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일본 후쿠오카(福岡) ‘하이얏트 레지덴셜호텔’(Hyatt Residential Hotel)의 회장인 ‘이와타 코하치(岩田耕八, 65세)’ 씨 아들 ‘이와타 코이치(岩田耕一, 28세)’의 결혼식에 초청을 받았다. 때마침 주말이라서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간사이(關西) 공항을 거쳐서 1995년 대지진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었던 고베(神戶) 시내에 들어갔다. 12년 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지진 직후 참혹했던 현장을 목격한 바 있는 필자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결혼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사람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생각은 근대의 발명품으로, 17세기 말에 생겨났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결혼이라고 교육받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열정의 수명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비극입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결혼이 자아실현의 한 수단이라는 개념이 눈에 띄게 발전한 만큼 그에 대한 환멸과 불만도 증가했죠.”
연금술사로 유명해진 ‘파엘로 코엘료’의 소설 ‘오 자히르(O Zahir)'에 나오는 글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나? 아니다. 결혼해서 살다보면 처음과 다소 달라질 수가 있지만, 그래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들딸 낳아 기르는 삶이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파엘로 코엘료’도 소설에서 “결혼해서 살다보면 어느 순간인가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면서 “자신의 삶을 전체적으로 되돌아보고 자신의 ‘아코모다도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아코모다도르’란 포르투갈어로 ‘조절하다’라는 말이라고 한다.

결혼은 신(神)에 대한 맹세

일본인들은 종교를 여러 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혼식도 특정 종교와 관계없이 치른다. 신사나 절에서 신도식(神道式) 결혼을 주로 하지만 요즈음은 기도교식 결혼을 하는 사람도 많다.
신도식 결혼식은 직계가족만 참석하여 엄숙한 행사를 한다. 헤이소쿠(弊束)라고 하는 제구로 액(厄)을 물리치고, ‘노리토(祝詞)’라고 하는 축을 올린다. 그리고 신랑신부의 연(緣)을 맺는 ‘산산구도(三三九度: 술)’를 마신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쓰고 있는 사각모양의 모자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질투의 뿔을 감추기 위해서란다. 또, 신부가 하얀 옷을 입는 것은 신랑이 좋아하는 색깔에 물들기 위해서이다. 다분히 남존여비의 사상이 들어 있는 형식이다.
‘이와타(岩田), 도쿠야마(德山)’ 가(家)의 결혼식은 기도교식으로 교회에서 했다.
 호텔(크라운 플라자) 내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였다. 참석자는 60여명 정도. 여느 결혼식보다는 다소 인원이 많았다. 교회 문이 열리자 미국인 목사가 들어오고 이어서 신랑이 따라 들어왔다. 주례와 신랑이 단상에 자리하자 웨딩마치가 울려 퍼지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엄숙한 분위기가 박수소리에 깨지고 ‘우우-’ 하는 함성이 나오기도 했다.
 필자는 신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것이 몹시 궁금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는 것이었다. 주례 목사는 어눌한 일본어와 유창한 영어를 섞어서 진행했다. 기도하는 모습이나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신도와 불교를 숭상한다는 분위기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불교 신자인 ‘이와다(岩田)’ 씨의 모습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신사나 절, 교회에서 엄숙한 결혼식이 끝나면 신랑신부의 친구와 직장 동료, 상사, 친인척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피로연이 펼쳐진다. 피로연 장에는 참석자들의 자리가 배치되어 있고, 자리마다 명패가 놓여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2-3개월 전부터 초대장을 보내 참석 여부를 확인하여 인쇄물을 만들고 음식도 인원수에 맞추어 준비한다.
 피로연에 초청받은 사람은 방명록에 기재하고 축의금을 전달한다. 축의금의 규모에 따라 봉투의 크기가 다르다. 축의금을 넣은 봉투는 금(金)과 은(銀) 색깔의 끈으로 묶여있다. 이 끈을 ‘미즈히키(水引)’이라한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피로연

결혼식 행사가 끝나고 한 시간 뒤인 4시 반부터 ‘이와타(岩田)’, ‘도쿠야마(德山)’ 양가의 피로연이 펼쳐졌다. 피로연장의 문이 열리기 전에는 밖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삼삼오오 즐거움을 나누었다.
 필자는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피로연장에 들어가 공연장의 좌석을 찾듯이 자리를 찾았다. 원탁 테이블에 10여 명 씩 둘러앉은 하객들은 서로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했다. 이날의 참석자는 신랑 측 50명, 신부 측 50명 모두 100여명에 불과했다.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랑과 나란히 피로연 장으로 들어섰다. 하객들의 우렁찬 박수를 받으며 환한 얼굴로 들어선 것이다. 사회자(도쿄에서 온 유명한 아나운서)가 피로연의 시작을 알리고, 피로연 장의 정면 상석에 신랑신부가 나란히 앉았다. 신랑신부가 앉은 좌석을 일본에서는 고사(高砂: 다정한 노부부의 전설을 다룬 노래에서 따온 말)라고 한다.
피로연 행사 프로그램에 의해 참석자들 중에서 몇 사람이 나와 축하 인사를 했다.
 인사말이 끝나자 이벤트가 펼쳐졌다. 신랑신부의 친구들이 다양한 무대를 전개한 것이다. 비키니 스타일의 춤을 비롯하여 청소 아줌마 춤, 로봇 춤 등 다양했다. 박수를 치던 신랑이 튀어나가 그들과 함께 섞이었다. 축하객들의 박장대소가 피로연 장을 떠나가게 하였다. 3시간 쯤 걸리는 피로연 도중에 신부가 3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우치가케(打掛)’, ‘후리소데(振袖)’, ‘드레스(dress)’ 등으로 갈아입은 것이다.

신부가 부모님께 드리는 글

창밖에 어둠의 빛이 깔리고, 네온이 하나하나 밝혀질 즈음에 커튼이 내려지고 신부가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의 낭독이 있었다.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 / 부모님! 저를 낳아서 26년간 키워주신 부모님! 이제 저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서 이와타(岩田) 씨 가문으로 시집을 갑니다."
갑자기 신부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피로연 장의 분위기도 창밖의 어두움처럼 가라앉았다.
“천국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이 딸의 결혼식을 보시고 계실까요?.......”
장내는 울음바다로 변했다. 신부의 가족은 물론 신랑 가족, 하객 모두가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훔쳤다.

 이어서 양가 가족대표의 감사 인사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비디오가 상영되었다. 신랑신부의 어린 시절 영상,학창 시절의 추억, 결혼식장의 분위기 이어 마지막 영상이었다. 참석자들의 이름이 모두 새겨져 있었다.

코엘료는 결혼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