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차(御茶)노 미즈(水)에서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면 일본의 악기들을 다 쓸어 모은 듯 악기점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 악기점들을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면 메이지(明治) 대학이 나온다. 오른쪽을 봐도 메이지대학, 왼쪽을 봐도 메이지대학.......메이지(明治) 타운 같은 느낌이다. ‘메이지(明治)대학이란 어떤 학교일까?’ 어렸을 적에 어른들로 부터 자주 들어오는 대학이라서 저절로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했던, 메이지(明治) 대학의 건물을 쳐다보다가 ‘메이지 대학 박물관’의 간판을 발견했다.
하급 무사 아들들이 세운 법률학교
대학건물 로비에는 이 대학을 소개하는 「메이지 대학에의 유혹」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메이지대학에의 유혹’이라는 말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필자는 안내판의 유혹대로 한발 한발 들어갔다. ‘메이지대학 박물관’이 나왔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메이지 대학은 1881년(明治 14년) 1월 메이지 법률학교로서 도쿄 유라쿠초(有樂町)에서 개교하였다.”
한 줄의 글이 메이지(明治)대학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 했다. 필자는 2007년에서 1881년을 빼느라고 다소 시간이 걸렸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였다.
이 대학은 1881년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기시모토 다쓰오(岸本辰雄), 미야기 고조(宮城浩藏), 야시로 미사오(失代操) 등 근대 법학의 선구자에 의해서 설립되었다고 한다. 설립자 3명의 사진과 함께 이러한 글이 쓰여 있었다.
“기시모토는 ‘돗도리(鳥取藩)’, 미야기는 ‘덴도(天童藩)’, 야시로는 ‘시아에(鯖江藩)’ 출신이다. 에도(江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의 낮은 무사계급의 집에서 18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요즘으로 치면 도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의 가난한 무사 집 아들들이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일본 근대 법률학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의기를 투합하여 젊은 나이에 이 법률학교를 세운 것이다.
참으로 앞서가는 사람들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신분을 따지던 그 시대에 선구자적인 일을 했기 때문이다.
동창생들의 모금운동으로-
이 학교는 188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903년 전문학교령에 의해 메이지대학 전문부로 개편하였으며, 1920년 대학령에 의하여 메이지대학이 되었다.
그러나 대학의 틀이 갖추어지기까지 많은 고난과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법, 상, 정, 문의 4개학부의 학생들과 동창생들이 대학승격을 위한 모금운동을 한 것이다. 이 모금운동은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 학생들 및 동창생들의 분투와 정성으로 종합대학 메이지(明治) 가 탄생하였던 것이다.
새로운 탄생이란 고뇌가 따르는 법이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 이랄까?-
이 대학은 관동 대지진(1923년, 9월 1일)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일어서 1949년 2월 21일 신제 메이지(明治) 대학으로 인가를 받아 인재 양성을 위한 보폭을 넓혔다. 학부를 법, 상, 정치경제, 문, 공, 농의 6개 학부로 구성하였으며, 그 해 3월에는 야간제(2부 학교)도 설치하였다.
그리고 1980년 창립 100주년, 2001년 창립 120주년....을 거치면서 탄탄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형사(刑事), 법과 사람, 그리고 죄와 벌-
메이지대학 박물관은 건학정신인 ‘권리자유’ ‘독립자치’에 따라 설치되었다고 한다. 테마는 상품부문, 형사부문, 고고학 부문으로 분류하여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박물관의 특징이라면 형사(刑事) 부문이다.
이 대학의 태생적 배경이 법률학교이기 때문에 건학이념인 ‘권리자유’에 따라 형사(刑事)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일본의 죄와 벌」이라는 테마에는 다양한 법의 종류를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전시하고 있었다.
에도시대의 포획기구, 일본과 외국의 고문･처형구등 인권억압의 역사를 실물을 통해서 보도록 전시하였다. 특히, 길로틴(guilotine)과 뉘른베르크(Nürnberg)의 ‘철의 처녀’는 일본 유일의 전시품이다.
길로틴(guilotine)과 ‘철의 처녀’에 대한 박물관 직원의 장황한 설명이 있었다.
“이것은 프랑스혁명 때에 쓰였던 사형기구입니다. 바로 단두대(斷頭臺)이지요. 프랑스혁명이 계속되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으로 처형되어 공포의 상징물이 되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나, 루이 16세를 비롯해서 그 당시의 권력자들이 이 길로틴으로 공포정치를 단행했다가 자신들도 이것에 의해서 처형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철의 처녀’라는 것은 무엇일까? 인형 좌우로 펼쳐진 문에 다섯 개의 칼날이 있다. 인형의 몸 안에 갇힌 사람은 필사적이지만 칼로 전신이 찔려 뼈가 부서지고 피를 흘리며 무서운 공포 속에서 죽어 간다.
인권억압의 역사를 전한다고는 하지만 실물들이 끔찍하기도 하여 필자는 책임자급의 박물관 담당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이토록 무서운 고문기구, 사형대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까?”
“그러한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전시의 목적은 ‘죄와 벌’의 세계를 접하고, 동시에 인간존중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형사, 법과 사람, 죄와 벌에 대해 모든 사람들에게 실증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박물관은 고고학적인 가치가 있는 주요 문화재도 보유하고 있다. 여느 박물관에 뒤지지 않는 수준급의 유물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고고학은 인류의 과거를 탐색하고 생활과 문화의 변천을 다시금 구성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필자는 메이지 대학에서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헌책방 거리까지 한없이 걸었다. 뜨거운 도쿄의 거리였지만 그 곳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그래 인간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메이지 대학 박물관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그러나 죄를 짖지 않으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한 일 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