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25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사진=조선일보DB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 의상구입비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을 부른 당시가 떠오른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당시에도 형과 부인, 측근 비리가 원인이었다. 2008년 12월 노 전 대통령 형 건평 씨가 세종증권 매각 비리로 구속되고 부인 권양숙씨 마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3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은 급속도로 수렁에 빠졌다. 이 전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 문 대통령이다. 참여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재임 중 청와대의 친인척 비리 단속만 제대로 됐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 대통령의 청와대나 당시 참여정부 청와대는 한결같이 친인척 비리에는 맥을 못췄다. 노 전 대통령 건평씨 사건 만해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감반에서 제대로만 조사했다면 퇴임한 노 전 대통령이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안긴 것은 부인 권양숙씨 수뢰(受賂) 혐의였다. 부인 권 씨가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 박 회장으로부터 13억 원을 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노 전 대통령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운명》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사실 형님 문제는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각별히 신경을 썼던 일이라 아차 싶었다. 철저히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기업 쪽 사람들은 매우 강력하게 부인했다. 형님에게도 확인했다. 같은 얘기였다” 당시 세종증권 매각 비리와 관련해 청와대도 첩보를 받아 조사를 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설명이다. 하지만 형 건평씨와 기업 쪽 모두 혐의를 부인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는 수사권이 없어서 더 이상 파고들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해명을 보면 노 전 대통령 부인 권 씨 사건은 눈치를 못 챘던 모양이다. 형 건평 씨야 세종증권 비리 사건 전부터 ‘봉하대군’으로 구설수를 달고 다녔으니 그렇다쳐도 부인 권 씨 사건은 의외였다. 당시 퇴임한 노 전 대통령 법률 대리를 맡았던 문 대통령은 그 때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부인 권 씨는 노 전 대통령에게 큰 실수를 하게 돼 자신들에게 너무 면목이 없어했다”고 했다. 부인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때는 변호인으로 직접 입회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확히 모르다가 자신들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권 씨에게 따져묻고 권 씨가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문 대통령은 기록했다.
지난 3월 10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난을 받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30일 서울 대검찰청에 출두했다. 노 전 대통령이 탄 버스는 김해 봉하 마을에서 서울 서초동 대검까지 오는 내내 취재차량과 방송헬기에 의해 생중계됐다. 부인 권 씨가 받은 100만 달러와 현금 3억 등 총 600만 달러 이상을 받은 ‘피의자’ 신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노무현은 600만 달러 뇌물을 받은 사람으로 돼 있었다. 자기 잘못을 아내한테 떠넘긴 못난 남편이 돼 있었다. 나는 파렴치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며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문 대통령이 밝힌 대로 청와대의 친인척 비리 단속 기능의 마비에서 비롯됐다. 민정수석실이 제대로 기능을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청와대나 지금의 ‘문재인 청와대’ 모두 이런 기능 자체가 없거나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청와대는 게다가 친인척 비위를 감찰하는 청와대 특별감찰관을 임기 내내 임명하지 않았고 제도 폐지까지 추진했다. 자신들이 ’적폐‘로 규정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시행했던 제도를 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씨의 의상 구입과 의전비용 문제도 문재인 청와대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켜갈 수 없다. 논란 내내 “국가 안보에 관한 사항”이라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다가 급기야 “특활비 등 국가 예산을 사용한 적 없고 사비로 샀다”고 했다. 사비로 샀다면 그 지출 내역만 밝히면 되는데 그것은 또 “공개할 의무가 없다”며 눙치고 있다. 청와대가 도무지 사건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
이 와중에 문 대통령 입장이 중요한데 이상하리 만치 침묵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스승 노 전 대통령이 부인과 친인척 문제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보고도 저러고 있다. 청와대 사무실마다 ‘춘풍추상(春風秋霜: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되 자신에겐 가을 서리처럼 차갑고 엄격해야 한다)’글을 걸어놓고 그렇게 자랑하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임기를 며칠 남겨놓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문 대통령은 자신들이 왜 ‘내로남불 정권’이란 소리를 듣는지 모르고 있다. 참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