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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토사구팽 칼날, 누구 향할까… 무리수엔 역풍도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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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2011년 11월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일의원연맹 한국측 회장인 이상배 의원과 와타나베 코조 의원연맹 일본측 회장을 비롯한 한.일 의원연맹대표단을 접견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결국 토사구팽 당할 게 아닙니까.”

 

대구지역 친박(친박근혜)계 한 의원이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이명박 후보 선거지원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받자 이렇게 맞받았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이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되면 친박계를 내칠 것이란 말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 후보가 박근혜 후보와 접전 끝에 선출된 직후였다.

 

이 후보 친형인 이 의원은 대구 지지율이 기대에 못 미치자 친박계를 설득하기 위해 나섰다. 이곳은 경선 당시 박 후보가 이 후보를 상당한 격차로 앞섰던 지역이었고 의원들 대부분도 친박계였다.

 

이 의원은 대구 시내 한 음식점으로 이들을 초청, 지원을 요청했는데 한 의원이 대선에서 이기면 우리들은 토사구팽 당할 게 아닌가라고 각을 세우자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졌다.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 실시된 총선에서 친박계 대부분이 낙천되는 공천 학살이 벌어졌던 것이다. 친이계에게는 그렇게 해야만 했던 사정이 있었다. 정권은 잡았으나 집권당에서 지지기반이 친박계보다 취약했던 만큼 세 확산이 시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이명박 정권 말기, 그리고 박근혜 정권 때 총선에서 잇따라 친박계로부터 앙갚음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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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대통령이 1990년 6월 1일 저녁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 등 세 최고위원과 박준규 국회의장, 김재순 전 국회의장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재순·박준규 전 국회의장은 이승만 정권 때 소장파의원 모임을 통해 정치개혁과 부패청산에 뜻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었다.

 

·박 전 의장은 5·16 쿠데타 이후 공화당에 입당, YS와 여야로 갈라서기도 했지만 19903당 합당(민자당)을 계기로 다시 뭉쳤고 ‘YS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그러나 YS정권 출범 직후, 부정부패 청산과정에서 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에 휩쓸리면서 밀려나게 됐다.

 

김 전 의장은 1992년 대선 때 YS를 둘러싸고 후보자질론이 제기되는 등 당내 논란이 커질 때 이를 불식시키는 데 적극 나섰고 일등공신으로 꼽히며 총리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재산공개 파문으로 출당까지 당하자 토사구팽이라며 배신감을 토로하고 정계를 떠났다.

 

당내 기반을 다져야 했던 YS와 민주계로선 부정부패 척결·하나회 숙청 등 개혁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당 안팎의 지지세력을 확산시켜 나갔다. 3당 합당 주역 중 한 명인 김종필(JP)조차 2선후퇴 압박으로 내쳤다.

 

박 전 의장은 재산공개 파문이후 국회의장직을 사퇴한 뒤 당대표 JP와 함께 탈당, 자민련을 창당했다. 자민련은 총선에서 민자당 텃밭 대구까지 석권하는 돌풍을 일으켰고 1997년 대선에서는 YS 정권에 맞선 DJP(김대중-김종필)연대를 통해 설욕했다. JP는 공동정권의 한 축으로 총리가 됐고 박 전 의장도 국회의장으로 복귀했다.

 

정대철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도 노무현 정권 일등공신이었으나 집권 초기 권력형 비리사건인 굿모닝 게이트로 수감되면서 정치적으로 추락했다.

 

2002년 대선 때 노 후보가 민주당의 지방선거 참패 등으로 여론지지율 하락세를 보이며 후보교체론에 휩쓸릴 때 중진 회동을 주선, 당내 반발 무마에 나섰고 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 했다.

 

대선 직후에는 집권당 대표까지 맡게 됨으로써 상승세를 탔으나 열린우리당 창당문제를 놓고 친노 소장파들과 갈등을 빚었고 불법대선자금 모금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당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 총선 출마도 좌절됐던 것이다.

 

당시 그는 희생양이 됐다며 배신감을 토로했고, 결국 노 대통령 및 친노 측과 등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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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에서 권성동 원내대표가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토사구팽은 필요악이다

 

아무리 공신이라고 해도 정권기반 다지기에 주력해야 하는 대통령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내쳐질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정권에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사구팽은 역대 정권에서 반복돼 왔던 것이다.

 

또 필요악이기에 제대로 해야 했다. 토사구팽에 무리수가 동원됐을 땐 역풍이 불었던 것이다.

 

국민의힘 상황은 어떨까.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이나 이준석 전 대표도 대선 공신들이었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이 전 대표는 당 대표 자리에서 쫒겨난 후 비대위에 이어 전국위 개최 금지 가처분신청 등을 잇따라 내면서 윤핵관 측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신군부에 비유하는 등 대립각을 한껏 세웠던 게 비난여론을 고조시켜 당 윤리위에 의해 탈당 권유나 제명당할 수 있는 궁지로 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당내 혼란 책임론에 휩싸이며 퇴진 압박을 받자 새 비대위 구성 후 사퇴를 시사했으나, ‘조기 퇴진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내부총질, 체리따봉이란 윤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를 공개함으로써 당내 갈등에 윤 대통령을 끌어들여 더욱 격화시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장제원 의원은 윤핵관 책임론이 확산되자 임명직을 맡지 않고 지역구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등 2선 후퇴를 선언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지 지켜볼 일이다. 1997년 대선 때 DJ 측근들도 그런 선언을 했지만 집권 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장관 자리까지 꿰찼다. 장 의원에게는 유사한 전과(前科)도 있다.

입력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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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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