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8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성남 ‘대장동 게이트’와 관련한 이재명 경기지사의 ‘말의 성찬’이 현란하다. 이 지사는 20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대장동 개발 사업은 “그간 특정 소수가 독식하던 개발이익을 70%(5500억원) 이상 공공에 회수한 모범적인 환원 사례”라고 말했다. 줄 곧 해오던 “단군 이래 최대 공익환수 사업”이란 기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장동 게이트는 위험은 공공이 떠안고 수익은 개인이 가져가는 사업구조를 통해 민간업자에게 수천 억 원의 이익을 안긴 불법 특혜의혹 사건이다. 이미 당시 사업을 주도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구속돼 있고 이 지사는 당시 허가권자인 성남시장으로 ‘몸통’ 의혹을 받고 있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신동아 창간 90주년 여론조사)에서도 대장동 게이트는 “이 지사 등 민주당에 책임이 더 크다”는 여론(58.1%)이 과반수를 넘는다. 이 지사가 집권 여당인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고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진땀을 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요즘 국회에서 야당 의원과 입씨름을 벌이는 이 지사를 보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지사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자주 거론하곤 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변호사 영향으로 ‘인권변호사’가 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과거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연수원 시절 한 강연회에서 노 변호사가 “변호사는 굶지 않더라”라고 해서 변호사 개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심지어 변호사 개업 때 대출보증은 《전태일 평전》 저자인 인권변호사 조영래씨가 해줬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 변호사의 친구인 장기표 전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지금 이 지사에게 ‘조폭 연루설’과 대장동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민주당 정치인답게 이 지사는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부쩍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 이 지사가 요즘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관련해 야당 의원들과 측근 시비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지사가 닮고 싶은 노 전 대통령도 측근과 관련된 일화들을 많이 갖고 있다.
10월 18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들으며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2003년 취임 한 달도 안 돼 터진 나라종금 사건에는 노 전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씨가 연루됐다. 당시 국회 첫 국정연설을 앞두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은 안희정씨를 앞에 두고 “희정씨, 이번 국정연설에서 나라종금 건을 다 밝혔으면 해요”라고 했단다. 당시 청와대 연설비서관 강원국씨가 그의 책(《대통령의 글쓰기》)에서 전한 내용이다. 그는 연설문에 담으라며 “‘나라종금 사건’에 저의 참모가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다. 저를 위해 일했던 사람의 잘못은 곧 제 잘못이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고 법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으면 임기를 마치는 대로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고 구술했다고 한다. 참모들의 만류로 연설문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결벽에 가까운 솔직함을 보였다”는 게 강씨 말이다.
또 2004년에는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연루된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노 전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에서 측근문제에 대해 “최도술씨는 20년 가까이 일을 맡았고 안희정씨는 15년 가까이 됐다. 이들이 조달하고 사용한 대선자금은 저의 손발로서 한 것이다. 법적인 처벌은 받되 정치적 비난은 저에게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럼 이 대목에서 이 지사 발언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사는 노 전 대통령과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지난 1일 유 전 본부장이 체포된 다음 그는 아예 “유동규는 측근이 아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유 전 본부장 비리가 드러날 경우 어떡할 거냐고 묻는 기자 질문에도 “한전 직원이 뇌물 받고 부정행위를 하면 대통령이 사퇴하느냐?“고 했다. 이미 ‘이재명의 장비(張飛)’로 언론에 버젓이 소개된 자신의 측근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부인해 버렸다.
유 전 본부장이 어떤 사람인가. 2010년 성남시장 당선 때는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에, 2014년 성남시장 재선 때는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2018년 경기지사 당선 후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중용한 측근 중의 측근 아닌가. 그런 유 전 본부장에 대해 그는 심지어 20일 국정감사에서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 임명 절차조차 기억 안 난다고 부인했다. 18일 국감 전 “(유동규에게)정말 배신감을 느낀다“고 한 것에서 한걸음 더 나갔다.
10월 18일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이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조폭연루설'을 주장하며 관련 돈다발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조폭연루설' 의혹과 별개로 이 돈다발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조선일보DB
유동규 측근 논란과 함께 이 지사의 조직폭력배 변론도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노무현 강의를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는 이 지사가 2008년 조폭을 변호해놓고 “조폭인 줄 모르고 변론했다”고 변명한 사실이 20일 《문화일보》 보도로 확인된 것이다. 《문화일보》는 이 단독보도에서 “당시 이 지사가 변호인 이름을 올린 판결문 2건을 입수 분석했다”며 “조폭인 줄 모르고 사건을 수임했다는 취지의 이 후보 해명과 다른 것으로 나타나 거짓말 논란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지난 10일 3개월간의 대선후보 선출 경선의 대장정을 거쳐 집권 여당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 지사는 보통 대선후보 선출과 함께 누려야 할 컨벤션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지율이 하락하는 ‘역(逆)벤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그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갈 날들이 보인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매사에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진정성으로 승부를 하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지사에게는 이런 ‘진정성’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혹여 내년 3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미덥지 못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