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의 서울 나들이 : 월간조선

2006년 10월 초, 일본 후쿠오카에서 극단 ‘시키(四季)’의 사사키 노리오(佐佐木典夫, 68세) 사장과 모처럼 전화 통화를 하였다. 여러 가지 얘기 중 “10월 28일 오후에 ‘라이온 킹’ 오픈 공연과 기념 파티가 있다”면서 꼭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날 마침 다른 약속이 있어서 공연은 관람하지 못하고 기념 파티에만 참석하게 되었다. 잠실 롯데 호텔의 파티 장에는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기업인인 필자는 단지 사사키(佐佐木) 사장에게 인사만하고 줄행랑을 칠 작정이었다. 그런데, 문화방송(MBC)의 최문순 사장이 반갑게 맞이하면서 “아! 초청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했다. 필자는 ‘저는 극단 시키(四季)의 초청으로 왔습니다’고 대답하면서 사람들 속에서 사사키(佐佐木) 사장을 찾았다.

필자는 문화방송과 극단 시키(四季), 샤롯데가 공동으로 ‘라인온 킹’ 공연을 주최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그 자리에서 문화방송의 최문순 사장과 극단 시키(四季)의 사사키(佐佐木) 사장을 소개하고, 그동안의 경과와 향후 계획에 대해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문화의 침략이다?

극단 시키(四季)는 공연계의 대기업이다. 창립 50년이 넘은 이 극단은 일본 전역에 8개의 전용극장을 소유하고 있다. 1년에 소화하는 공연만 2,500회나 된다. 창작 뮤지컬도 있지만,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많다. 시키(四季)의 ‘아사리 게이타(淺利慶太)’ 회장은 문화외교를 통해 국가 간의 정상 회담을 성사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문화 침략자란 비난과 뮤지컬 산업을 중흥시킨 주인공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개척자에게 따라다니는 고뇌(苦惱)의 꼬리표이리라.

이 극단이 ‘라이온 킹’을 들고 한국에 진출한다는 발표와 함께 ‘일본의 문화침략’이라는 부정적인 기사도 지면을 장식했다. 1년 내내 뮤지컬을 올릴 수 있는 전용극장이 하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뮤지컬 극장의 탄생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지만, 첫 공연 상대가 일본이라는 사실에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실제로 M 기획사의 한 직원은 “문화침략이라고 비약하고 싶지는 않지만, 뮤지컬 전용 극장의 첫 공연이 일본 업체라는 사실에 이해가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극단 시키(四季)의 ‘라이온 킹’은 첫 공연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자 왕'이 일본에서 길들여져 현해탄을 건너오는 동안 이런저런 도전을 받았던 것이다.

동물의 세계이자 인간의 세계

막이 오름과 동시에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이 펼쳐지고, 날이 새면서 동쪽 하늘이 밝아진다. 황금 빛 태양이 솟아올라 동물의 왕국을 찬란하게 비추며. 개코 원숭이 주술사가 ‘생명의 찬가’를 힘차게 부른다. 동물들은 그 노래를 들으며 왕국의 상징인 프라이드 록(Pride Rock)을 향해 움직인다. 그런데 무대에서 뿐만 아니라 객석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동물들이 몰려든다. 물론, 동물의 가면을 쓴 배우들이다. 동작 하나하나가 미세한 떨림까지 보여 주는 섬세함도 있지만, 커다란 코끼리의 등장도 압권이었다.

〈사자 왕 ‘무사파’의 통치 아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프라이드 랜드(Pride Land)-
훗날 왕권을 이어받을 아들 사자 ‘심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런데, 왕위 찬탈을 노리는 ‘무사파’의 동생이자 ‘심바’의 삼촌인 ‘스카’는 온갖 흉계를 꾸며서 ‘무사파’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조카 ‘심바’를 추방한다.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 난 ‘심바’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다......... 어느 날 우연히 어릴 적 친구 암사자 ‘나라’를 만나게 된다. ‘심바’는 ‘나라’의 설득과 아버지 영혼의 부름, 주술사 ‘라피키’의 인도에 의해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 오랫동안 ‘스카’의 지배를 받으며 황폐화된 왕국을 구하기 위해 ‘심바’는 ‘스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정의는 살아있다.......‘심바’는 결국 승리한다. 동물의 왕국은 ‘심바’의 통치 아래 예전의 평화를 찾는다.〉

