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3월 민국당 창당 당시의 허주 김윤환. 사진=조선일보DB
#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주역은? 후보캠프의 핵심 참모도, ‘노사모’도 아니고 허주 (虛舟, 김윤환 전 한나라당 부총재)라고 해야 한다.
허주가 구상했던 영남후보론이 없었다면 노무현은 후보가 되는 것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영남후보론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가 허주를 팽시켰던 상황과 맞물려 있다. 허주는 1997년 대선때 이 후보의 킹메이커였음에도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학살’ 당하자 설욕을 벼르게 됐다.
그러나 자신은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고 새천년민주당이 2002년 대선에서 그의 구상을 현실화시켰다. 호남을 텃밭으로 갖고 있는 정당의 후보가 영남에서도 선전할 수 있다면 당선될 것으로 자신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은 당내 후보경선 직전까지만 해도 한 자릿수 여론지지율에 그칠 정도로 이인제 대세론에 크게 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 DJ(김대중)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 경선에서 예상을 깬 1 위를 차지한 데 이어 같은 영남출신이던 김중권 후보까지 중도 사퇴함으로써 영남권을 장악, 극적인 경선승리를 이끌었는데 이 과정에 DJ 의중이 작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후보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영남후보론을 역설했던 여권 핵심이기도 했다.
영남후보론의 위력은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됐던 1987년 이후 당선자들이 DJ를 빼곤 모두 이곳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입증됐다. 호남출신인 DJ도 DJT(흔히 DJP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DJT이다)연대를 통해 대구경북에서 앞서 대선 때보다 4%이상 더 득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결국 호남출신이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충청과 함께 대구경북의 손을 잡았던 셈이다. DJT는 DJ+JP(김종필 )+TJ(박태준 전 자민련 총재)를 뜻한다.
2003년 7월 31일 16대 국회에서 유시민, 김부겸 의원 등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7년 1월 24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선주자 초청 조찬 좌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더불어민주당의 주류세력인 친문 측에서 내년 3월 대선과 관련, 후보경선 연기론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은 뭘까.
경쟁력에서 앞서는 친문(친 문재인) 후보가 아직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우 여론조사에서는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르고 있지만, 친문 측과 갈등관계를 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경선을 연기하려는 더 큰 이유는 영남권 후보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영남 후보감으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던 조국 전 법무장관과 김경수 경남지사는 딸 입시비리와 대선 댓글조작 등의 사건에 각각 연루돼 정치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영남출신이지만 출마 가능성은 아직 낮아 보인다.
안동출신인 이 지사 외에는 여권의 영남후보가 없는 형편이지만, 그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친문 측은 대안 모색 쪽으로 기울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 보장’ 문제를 놓고 이 지사를 믿기 어렵다는 분위기도 적잖다. 또 초등학교 졸업후 수도권으로 이사와 생활해왔던 그를 영남후보라고 내세우기에는 표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영남출신이면서 동시에 친문인 후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20%대로 추락하면서 집권당보다 뒤지는 등 레임덕 (권력 누수 )이 현실화된 상황을 감안하면, 대선국면에서 친문의 기세가 꺾이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당내 후보 경선문제를 포함, 이래저래 딜레마에 빠져있는 게 이들의 현주소인 셈이다.
야권은 여권과 정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영남 후보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비(非)영남후보가 선두를 고수하고 있다. 영남후보라고 해도 이곳이 보수야당의 텃밭이란 점을 감안할 경우, 여권에 비해 플러스 알파 효과는 약할 것이다.
2018년 5월 22일 오전 부처님오신날,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 조계종 조계사에서 열린 법요식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영남 출신으로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과 무소속 홍준표 의원 등이 있다.
유 전 의원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된 ‘배신자’ 낙인을, 홍 의원은 표 확장성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영남출신이지만, 야권 지지기반인 보수층에서 득표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야권의 유력 주자로 떠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는 비영남 출신이란 게 약점이 될 수 있다. 자신은 서울 태생이고 부친은 충청 출신이다. 윤 전 총장 측에 영남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얘기는 지역적 한계를 보완하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여권에도 야권에도 영남출신 대선 주자가 있기는 하지만, 본선 후보가 되기에는 아직 난관이 만만치 않다. 이번 대선도 역대 대선 양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영남 후보이거나 DJ처럼 영남세력을 끌어안을 수 있는 후보를 내세울 수 있을지가 승부의 관건이 된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이 문제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를 지켜보면 대선정국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