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직전 미국은 모든 것이 분열된 상태
미국은 식민지 시대부터 남부는 담배・쌀・면화 등 농업경제로 성장했다. 남부의 백인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 노예로 노동력을 충당했다. 반면 북동부는 네덜란드 모피 상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상공업이 발달했다.
이 같은 경제 여건에서 1850년대의 미국은 모든 것이 분열된 상태였다. 1860년에 미국의 전체 인구 3,140만 명 가운데 북부는 2,230만 명, 남부는 910만 명이었다. 남부 인구 중 350만 명이 흑인 노예였다. 남부는 노예 주(州)로, 북부는 자유 주(州)로 연방에 소속되어 있었다. 미국의 남과 북은 선을 그은 듯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정치 판도도 그런 상태였다.
남과 북의 경제 여건은 결국 분열로 이어졌다. 분열은 곧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1861년 4월, 노예제도를 지지하던 남부 주들이 남부연합을 형성하여 미합중국으로부터 분리를 선언했다. 남부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자 남북전쟁이 시작되었고, 전쟁은 1865년까지 계속되었다. 전쟁 결과 남부연합군이 패했고, 4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62만 명이 죽었다.
링컨, 미연방의 분열을 막기 위해 노예해방을 선택하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0년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링컨은 “노예제도가 악이 아니면 무엇이 악입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링컨의 제1 목표는 노예제도 폐지가 아니라 연방 분열 방지였다. 링컨에게, 연방에서 분리해 나간 남부는 반역자였다. 그래서 남북전쟁은 전쟁이 아니라 반란 진압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예 해방은 필수적이었다. 링컨은 이를 제2 목표로 삼았다. 링컨은 연방 분열을 막기 위해 노예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링컨의 선택은 옳았다. 미국은 분열 대신 통합되었고, 세계역사는 바뀌어 갔다. 아프리카에서는 1890년에 노예무역이 막을 내렸고, 한국에서는 1886년에 고종이 ‘노비 세습제(奴婢世襲制) 폐지’를 선언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성장 과정은 ‘흙수저’를 위한 교과서
에이브러햄 링컨의 성장 과정은 ‘흙수저’를 위한 교과서다. 그래서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809년 2월 12일 켄터키 주 호젠빌의 한 칸짜리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대로 된 옷 한 벌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 낸시는 개척시대에 생존에만 급급했던 아버지 토머스와는 달리 링컨의 성정(性情)을 풍부하게 길러 주었다.
낸시는 문맹(文盲)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배우고 느낀 성경 이야기를 링컨에게 들려주었다.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링컨은 독서를 좋아했다. 그는 성경, 이솝 우화, 천로역정,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바이런 시, 셰익스피어 희곡 등을 애독했다. 낸시는 링컨이 아홉 살 때 독풀을 먹은 소의 우유를 먹고 ‘밀크병’으로 죽었다. 계모 세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책을 좋아하는 링컨을 격려하고, 학교에 보내려고 애썼다. 두 어머니가 링컨의 성정을 키웠다면 아내 메리는 링컨의 정치적 야심을 끌어냈다.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이어 대통령이 되다
링컨은 33살 때인 1832년 일리노이 주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는 독학으로 법률을 공부하여 1833년 변호사 자격을 땄고, 1834년 주의원에 당선된 후 당선과 낙선을 거듭하면서 정치에 몸담았다. 드디어 그는 공화당 후보가 되어 1860년 11월 6일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1861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1961년부터 1964년까지 계속된 남북전쟁의 한 복판에 있었다.
링컨은 1864년 11월 8일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그는 1865년 4월 14일 극장에서 연극을 보던 중 부스에 의해 암살되었다.
게티스버그 연설문은 ‘모든 정치적 산문의 조상’으로 칭송받아
링컨은 1863년 1월 1일에 발효된 노예해방 선언(Emancipation Proclamation)으로 미국과 세계역사를 바꿔놓았다. ‘3개 문단, 10개 문장, 272개 단어’로 구성된 게티스버그 연설문은 ‘모든 정치적 산문의 조상’으로 칭송받는다. 이 연설문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합의 정치' 분위기가 가득히 넘쳐흐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연설문은 이렇게 끝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연설문을 부록으로 첨부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에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많은 정책을 발표해 왔지만 정책에는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통합의 정치, 협치의 정치’를 내세웠지만 통치 스타일은 제왕적이다. 언론과 정가에서 그토록 지탄받았던 홍종학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을 놓고 한 신문은 사설에서 '오기의 정치'라고 꼬집었다. 어디를 가나 대한민국은 지금 두 갈래로 분열되어 있다. 이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전이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외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에는 그러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예를 해방시켜 미국의 분열을 막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통합 정치’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부록: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문 (The Gettysburg Address, 1863.11.19)
87년 전(필자 주: 1776년 미국이 독립한 해) 우리 선조들은 이 대륙에서, 자유를 꿈꾸며, 사람은 누구나 다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명제(命題)를 내세운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세운 나라나 또는 그렇게 출범한 나라가 어떤 나라이건 간에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을 것인지를 시험하는 엄청난 내전(內戰)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북전쟁의 거대한 전쟁터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여기에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최후의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전쟁터의 일부를 바치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적절합니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우리는 이 전쟁터를 바칠 수 없고, 헌납할 수 없고, 신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싸웠던 그 용감한 사람들, 생존자와 사망자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보태거나 뺄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을 별로 주목하지도 않고 오래 기억하지도 않겠지만 그 용감한 사람들이 여기에서 한 일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싸운 사람들이 그토록 고상하게 전진시킨 미처 끝내지 못한 일에 오히려 살아 있는 우리가 바쳐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남아 있는 큰 과업, 즉, 이들 영광스럽게 죽어간 사람들로부터 그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해 바친 대의명분에 오히려 우리들이 여기에서 바쳐져야 하고, 이들 죽은 사람들이 헛되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굳게 다짐해야 하고, 이 나라는 하나님의 가호 아래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고,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큰 과업에 여기에서 우리가 바쳐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