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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이준석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잘 지는 법 고민해야”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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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71년 4월 10일 야당인 신민당의 부산유세에서 지원연설을 한 김영삼씨가 김대중 후보의 손을 들어주며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신민당 후보지명대회에서 YS(김영삼)DJ(김대중)에게 역전패 당했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당내 세력분포에서 주류에 속했고 원내총무이기도 했던 만큼 당선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명대회 전날 후보수락 연설문을 직접 작성, 예행연습까지 해뒀다. 마감시간에 쫓기던 일부 신문은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아예 그가 선출됐다고 보도했을 정도였다.

 

이 같은 판세가 뒤집어 졌기에 당시엔 정보기관 공작설까지 설득력 있게 회자됐다.

 

하지만 YS는 즉석연설을 통해 김대중 씨의 승리는 신민당의 승리이고 나의 승리라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 뒤 후보 당선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대선 3년 후 40대의 나이로 신민당 총재 경선에서 승리, 야당 지도자로 부상하게 됐고 결국 1992년 대선을 통해 대권까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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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0일 한나라당 제9차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후보가 17대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손을 들어 기뻐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경선 결과에 승복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명박·박근혜 후보는 상대방을 겨냥, 최태민 목사 논란· BBK 의혹 등 각종 네거티브 공세를 한껏 강화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거듭했다.

급기야 당 지도부가 양측 캠프 인사들에게 제명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초강경 대응입장을 밝혀야 했을 정도였다,

 

막판까지 접전양상을 보인 끝에 최종 승패도 간발의 차이로 갈렸다. 여론 지지율에서 앞섰던 이 후보가 당심에서 우위를 보였던 박 후보를 1.5%P 차이로 힘겹게 이겼던 것. 박 후보 측 일각에선 경선 불복 움직임도 포착됐다.

 

그러나 박 후보는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하루에 안 된다면 몇 날에 걸쳐서라도 잊고 다시 열정을 채워 정권교체에 쏟아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랬던 박 후보는 5년 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대선 전초전으로 치러졌던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승부수를 던졌던 게 주효했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과 야권연대 움직임으로 비상이 걸렸던 한나라당에서 비대위원장과 중앙선대위원장을 떠맡아 총선을 진두지휘,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승리를 이끌어 냈던 것이다.

 

이를 지렛대로 대권가도에도 탄력이 붙었고 결국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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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4일 오전 서울 올림픽펜싱경기장에서 열린 국민신당 창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인제 후보가 이만섭 총재, 장을병 최고위원와 함께 두손을 들어 환호하는 당원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이인제 전 의원은 정반대 길을 걸었다. 1997년 대선 때 한나라당 경선에서 졌으나 이회창 후보의 여론지지율이 아들 병역비리 의혹 등으로 곤두박질치자, 탈당해 정치권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출마를 강행했던 것이다. 탈당 2년 전, 대통령 YS차기 대통령은 세대교체 된 깜짝 놀랄 만한 젊은 인물이라는 등 그를 지칭한 듯한 발언으로 세대교체론에 불을 지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출마는 결국 보수층 분열을 심화, 정권을 넘겨주게 됐다.

 

정권교체 후에는 DJ의 새천년민주당에 합류, 차기 대선을 앞두고 당내 유력 주자로 꼽히는 등 상승세를 탔으나 거기까지였다. 경선 과정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불리해지자 DJ 측을 겨냥하며 반발하다가 경선을 중도포기하고 또 다시 탈당해버렸던 것.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친정인 새누리당(한나라당 후신)으로 15년 만에 복귀했으나,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낙선했고 2020년 총선에선 공천에서도 탈락하면서 정치판을 떠나게 됐다.

 

# 국민의힘 집안싸움이 갈수록 가관이다.가처분 신청이 어느 쪽으로 결론 나든 본안 소송까지 이어질 수 있는 형국이어서 더욱 볼썽사나워질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쪽은 윤핵관이 아니라 이준석 전 대표다. 당내 권력싸움, 그것도 정권 실세인 친윤 측에 의해 쫒겨난 그의 처지 역시 날로 곤궁해지고 있다. 당내 기류가 친윤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자신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했던 정치인들까지 하나 둘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전 대표의 결단이 시급한 때다. 대선승리에 기여했던 당 대표였던 만큼 갓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안착을 위해서도 결단은 더욱 필요하다.

 

물러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정치적 도약을 꿈꿀 수 있는 법이다. 질 때는 잘 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을 정치권에 데뷔시킨 박 전 대통령도 그 길을 택했다. 정치판은 단판 승부로 끝장을 내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력 :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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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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