생명의 위대함과 부모와 자식 간의 정(情)- 그리고 내면의 고뇌(苦惱)를 가볍지도 어렵지도 않게 잘 그려낸 스토리의 전개도 훌륭하지만, 물소 떼가 몰려오는 웅장함과 아버지의 영혼이 등장하는 무대의 기교는 ‘놀랍다’는 말 밖에 다른 표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천재적인 연출가 줄리 테이머(Julie Taymor)

줄리 테이머(Julie Taymor)는 1952년에 보스턴 교외의 의사인 아버지와 민주당 운동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줄리 테이머(Julie Taymor)의 부모는 ‘조각 교실에 다니고 싶다’는 그녀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주었고, 연극흉내 내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보스턴 아동 극단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 주어 연극 연습을 하면서 상상력을 마음껏 펼쳤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민족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어린 시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란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파리로 유학을 가서 르콕(Lecoq)학교에서 1년 동안 팬터마임을 배우며 성격이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마스크 사용법을 배우는 한편, 방과 후에는 ‘시네마 테크’에 드나들면서 일본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영화에 심취했다.

대학 졸업 후 해외 유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초 예정은 일본으로 가려 했지만, 잠시 들른 인도네시아에서 눌러 앉게 되었다. 동양의 낯선 나라 인도네시아는 그녀의 예술혼(魂)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연출 제의를 받은 그녀는 수개월 동안 인도네시아어를 익히고 다국적 극단을 꾸렸다. 그녀는 연출 뿐 만 아니라 목각 인형이나 마스크를 만들었고, 영화 기법을 연극 무대에 도입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 사이 일시 귀국하여 뉴욕대학에서 영화를 배우거나 일본에 단기간 머무르면서 일본의 인형극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1995년 그녀는 디즈니의 제작자 토마스 슈마커(Thomas Schumacher)로 부터 '라이온킹'의 연출을 의뢰 받았다. 탁월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섬세한 연출력을 가진 줄리 테이머(Julie Taymor)를 기용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줄리 테이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신뢰하는 사람이다. 생각이 떠오르면 이유나 전례를 불문하고 실현하고 마는 집착이 있다. 이것은 예술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시어터 저널리스트 이 마리노).

오는 10월 28일 막을 내린다

극단 시키(四季)의 이사(理事)인 ‘마쓰자키 아키라(松崎聰, 42세)’ 씨로부터 필자에게 메일이 들어 왔다. 뮤지컬 ‘라이온 킹’이 오는 10월 28일에 막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는 “라이온 킹의 종연에 따라 잠실 샤롯데 극장과의 임대 계약이 종료된다”고 했다. 그러나,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지난 해 10월 28일의 첫 공연 이래 한국의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으며, 더욱 수준 높은 작품을 선정하여 한국 팬들 앞에 또 다시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총 330회 공연으로 막을 내리게 되는 ‘라이온 킹’은 국내 대형 뮤지컬 최장기 연속기록을 세우며 막을 내리게 된다. 2007년 7월 30일 기준으로 70.4%의 유로객석 점유율과 202,500 명의 관람 흥행실적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성공의 요인은 무엇일까?
작품의 우수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브로드웨이처럼 기한을 정하지 않고 진행되는 오프런 공연 방식을 도입하고, 스타 중심이 아닌 실력 위주의 캐스팅, 한국 최초의 뮤지컬 전용극장에서의 상연, 합리적인 티켓 가격의 책정을 통해 국내 관람객들로 부터 큰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라이온 킹」은 1998년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하고, 미국, 일본, 영국 등 전 세계 9개국에서 장기 공연되는 등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더불어, 일본산 「라이온 킹」도 한국에서 나름대로의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아무리 우수한 문화라도 그 나라 안에서 고립된다면 세계인이 동의하는 보편적 가치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의 넓은 초원처럼 활짝 열린 상호이해와 공존의 문화교류가 한일 간에도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