나 법과는 관계없이 이슈에 대해서만 노사정의 논의를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셋째,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불투명해졌다.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경우 정리해고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구조조정 효과를 상실하여 다시 부실에 빠져 재구조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생겼고, 구조조정 시기를 놓침으로써 부실이 심화되는 경우도 생겼다. 또 노사정위원회의 합의 도출이라는 명목하에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전망 자체가 불투명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성일 교수는 노사정위원회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뒤이어 한국경제연구원도 보고서를 통해 똑같은 주장을 폈습니다. 필자도 노사정위원회 폐지 주장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펴오고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노동개혁의 핵심내용인 정리해고법과 노사정위원회의 성격을 중심으로 평가하면, 김대중 정부의 노동개혁은 개별주의적 의사결정 대신 집단주의적 의사결정을 선택함으로써 경쟁원리를 작동할 수 없게 하고 노동시장을 경직시킨 결과를 가져와 시장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한국노총의 일방적 퇴진으로 노동개혁 논의가 중단되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 조건으로 노동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노사정위원회가 2014년 12월 23일에 ‘노동시장 구조개선 기본 합의문’을 채택하여 ‘5대 의제 14개 세부 과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합의 도출 과정에서 민노총은 불참한 가운데 한국노총이 2015년 4월 8일에 노동개혁 협상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노사정위원회가 3월 말까지 합의를 전제로 논의해왔던 5대 현안을 한국노총이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썽이 된 5대 현안을 들춰봅니다.
① 일반해고 요건이나 취업규칙을 바꾸는 것
② 기간제 사용기간을 4년 연장하거나 파견업무를 확대하는 것
-35세 이상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60세 이상 근로자는 파견근로 업종을 현행 33개에서 전 업종으로 확대
③ 근로시간 단축을 당장 시행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
④ 정년 연장 및 임금피크제를 의무화하는 것
-정부안은 59세부터 임금을 낮춰 가는 것
⑤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정부안은 연공급을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
위 내용들은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들로, 한국노총이 한 발짝만 양보하면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현 시점에서 노사정위원회가 다시 모여 어떤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노사정위원회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출발한 노사정위원회는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노사정위원회는 노정(勞政)위원회 또는 사정(使政)위원회로 전락하여 정치 싸움만 일삼아 왔습니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이 사회적 합의주의를 통해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은 큰 실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아일랜드의 사회연대협약 같은 ‘생산적 기능’을 하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는 출범 후 17년이 지나도록 사실상 ‘생산적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노사정위원회가 없어져야 할 이유는 영국과 독일의 노동개혁이 보여줍니다. 마거릿 대처는 노동개혁을 추진할 때 노사정위원회 격인 소득정책 관련 기구를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2015년 5월 21일 전경련에서 행한 <독일 어젠다 2010의 경험과 한국에 주는 조언>이라는 강연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할 때 노동자와 사용자 등 이해당사자들에게 결정권을 줘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노조, 사측이 한 테이블에서 모여 의논을 했지만, 노사가 모두 적대적인 위치에서 정부에 요구만 했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정부가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개혁의 당위성이 충분했기 때문에 ‘하르츠 위원회’라는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개혁안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을 한 배경에 대해 그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와 정부 수반이 개혁을 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면서 “개혁이라는 것은 밑에서 위로 갈 수 없다. 개혁은 위에서 아래로 가야한다. 그것이 정치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 노사정위원회에 의존하지 말고 마거릿 대처와 게르하르트 슈뢰더처럼 정부 단독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노사정위원회는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총대를 메야 합니다.
각주
1)박동운(2002), 『시장경제인가 반시장경제인가 김대중 정부의 구조개혁 평가』, 자유기업원, pp.197-202.
2)남성일(2001), 「노동시장과 자유주의」,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편, 『이제는 자유를 말할 때』, 율곡출판사, pp.6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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