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주 향(香)에 젖은 쓰시마의 밤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14-11-28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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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술잔 기울이며 시(詩)를 읊는데.
  이역 땅에서 다행히 기인을 만났네.
  명성 듣고서 몇 해 동안 만나려 했는데.
  오늘에야 손을 잡으니 죽마고우 같구나.>
 
성신교린(誠信交隣)을 내세우며 조선을 사랑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 芳州, 1668-1755)'가 조선통신사 정후교(鄭後僑, 1675-1755) 선생에게 건넨 시(詩)다. '아메노모리 호슈(雨森 芳州)'는 1668년 일본의 시카현(滋賀縣) 태생이나 26살 때 쓰시마(對馬島) 외교 담당 문관으로 부임해서, 88세(1755년)에 생을 마감한 일본의 지성(知性)이다(永留久惠의 雨森 芳州).
 
필자가 쓰시마의 중심부 이즈하라(巖原)에 있는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순간 어느 어느새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밤(夜)이 멀리 있는 줄 알았었는데, 하늘이 손에 닿을 듯 머리 위로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때를 맞추어 이자카야(居酒屋)들의 죠징(提灯: 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필자는 '말술이었다'는 '호슈(芳州)' 선생을 떠올리면서, 죠징의 불빛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거리에는 삼삼오오 배회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띌 뿐 인적이 드물었다.
 
분위기 좋은 이자카야(居酒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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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과 내부가 깔끔한 음식점

여러 식당들을 기웃거리다가 아담하면서도 멋있어 보이는 음식점 하나를 발견했다. 일단 외관이 맘에 들어서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 역시 깔끔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예약을 안 하셨나요? 그럼 카운터가 어떻습니까?"
 
"좋지요. 저 역시 카운터를 좋아합니다."
 
일본의 경우 스시(壽司) 집이나 덴뿌라(天婦羅: 튀김) 집에서도 카운터가 좋다. 요리사가 요리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지근거리에서 요리사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으며, 때때로 요리사가 얹혀주는 덤(?)이 있어서다.
 
필자는 일본의 다른 지역과 달리 쓰시마에는 지인(知人)이 한 사람도 없어서 쓸쓸했다. 이곳에 업무적으로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 좋은 식당이나 이자카야(居酒屋)를 만나면 그 자체로 친구가 되고 추억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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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메뉴판
곧이어 복장이 단정한 젊은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기는 메뉴판이었다.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았지만, 단풍 사진이 들어 있는 메뉴판에 더욱 정감이 갔다. 이 또한 고객을 위한 서비스다. 사람들은 손때 묻은 너덜너덜한 메뉴판을 휙 던지고 가는 식당보다는 이런 집을 찾게 된다.
 
'또 오고 싶은 집이구나'
 
필자는 일단 생맥주 한 잔을 시켰다. 맥주 맛은 일본 본토와 다름없이 맛이 좋았다. 안주로 모둠 생선회(刺身) 한 접시를 시켰다. '쓰시마 사람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활어 회를 즐긴다'고 해서 일부러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생선회는 일본 본토의 방식대로 숙성된 것이었다.
 
"일부 식당에서 활어 사시미(刺身)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의 식당은 일본의 전통 방식 그대로 입니다."
 
요리사의 짤막한 설명이었다.
 
"술은... 생맥주를 계속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카운터에 진열된 우메슈(梅酒: 매실주)로 하겠습니다."
 
일본의 매실주 집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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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역의 매실주를 진열한 카운터

카운터에 늘어서 있는 1.8리터짜리 됫병들은 모두 매실주였다. 술병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장정들의 키 자랑이었다. 키 큰 술병 자체가 식당의 인테리어이기도 했다.
 
"이 모두가 쓰시마에서 나는 매실주는 아니죠?"
 
"그렇습니다. 일본의 각 지방에서 사온 것입니다."
 
식당 주인이 일본 전역의 매실주를 종류별로 사온 것이다. 사과 · 당근 매실주는 기본이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유자 · 장미 매실주까지 다양하게 준비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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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주를 찾는 여성고객
"술이 약한 여성 고객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향이 좋고, 건강에도 좋아서 인기가 있습니다."
 
