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하는 모임인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하카다회(일명 나들이클럽)회원 100여 명이 지난주 말 서울에 왔다. 한국관광공사의 후쿠오카(福岡)진출 30주년을 기념하여 동 공사의 신사옥 견학과 한류(韓流) 체험을 위해서였다. 일본인들의 한국여행에는 필히 역사적인 유적지-부여, 공주, 경주 등의 코스가 들어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역사탐방 코스는 국립중앙박물관 뿐이었다. 이유인즉. ‘겨울연가’, ‘대장금’의 촬영 현장과 ‘난타’공연 관람을 위해서였다. 전통한정식의 현주소 첫날 만찬은 서울의 유명 한식당에서 있었다.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 자연과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곳, 서울시민의 힘으로 아파트가 들어서지 못했던 자연이 숨 쉬는 식당이었다. 필자도 그들의 모임에 초청인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100여 명이 넘는 관계로 8~9명씩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카다회의 부회장인 우츠미 케이이치(內海敬一, 63세) 씨가 필자에게 다가왔다. “오늘 만찬장 분위기가 마치 장례식장 같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본 팔자는 깜짝 놀랐다. 테이블은 물론, 앉는 의자까지 모두 검정색 천으로 씌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식당의 지배인을 불러 물어보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검정색은 포근한 분위기라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필자는 할 말을 잃었다. 만찬은 계속 되었고, 일본인들은 한식이 나올 때마다 ‘대장금’의 궁중요리를 연상하면서 맛을 음미했다. “아뿔싸~!” 갑자기 생선회(사시미)가 나왔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궁중요리에 생선회가 있었나?’하면서 어리둥절해 했다. 한류 탐방을 위해, 한국의 궁중요리를 체험하기 위해, 각자 회비를 내고 서울에 온 그들의 희망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국적 없는 한국의 전통요리에 실망을 한 것이다. 이 와중에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김치를 더 달라고 하자 없다고 했다. 추가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넉넉함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이영애 씨가 나타나는 깜짝 이벤트는 상상도 못 할 일일까? 종업원들이 치마, 저고리라도 입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손님맞이를 좀 더 세밀하게, 좀 더 정성스럽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한류의 원천은 서편제 한국의 대중가요인 ‘칠갑산’을 한국 사람보다 더 잘 부르는 오츠보 시케타카(大坪重隆, 65세, 방송인) 씨의 한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는, 일본에서의 한류의 시작은 ‘서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구성지고, 애절하면서도 길게 이어지는 소리의 끝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딸자식의 소리를 좋게 하기 위해서 그녀의 눈을 멀게 한 대목에서, 일본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류의 출발점은 ‘겨울연가’, ‘대장금’에 앞서서 바로 ‘서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보다 더 깊이가 있는 그의 한류의식이다. 일본과 비즈니스를 할 때에는 영화. 드라마. 대중가요 등에 대해서 폭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류’는 1996년 TV 드라마가 중국에 수출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어서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확대되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3년 ‘겨울연가’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한류 무드가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터키, 동유럽, 러시아, 중남미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넓어졌다. 한류는 대체로 TV드라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필자가 보기에도 성공하는 TV드라마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허준’은 의학이라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상도’는 올바른 경제의식을 주제로 삼았다. ‘대장금’은 음식과 의술을 바탕으로 하면서 ‘장금’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여주었다. ‘서동요’는 선화공주와 서동의 사랑과 함께 백제의 문화와 과학기술, 태학사의 연구개발 시스템을 인식시켰다. 요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주몽’은 ‘철기제조비법’이라는 과학기술을 토대로 스토리(Story)를 풀어가고 있다. 이처럼 역사적인 배경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드라마가 곧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수의 부인인 이노우에(井上, 56세) 씨는 “단순한 사랑이야기는 일본에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현재 일본에서 방영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가 눈에 띄게 줄었다. ’겨울연가‘ 와 ’대장금‘을 이어갈 특색 있는 후속 드라마가 등장해야 한다. 한류는 문화의 획일화된 흐름 속에서 나타난 경이적인 존재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 독일 등 강대국들처럼 문화침략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이었다. 한국 대중문화의 예술적 수준이나 독창성 등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술성의 논의와는 별개로 한국의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 즉, 그들의 마음과 감성을 자연스럽게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한류도 산업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한류는 아직까지 문화의 산업화를 이룩하지 못한 상태다. 문화의 산업화는 문화의 생산, 저장, 유통체제를 산업화하는 것으로서 영화, 음반, 미술, 공연 등에 있어서 과학적 관리체계나 상품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의 산업화’는 산업제품에 문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고부가가치 상품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한류는 이제 겨우 문화산업의 질적, 양적 성장을 위한 기초적인 토대를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화가 중요하다>는 책 속에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해 “경제발전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면, 문화가 거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이제 우리도 ‘한류’의 붐을 실질적인 문화산업으로 정착시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