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싫다고 했다.....아내는 급기야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달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더러워, 가까이 오지 마!"

 아내는 고함을 지르면서 질겁했다. 부아가 치밀어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특히 '더럽다'는 말에 너무나 화가 났다.....어제 밤 아내가 외친 '더럽다'는 말에서 날카로운 칼로 푹 찔린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제81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영화 '굿-바이(필자 칼럼 2009. 3. 25일자 참조)'의 원작소설에 나온 이야기다. 이 소설은 독자들의 입소문에 의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납관부(納棺夫) 일기(번역: 문학세계사)'라는 책이다. 작가 '아오키 신몬(靑木新門, 1937- )'은 와세다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 도야마시(富山市)에서 카페를 경영하다가 파산했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관혼상제 회사에 취직하여 납관(納棺) 일을 했다. 이 책은 그가 납관 일을 하면서 썼던 일기다. 한 권의 책에 눈물겨운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염습(殮襲)은 죽은 사람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주자는 것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부모, 형제, 친구, 선배, 후배 등 이런저런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슬퍼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한 배려, 즉 염습(殮襲)이라는 대목에서는 모두 멈칫한다. 시체를 만지고, 닦고, 수의를 입힌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름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오키(靑木)' 씨는 염습(殮襲)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염습이라는 것은 병으로 인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자리보전만 하던 상태에서 사망한 사람을 저승에 보내면서 몸이라도 청결하게 해주자는 뜻에서 깨끗한 물로 온몸을 닦는 풍습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아오키(靑木)' 씨는 어느 날 경찰관의 부름을 받고 죽은 자의 시신을 염습하기 위해 달려갔다. 아무도 죽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치했던 독거노인의 시신을 염습하는 일이었다. 방안에 콩을 뿌려놓은 듯 하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구더기였다.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시신에는 구더기들이 몸에서 파도를 치듯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경찰관은 얼굴을 돌리며 뒷걸음쳤고, 빗자루를 가져왔던 회사 직원은 집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상상만 해도 속이 뒤집히는 일이다. 그래도 그는 그러한 일을 묵묵히 했다. 그는 납관일을 하는 회사의 전무까지 올랐고, 감사를 지냈다. 시집 '설원(雪原)'과 수필집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날의 풍경'을 내기도 한 그의 인생은 참으로 어렵고 기구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죽음은?

 요즈음 우리 주변에 이런저런 죽음이 많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관계없이 죽음으로 가는 길목은 하나라고 본다. '아오키 신몬(靑木新門)' 씨는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죽음을 바라지만 무엇이 아름다운 죽음인지 자신도 헷갈린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죽음이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다. 고통을 당하지 않고 죽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인지, 사후의 육체가 아름다운 것인지, 멋지게 죽는 것인지........."
 그는 아름다운 죽음의 이미지란 그 사람의 세계관이나 종교관, 미의식 등에 따라 다르며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풍토나 사회에 의해서도 달라진다고 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름다운 죽음의 대략적인 개념은 치매노인이 되거나 병석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고통 없이 훌쩍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막연한 기대 정도로 정리했다. 시신을 만지며 닦는 '납관부(納棺夫)'로써의 정의답다. 짧은 인생, 아름다운 세상이라면서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는 죽음이 분명 아름다운 죽음이리라.

'납관부(納棺夫) 일기를 쓰고 나서'

 <처음으로 입관을 했다. 처음부터 운이 나빴다. 덩치가 크고 건장한 시신인데 몹시 경직되어 있었다. 땀만 뻘뻘 흘렸고 2시간이나 걸렸다. 어쨌든 너무 긴장했고 지쳤다.>

 <오늘은 세 건이나 입관하여 피곤하다. 세 번째 상갓집에 도착한 시간이 너무 늦어져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납관부'라는 소리를 들었다. 왠지 기분이 나빴다. '납관부'라는 말은 백과사전에도 없었다.>

 <숙부가 찾아왔다. 가문의 수치라며 나무랬다. 당장 때려치우지 않으면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한 뒤 돌아갔다.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다. 아내도 그만두라고 졸랐다. 엮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 쯤이면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대체 왜들 이토록 싫어하는 것일까?>
 그의 책은 날개 돋치는 팔려 나갔다. 독자들의 입소문이 퍼져 신문과 잡지에서 기사로 다루는 바람에 판(版)을 거듭했다.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도 쇄도했다.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수입도 늘어났고 생활도 안정되었다. 아이가 태어나 분유를 살돈이 없었던 응어리·좌절· 절망 끝에 허무의 거리를 헤매던 자포자기의 시절을 생각하면 180도로 변했다.

아오키(靑木)의 빛과 그림자

 아사히신문은 이 책에 대한 평(評)을 이렇게 썼다.
<'매일 매일 사망자만 보고 있으면 사망자는 조용하고 아름답게 보여 온다'라고 저자는 말했다. 그와 동시에 '죽음을 무서워하는 생존자들의 추악함이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라고도 했다. 96년의 문고판 간행 이후, 거의 1년에 1회씩 중판 되어 온 '롱 셀러'다. 작년 9월의 영화 공개 시 특별히 광고는 하지 않았지만 소문으로 이 책의 존재가 확산되었고, 공개 후는 월간 판매 부수가 20배에 달했다. 독자층은 남녀 공히 30-40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50대 이상과 20대의 독자도 적지 않다.>
 그래도 아오키(靑木) 씨는 '현실의 벽은 여전히 두텁다'고 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죽음 그 자체를 터부시 하는 현실이 있는 한, 장의사나 화장장 사람들은 비참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부모가 평소 비천하게 여기는 사람의 신세를 지면서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일인가. 그러한 인식은 그와 가장 가까운 자신의 아내에게도 늘 도사리고 있었다.
 <얼마 전 슈퍼마켓에서 돌아온 아내가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댁의 남편이 참 대단한 일을 하셨더군요"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엉뚱한 책이나 내니까 그렇잖아!"라면서 버럭 화를 냈다. 그 아주머니가 "당신이 정말로 남편에게 '더럽다'는 말을 했나요?"라고 물었다면서 흡사 자신이 악역을 맡은 꼴이라고 펄쩍 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