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에 이어 연일 매스컴에 등장하는 말이 있다. 아프카니스탄 ‘탈레반’과의 협상이다. 그들은 22명의 한국인 의료‧봉사단을 인질로 하여 협상 시한을 미뤄가면서 자기들의 목적달성을 위한 위협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죄 없는 사람들을 인질로 하여 협상을 벌이고 있는 그들의 잔인함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할 따름이다. 그러나, 비록 범죄자들일지라도 이들과의 협상은 대단히 중요하다. 고귀한 생명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차원의 협상단이 파견되었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공포와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그들의 무사 귀환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상사례는 고려시대의 서희 장군과 거란과의 협상이다.”
서강대 안세형 교수의 주장이다. 안교수는 “글로벌 협상전략”에서 서희장군과 거란의 협상을 성공적인 협상의 사례로 들었다.
“고려 성종 말기인 993년에 거란의 침입이 있었다. 거란은 소손녕이 대군을 몰고 고려 땅에 쳐들어 왔다. 이러한 국가의 위기 속에서 서희 장군은 수행원 몇 명만을 데리고 거란의 장군 소손녕을 찾아가 협상을 하였다. 서희 장군의 뛰어난 협상 덕분에 거란군은 자진 철수를 하였고, 서희 장군은 고구려의 옛 땅이었던 강동 6주까지 되돌려 받았다.”
서희 장군이 협상에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거란의 고려 침공 목적이 ‘송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는 고려의 배후 기습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서희 장군이 간파하고, 이를 협상의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잡담을 하면서 탐색(探索)한다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협상을 잘 해야 한다. 일본 무역연수센터의 전무로 재직 했던 구보다 고우이치(窪田耕一) 씨는 비즈니스 협상의 4단계 순서를 제시했다.
제1단계가 잡담(雜談)을 통한 탐색이다. 잡담의 의미가 쓸모없는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좋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런저런 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나는 경우는 상대의 주변 얘기나 경력 등을 포함한 가벼운 주제를 말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만나는 경우는 상대국의 현황과 지인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경우 협상의 본래 목적인 업무에 관한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제2단계가 업무에 관한 정보교환이다. 당사자 쌍방의 상호 요구사항이랄까? 희망조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제3단계가 설득공작이다. 공작(工作)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나 양(兩)교섭 당사자가 각각의 설득전술을 사용하여 자기 쪽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하기도 하며, 상대측의 요구나 희망을 수용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제4단계가 양보와 합의다. 이것은 쌍방이 어느 정도의 양보나 조그마한 합의를 쌓아 올린 결과에 의해서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인은 끈질기다?
조윤제 님은 일찍이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사는 한국의 생활이 건설되어가고, 또 거기서 참다운 한국의 예술, 문학이 생생하게 자라날 것이다”고 했다. 조그마한 반도에서 대륙의 중압(重壓)을 받으면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은근’하고 ‘끈기’있는 문학예술 내지는 생활을 형성하여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정신은 비즈니스에서도 묻어나고 있는 것 같다.
구보다(窪田) 씨는 ‘교섭자의 중요자질’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한국의 경영자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교섭자의 자질은 ‘끈질김’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일본의 경영자들은 ‘일에 대한 열의’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고 했다.
구보다(窪田) 씨가 분석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열거해 본다. 한국의 경영자들은 교섭자의 중요자질의 우선순위를 ①공격적인 끈질김 ②존경과 신뢰를 얻으려는 능력 ③기획력‧준비력 ④신뢰성‧근면성 ⑤타인 신뢰성향 ⑥일에 대한 열의 ⑦친화양성능력의 순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일본 경영자의 경우는 ①일에 대한 열의 ②성실성 ③힘의 감지력‧이용력 ④존경과 신뢰를 얻으려는 능력 ⑤말의 표현력 ⑥도량의 넓음 ⑦청취력 순이다.
구보다(窪田) 씨의 주장에 의하면 한국의 경영자들은 공격적이고 끈질긴 교섭력을 중요시하고 있지만, 주로 인간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지연, 혈연, 학연 등의 요소에 의존하고 있는 점이 강하다는 것이다. 국제적 협상에 있어서는 통하지 않을 요소들이다.
물론 일본인의 경우도 ‘힘의 감지력과 이용력, 존경과 신뢰를 얻으려는 능력’을 높게 보고 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의나 성실성 등 업무 중심의 교섭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절차가 중요하다
일본의 비즈니스에서는 참으로 절차가 중요하다. 우리가 일본에서 길을 묻는다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절차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묻는 말 보다 답변이 더 길며, 한 번 주문한 음식을 바꾸려면, 그 다음의 절차가 더욱 복잡해진다. 어쩌면, 사회 전체가 매뉴얼화 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지적생활연구소(知的生活硏究所)가 펴낸 「대인(大人)의 매너」를 보면, ‘사람을 처음 만날 때도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넥타이 정도를 쳐다봐야 겸허하게 보인다’고 되어있다.
우리가 비즈니스 차원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은 명함 교환이다.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명함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면서 “처음 뵙겠습니다. 아무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명함을 돈 지갑 속에서 꺼내기도 하고, 주머니 속에서 한 움큼 꺼내 이리저리 뒤지면서 보물찾기를 하다가 자기 명함 한 장을 건져내어 상대방에게 건네기도 한다. 일본과의 비즈니스 협상에서 이러한 모습은 일단, 상대의 신뢰를 잃게 된다.
첫 대면이나 상대방을 방문하였을 경우는 자신이 먼저 명함을 꺼내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복수인 경우에는 최고 책임자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야 한다.
협상 석상에서도 상대로부터 받은 명함을 바로 명함 지갑에 넣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시간은 약 10분 정도가 적당하다. 협상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와서 그 사람의 특징을 명함에 메모한다. 우리의 경우 면전에서 상대방의 특징이나 업무 내용을 메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사람은 명함 뒷면에 상대방의 얼굴 윤곽을 그리기도 한다. 참으로 실례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협상은 상대방의 관점에서-’
우리의 삶은 협상 속에서 영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비즈니스의 세계는 협상의 연속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협상에 서툴다. 여전히 힘의 논리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 길거리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삭발하고, 심지어 분신자살 까지 하는 것도 모두가 협상의 미숙함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구보다(窪田) 씨는 미국 경영자의 교섭능력은 일본보다 몇 수 위라고 했다. 미국의 경영자가 중요시하는 교섭에 대한 자질을 보면 극명(克明)하게 드러난다. 그는 ‘기획력과 준비력, 중압감을 느낄 정도의 사고력, 판단력과 이해력, 말의 표현력, 상품지식’의 순으로 미국인의 교섭능력을 꼽았다. 이는, 비즈니스맨의 기본 자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협상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면 상대방의 행동을 예견할 수 있다”는 미국의 ‘매스 베이지만’ 교수의 말이 정석처럼 느껴진다.
상대방을 헤아리지 않는 자기중심의 독선과 편견은 협상의 실패로 줄달음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