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총장 시절인 2020년 2월 13일 부산 연제구 부산지검을 방문한 윤석열 당선인(맨 오른쪽)이 ‘윤석열 사단’으로 꼽히는 당시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윤석열 당선인은 정면 돌파하는 승부사다. 누구처럼 구질구질하지 않다. 이번 한동훈 검사장의 법무장관 지명은 당선인의 승부사 기질을 또 한 번 보여줬다. 윤 당선인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대선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선거중인 줄 아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뜨악했을 것이다. 설마 저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을 게 분명하다. 한동훈 지명 이후 민주당이 보인 반응을 보면 저 진영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알만하다.
전날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을 만장일치 박수로 통과시킬 때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것 같다. 172석이라는 절대의석을 갖고 못 할 게 뭐냐는 식으로 기고만장했다. 집권 5년 만에 정권이 교체가 됐으면 자숙을 할 만 한 데 반성을 모른다. 이번에도 극렬 ‘팬덤’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동안 ‘문자폭탄‘으로 민주당 의원들을 좌지우지하던 ‘친문’ ‘친조국’ 극성팬에 이번에는 친(親)이재명계까지 가세했으니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이재명을 살리려면 지금 검찰 힘을 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동훈이라니..
민주당은 13일 발칵 뒤집혔다. 지난달 새 원내대표로 뽑힌 박홍근 대표의 발언을 보면 내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인사 참사” “대국민 인사테러” “상상초월” “검찰 사유화” 등 온갖 비난 수사가 총동원됐다. 그도 그럴 것이 박 원내대표는 이재명의 지원으로 새 원내대표가 된 사람이다. 작년 민주당 대선 때 일찌감치 이재명 캠프로 갔고 비서실장도 지냈다. 원내대표 경선 때 “문재인과 이재명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한동훈의 법무장관 임명을 어떻게든 막아야 할 입장이다.
이 와중에 한 장관 후보자는 천연덕스럽다. 민주당이 어떤 난리법석을 떨어도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검찰은 법과 상식에 맞게 진영 가리지 않고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들으라는 듯 “나쁜 놈들”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이 자신을 법무장관에 지명한 것은 “나쁜 놈들 잘 잡으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친 것이다. 그러면서 윤 당선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개인적 인연에 기대거나 맹종(盲從)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후보자의 지명은 ‘신의 한수’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그에 대해 “정권 수사를 거의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 일각의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불가론’에 대해 “일제 독립운동가가 정부 중요 직책에 가면 일본이 싫어해서 안 된다는 논리랑 똑같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이때부터 이미 “내가 당선되면 누가 뭐래도 한동훈과 함께 간다”고 생각한 듯하다. 대신 서울중앙지검장 자리가 아닌 법무장관으로 최종 방향을 틀었다. 민주당에 보복수사를 한다는 빌미를 주지 않아도 되고 여간 고단수가 아니다.
4월 12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구 동성로를의 한 분식집에서 어묵국을 먹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한 후보자에 대한 당선인의 신뢰는 개인적인 호불호와 상관없다. 과거 두 사람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자신부터가 항명과 좌천을 거듭해온 ‘천상검사’ ‘강골검사’다. “검사는 법대로 하면 된다”는 게 그의 원칙이고 철학이다. 2018년 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전격 발탁된 후 중간간부 인사에도 파격인사가 있었다.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검사로 발탁한 것이다. 전임에 비해 다섯 기수나 아래로 엄청난 파격인사였다. 특수수사에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했던 윤 당선인 입장에서는 그가 가장 적임자였다. 윤 당선인은 당시 “한동훈은 내가 부탁을 해도 안 들어줄 검사”라고 평가했다.
한동훈 지명을 통해 당선인의 인사스타일과 리더십은 재조명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내부 전열 정비를 위해 강공(强攻)을 펴고 있지만 윤 당선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강공을 통해 초반부터 그를 길들일 필요가 있는데 전혀 주눅이 들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윤석열’을 아직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이 누군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내놓은 조국과 추미애, 박범계 등 법무장관 ‘트리오’가 아닌가. 윤 당선인은 누가 뭐래도 제 갈 길을 간다는 것이 이번 법무장관 지명을 통해 또다시 드러났다. 여느 기존 정치인들처럼 윤 당선인은 정파나 사람에 대한 빚이 없는 사람이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가면 그만이다. 진영과 정파의 이익, 특정인 보호를 위해 ‘검수완박’한다며 박수치며 만장일치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다. ‘윤석열은 윤석열의 원칙대로 갈 뿐이다.’ 누구처럼 한 입으로 두말하고 참모 연출 뒤에 숨어 ‘대독(代讀) 대통령’이나 할 사람이 아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고 모든 게 순리대로 가게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