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1. 칼럼

【서봉대의 ‘되짚기’】 윤석열 선택은, YS? DJ? 昌?

서봉대  정치 칼럼니스트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노태우 대통령과 김재순 국회의장 및 여야대표들이 1989년 5월 30일 오후 국회 로턴더홀에서 열린 제 13대 국회 개원 축하연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길중 당시 민정당 대표, 김대중 평 민당 총재, 김재순 국회의장,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 사진=조선일보 DB

#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심경”이라고 했다.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그가 1990 년 1 월 신군부 정권과 함께 3 당 합당의 한 축이 됐다는 건 정치인생을 건 승부수였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한 차선책이었다고 역설했지만 당 내부에서조차 의원들이 이탈하는 등 반발이 거셌기에 정치적 승산은 그리 밝지않았다.


JP(김종필 전 총리) 신민주공화당을 포함한 3 당 합당후 대표최고위원을 맡기는 했으나 대선후보로 가는 길은 첩첩산중이었던 것이다. 


당내 세력분포만 해도 합당 신당인 민주자유당의 국회의원 의석 219 석 가운데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민정계 의석은 125 석이나 됐던 반면 YS 민주계의 경우 59 석에 불과했던 것. 공화계는 35 석.


세확산이 절실했던 YS는 민정계 공략에 적극 나섰으며 특히 노태우 킹메이커였던 김윤환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하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 


승부수도 주효했다. 내각제개헌에 부정적이었던 YS는 합당 합의였던 내각제 각서가 유출되자 당무거부와 마산행을 결행, “공작 정치”라며 노 대통령과 팽팽히 맞선 끝에 여권 기류를 내각제 포기 쪽으로 돌렸다.


연말 대선을 앞둔 1992 년 3 월 총선결과 민자당 참패에 따른 대표책임론으로 대선가도에 적신호가 켜졌을 땐, 곧바로 대선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해 정국을 일거에 대선국면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수세에서 벗어났고 후보자리도 꿰찼다.


YS는 집권하자 문민정부를 선언,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 실시에 이어 각종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는 등 잇따라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 DJ(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DJP 연대과정에서 지지세력의 반발에 직면했다. 유신체제와 3 당 합당에 맞서 싸웠던 그가 JP와 손잡는다는 건 명분이 약한 행보였기 때문이다. 


DJ에겐 이런 반발보다 절박감이 더 컸다. 


자신이 창당했던 새정치국민회의가 1997 년 대선을 1 년 8 개월 앞둔 총선에서 사실상 패배, 대선 가도가 더욱 험난해졌다. 대선에 세 번이나 떨어지고 다시 도전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때문에 내각제를 고리로 한 JP의 연대 제의를 정치적 위기상황을 반전시킬 기회로 판단했을 것이다. 


총선직후 JP가 이같은 제의를 하자 DJ는 협상팀을 즉각 가동했다. 민자당에서 탈당한 JP 자유민주연합이 충청권은 물론 집권당 텃밭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며 세를 한껏 불린 상황이었던 만큼 DJ로선 더욱 쏠렸을 것이다.


JP와의 연대를 통해 색깔공세를 비켜갈 수 있었으며 보수층을 의식한 우클릭 행보도 강화했다.


결국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끌어낸 첫 대통령이 됐고 각종 개혁정책과 함께 남북간 첫 정상회담도 성사시켰다.


# DJ와 대권경쟁을 벌였던 이회창 한나라당(민자당 후신) 후보는 JP의 연대 제의를 뿌리쳤다. 당내 반발도 있었지만 '3 김시대 청산'을 역설해왔던 입장에서 JP와의 연대란 설 자리가 더욱 좁았다.


선거 초반 대세론을 구가하기도 했지만 아들 병역비리 의혹과 이인제 후보의 독자출마 등 악재들로 지지율이 하락세를 거듭하자, 일부 참모들은 연대를 거듭 호소했으나 ‘대쪽’ 이미지의 그에게 재고의 여지란 없었다.


조순 민주당과 합당한 것을 계기로 선거전 막판에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 DJ와 접전양상으로 치닫다가 역대 대선중 가장 적은 격차인 39 만표 (1.6%)를 뒤졌다. JP와의 연대여부가 승부를 갈랐다고 볼 수 있다.


# 정치에선 명분이 중요하다지만 그것에만 집착해야 하는 건 아니다. 명분이 약하더라도 정치적 실익이 크면 실리를 택할 수 있다. YS도, DJ도 그랬다.


유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아직 정치권으로 진입하진 않았지만 기정사실로 보는 시각이 적잖다. 


입당(합당), 연대, 독자출마 등 어느 쪽을 택하든 윤 전 총장도 명분과 실리를 놓고 숙고를 거듭해야만 할 입장이다.

입력 : 2021.03.31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서봉대의 되짚기

jisang3@daum.net 경북 청송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국민일보에 입사한 이후 2020년 뉴스 1 부국장을 마지막으로 30년 언론인생활을 마무리했다. 정치부장, 정치선임기자 등으로 여의도 정치권과 청와대, 총리실 등을 취재하고 후배 기사를 데스킹하는 데 20여년을 보냈다. 현재 민간연구원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