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한 일인 아메노모리 호슈 이야기

3백여년 전에 조선을 사랑했던 준(準) 경상도 사나이(?)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15-01-08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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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교린(誠信交隣)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 芳洲)
 
 "나는 이 쇠망의 국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데, 길가에 앉아서 곰방대를 피는 소크라테스 같은 노인이 무엇 때문에 타 국민에게 정복되었나? 하는 연민(憐憫)이다."
 
일본 작가 '다카하미 교시(高濱虛子, 1874-1952)'가 1911년에 쓴 소설 <조선>에 들어 있는 글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낀다'는 이중적인 생각을 했다.
 
아무튼, 그토록 불쌍하고 고달팠던 일제 강점기로부터 벗어난 8·15 해방이 어느 덧 70주년이 됐다. 해방 70년 후 새로 맞은 2015년- 또한 올해는 한일 국교가 수립된 50주년이기도 하다. 그러한 긴 역사 속에서도 양국관계는 아직도 지난날의 앙금을 말끔히 씻지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성신교린(誠信交隣)을 주창한 '아메노모리 호슈(雨森 芳洲, 1668-175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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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의 중심지 이즈하라(巖原) 전경-오른 편에 보이는 물은 바다이다

성신교린(誠信交隣)이란 무엇인가.
 
"성신(誠信)이라는 것은 진심이란 뜻으로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고, 진심(眞心)으로 교류하는 것이다....성신의 교류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서로 이웃 나라의 사정을 잘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 하고, 말로써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메노모리 호슈(雨森 芳洲)'는 1668년 5월 17일 지금의 시카현(滋賀縣)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그는  일찍이 한문을 배웠다. 스승은 자신의 부친이었다. 9살 때 지은 그의 한시(漢詩)가 무척 어른스럽다.
 
 "간밤에 내린 눈(雪)으로 추위는 닥쳤는데(寒到夜前雪)
  추위에 떨 사람들 어떻게 근심을 면할 까(凍民安免愁)
  우리가 그래도 기쁜 것은(我儕猶可喜),
  떨어진 옷 입고 노는 것 좋아한다네(穿得好衣遊)"
 
'아메노모리 호슈'는 1693년 26세의 나이에 쓰시마(對馬島)의 외교 담당 문관으로 부임해서 1755년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조선어와 중국어에 능통했던 그는, 특히 조선과의 성신교린을 모토로 하는 외교철학으로 조선의 유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
그는 항상 시대에 앞서가는 생각을 했고, 이를 몸소 실천을 했다. 그는 쓰시마 출신이 아니면서도 쓰시마에서 일했고, 그곳에 묻혔다.

 
조선을 사랑했던 준(準) 경상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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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이즈하라의 일출

산으로 둘러싸인 쓰시마의 중심지 이즈하라(巖原)- 숙소 앞 높은 산봉우리 위로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필자는 아침 식사를 서둘러서 마치고서 숙소를 나섰다. 호슈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지도를 펼치자 쓰시마 시청을 중심으로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역사의 흔적들이 즐비했다. 큰 길 옆 높은 담벼락을 따라가자 고려문이 나왔고, 쓰시마 역사 민속자료관이 있었다. 민속자료관 앞마당에 들어서자 호슈(芳洲) 선생을 기리는 비(碑)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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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지교린: 아메노모리 호슈 선생의 공덕비

아메노모리 호슈 선생 겐쇼비(顯彰碑)-
 
겐쇼비(顯彰碑)는 우리 식으로 하면 송덕비 내지는 공덕비를 말한다. 호슈(芳洲) 선생이 생전에 쓰시마 번을 위해서 일한 공적이 많아 후세 사람들이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이 비를 세운 것이다.
 
필자는 겐쇼비에서 잠시 머무른 후 쓰시마 역사 민속자료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 왼 편에 조선통신사의 비(碑)가 우뚝 서 있었다. 자료관 내부에는 조선통신사의 발자취, 쓰시마의 역사와 자연 환경 등이 전시돼 있었다. 때마침 한국의 단체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필자는 호슈 선생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마음대로 사진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필자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자료관 직원을 만나 협상을 했다. 장시간의 협상과 신청서 작성 결과 서로 합의한 사진 몇 장을 촬영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되는 글을 찾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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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노 모리 호슈 선생의 초상과 글
公爾忘私 國爾忘家
(공적인 일을 할 때는 나를 잊어버리고, 국가의 일을 할 때는 가문을 잊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금언(金言)이다. 특히,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그렇다. 오늘날 공직자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너무나 공감이 가는 말인 것이다. 쓰시마 출신학자 '나가도메 히사에(永留久惠)'는 저서 <조선을 사랑한 아메노모리 호슈>에서 '公爾忘私 國爾忘家'를 "정치를 하는 사람은 눈앞의 업무도 중요하지만, 그뿐만이 아닌 먼 장래에 대한 큰 계획으로 희망을 갖고 업무에 정진하도록 훈시한 것이다"로 해석했다.
 
우삼동(雨森東)이라는 조선 이름을 쓰면서 '조선어,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했다'는 아메노모리 호슈-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양국의 우호'가 우리의 세대에서 다시금 빛을 볼 수 있을까. 한국을 사랑하는 필자의 지인 '이토 슌이치(伊藤 俊一·61)' 씨의 말을 들어본다.
 
민간차원의 교류를 촉진(促進)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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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의 언론인 이토 슌이치 씨
"호슈(芳州) 선생이 몸소 실천했던 성신교린(誠信交隣)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저도 언론인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지금의 정치는 분명히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양국이 새로운 모습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서로 한발씩 양보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나아가 민간 차원의 교류를 촉진시켜야 합니다. 제가 한국 유학생들과 수시로 대화합니다만, 그들에게서 반일(反日) 감정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와 제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혐한(嫌韓) 감정이 전혀 없습니다."
 
이토(伊藤) 씨는 양국의 화해 무드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닌 가까운 이웃'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양(羊)의 해' 을미년(乙未年)이 열렸다. 일본도 우리와 똑같이 '양의 해'다. 양(羊)의 이미지는 순박하고 양순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양의 해'에 많은 기대를 건다. 민속학자 이종철 선생은 저서 <인간의 달력, 신의 축제>에서 "상형문자의 양(羊)은 아름다움(美), 상서로움(祥), 착함(善)으로 이어지고 옳음을 뜻하는 의(義)의 파자(破字)이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도 양처럼 상서롭고 착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참고 및 인용 자료: '나가도메 히사에(永留久惠)'의 '조선을 사랑한 아메노모리 호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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