그 순간 젊은 여성 두 명이 카운터에 자리를 잡았고, 젊은 청년 한 사람이 필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국 일본 다르지 않은 같은 상황. 옆자리의 젊은이는 마냥 스마트 폰에 눈을 맞추고 있었다.
일본의 우메슈(梅酒)는 6월 무렵에 수확되는 매실을 소주·브랜디 등 증류주에 담그는 혼성주류(알코올음료)의 일종이다. 매화의 과실을 통째로 설탕 등과 함께 술에 일정기간 담가서 진액을 추출한다. 일본에서 시판되고 있는 매실주는 대체로 알코올 도수가 8-15도이다.
 
튀김은 손님이 지정한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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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 메뉴를 고르라는 안내문(좌)과 튀김꼬치(우)

갑자기 적성 검사라도 하자는 것인가. 종업원이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와서 필자에게 내밀었다.
 
"오늘의 추천 메뉴입니다. 여기에서 손님이 좋아하시는 안주를 8개만 골라주시기 바랍니다. 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리시면 됩니다."
 
종업원은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종류별로 고르라고 했다. 종이에는 육류·야채·생선 등으로 대분류가 돼 있었고, 돼지고기·닭고기·소고기 등의 육류와 마늘·양파·아스파라가스 등 야채류, 고등어·오징어·새우 등 생선으로 세(細) 분류가 돼 있었다. 필자는 통상 우리가 접하는 식당 주인이나 주방장이 자신의 뜻대로 꼬치구이나 튀김 등을 내놓는 일방통행보다는 이 방법이 더 좋았다. 일본의 본토에서도 흔치 않는 고객 서비스를 색다르게 느끼면서 하나하나 골랐다.
 
"참고로 쓰시마는 표고버섯이 특산품입니다."
 
쓰시마는 산악지대가 90% 이상이라서 당연히 버섯이 많이 나올 것이다. 종업원의 조언을 듣고서 표고버섯을 추가했다. 잠시 후 필자가 고른 8개의 안주가 튀김꼬치로 변해서 나왔다.
 
만들어 나오는 음식 마다 정성이 깃들었고 신선했으며, 맛 또한 좋았다. 올해로 10년 째 라는 이 식당은 카운터에 6개의 좌석과 칸막이 방에 20석의 좌석을 갖추고 있는 아담한 집이었다. 카운터는 의외로 조용했으나. 방에서 밖으로 새나오는 술꾼(?)들의 목소리는 제법 컸다.
 
'2014 몽드 셀렉션' 금상의 우메슈(梅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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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과 매실주 언더락-우선 심플하게 마시라는 문구
"이 술은 약간 고소한 맛이 나지요? 우메(梅)의 씨앗에서 원액을 추출한 것으로 풍미(豊味)가 좋습니다. 도수도 그리 높지 않은 10도입니다."
 
요리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술병에 기재된 내용을 살펴봤다. 이 술 병에는 '2014 몽드 셀렉션(Monde Selection)'에서 금상(金賞)을 수상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몽드 셀렉션'은 1961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탄생한 품질 기관이다. 이 기관에서는 식음료·다이어트 식품·건강·미용 제품에 대해 엄격한 심사를 해서 상(賞)을 준다. 재료·미각·위생·성분 등을 항목별로 평가해서 점수를 매긴다.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이 최우수상이고 80점 이상이 금상을 받는다.
 
'금상 정도면 우수한 술이로다.'
 
필자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낱잔으로 파는 매실주를 언더락(under rock)으로 주문했다. 그렇다고 해서 매실주를 종류별로 다 마실 수는 없는 일. 식당의 분위기와 매실주를 뒤로하고 음식점을 나섰다.
 
쓰시마는 한국어 간판 일색이면서도 밤의 분위기는 우리와 사뭇 달랐다. 밤 9시 전인데도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고, 기온은 뚝뚝 떨어졌다. 어두운 골목길을 돌고 돌아서 숙소를 향해 언덕길을 올라갔다. 돌담을 덮은 담장넝쿨의 노란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10도의 매실주 향기에 젖어 몽롱해진 쓰시마의 밤은 이렇게 깊어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즈음 '처음처럼'이나 '화이트진로'가 도수 낮추기 경쟁을 하고 있다. '여성 고객을 위한다'는 측면도 있으나, 남녀노소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경쟁이라고 본다. 독주를 폭음(暴飮)하고 인사불성 취하는 것보다는 도수 낮은 술을 즐기는 풍토 조성이 서로를 위해서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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