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우행(虎視牛行)

잠행을 하며 등판시기를 노리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9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의 강릉 회동 사실이 전해지면서 그의 최근 근황이 알려졌다. 권 의원뿐 아니라 지난 26일에는 ‘충청맹주‘ 국민의힘 5선 정진석 의원, “나는 임차인입니다”의 주인공 윤희숙 의원 등을 잇달아 만났다. 윤 전 총장의 대선 시계가 서서히 작동을 시작한 것이다.   

윤석열의 등장은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합류냐, 제3지대냐를 놓고 저울질하던 윤 전 총장이 이 시기에 움직인 데는 그 함의가 있어 보인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여론의 중심에 있을 때 국민의힘 소속 ‘컨택포인트’랄 수 있는 의원들과 연쇄 접촉을 가진 것이다. 충분한 정치적 검토를 거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기왕 국민의힘과 함께 할 거라면 전당대회가 한창인 이 시기가 적기라고  본 것이다. 

이미 언론도 이 부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이르면 7월 윤 전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전 총장 측도 극구 부인은 않는 눈치다. 권 의원과의 강릉회동에서도 윤 전 총장은 “(정치에) 열과 성을 다하겠다”며 주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인증샷을 찍었다. 국민의힘과의 공개 행보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의 이런 공개 행보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와는 어떤 연관을 맺을까. 현재 야권의 대선주자 1위를 달리고 있는 윤 전 총장이 차기 당 대표가 누가 되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국민의힘에 합류해 무난히 야권 대선후보 자리를 차지하려면 차기 당 대표는 자신과 궁합이 맞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 속내를 밝힐 수 없을 뿐이지 당연히 그 후보감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어떤 후보를 당 대표로 생각하고 있을까.

강릉 회동을 가진 권 의원측은 “민감한 시기라 전당대회와 관련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윤 전 총장과 장시간 회동을 가진 정진석 의원 측도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하지만 4선, 5선의 국회의원으로 정치 베테랑인 사람들이 윤 전 총장과 만나 전당대회 관련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만났다 해도 정 의원과 권 의원은 윤 전 총장과 그 정도 대화는 가능한 연비연사가 있다. 언급을 않을 뿐이라 봐야 한다.    

당장 윤 전 총장은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와 TV토론회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31일 첫 TV토론회에서도 윤 전 총장 등 당 밖 대선주자들의 경선 참여여부가 관심사였다. 이준석 후보는 어김없이 자강론을 주장했지만 나경원·주호영 후보는 ‘통합론’이다. 즉 이준석은 “7월 경선 버스는 예정대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고 나·주 후보는 공정 대선관리를 위해 ‘단일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위해 9월까지 경선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설왕설래이고 후보들의 속내는 다르다. 이준석 후보의 ‘자강론’은 ‘유승민 대통령 만들기’라는 꿈을 실현하겠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속내는 그럴지 몰라도 공정경선 약속은 잊지 않는다. 나경원 후보는 전당대회 출마 전까지는 ‘자강론’이었다. 스스로 대선출마를 저울질했기 때문이다. 당대표 후보로 방향을 틀면서 일단 윤 전 총장 등 당 밖 인사들의 지원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통합론으로 돌았다.

주호영 후보는 일찌감치 통합론으로 자신이 당대표가 돼야 안정적이고 공정한 대선관리가 가능하다고 해왔다. 윤 전 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등과의 친분도 있다. 영남배제론이 나오자 대선 후보와 당 대표가 조합이 잘돼야 한다며 오히려 역공을 폈다. 

2021년 4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윤석열 관련 책들이 비치돼 있다. 야권의 대권주자로 꼽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관련된 책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은 겉으로는 누가 당 대표가 돼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라는 게 윤 전 총장 측 인사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염두에 두고 있는 후보가 있다는 전언도 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공정’과 ‘법치’다. 여권으로부터 기획축출을 당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공평무사의 정신 때문이다. 살아있는 권력의 위선과 불법, 헌법파괴와 법치무시에 저항하는 바람에 야권 대선주자 1위가 된 것 아닌가. 윤 전 총장과 관련해 6·11 전당대회 마지막 날이 기다려지는 건 이런 이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