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의 등장: 고대사회에서 르네상스까지
세계역사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볼 때 세계역사를 통틀어 전쟁 없는 세대는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세계역사는 오랜 투쟁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처럼 자유, 구체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넘쳐흐르는 시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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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운 교수의 저서들. |
고대사회는 사람이 사람을 소유한 노예제도가 중심이었다. 노예제도에서는 노예가 노동력의 공급원(供給源)이었다. 노예제도가 약 4000년 전 아브라함 시대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성경이 수없이 밝혀준다. 노예제도에서 개인의 자유는 사실상 누릴 수 없었다. 노예제도는 서양의 경우 6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노예제도가 붕괴된 후로 봉건제도가 등장했다. 봉건제도란 영주(領主)와 농노(農奴) 간의 지배・예속 관계가 바탕이 되는 생산제도다. 봉건제도에서는 영주가 농노에게 토지를 임대해 주고 그 대가로 임대료를 받았고, 농노는 노동의 대가로 수확의 일정량을 받았다. 특히 봉건 영주는 농노의 안전을 돌볼 의무가 있었다. 봉건제도에서 개인의 자유는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었다. 봉건제도는 서양의 경우 6세기 말 또는 7세기 초부터 18세기 시민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했다. 다만 러시아에서는 농노제도가 20세기 초 제정러시아가 무너질 때까지 존속했다.
그런데 5세기경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로 14세기 말부터 16세기 초에 걸쳐 일어난 르네상스 때까지 인류는 신(神) 중심의 ‘암흑시대(dark age)’를 살았다. 이 기간 동안에 인류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자유는 전혀 누릴 수 없었다.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신 중심의 중세사회가 무너지고 인간 중심의 자유주의가 등장했다. 자유주의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대륙발견, 과학혁명에 힘입어 16세기 이전의 중세적 사회특성을 근대적인 것으로 바꿔놓았다. 뒤이어 1776년에 일어난 미국의 독립혁명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독립선언서》를 낳고, 뒤이어 일어난 프랑스의 대혁명(1789∼1794)은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을 낳아, 개인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계기가 역사상 처음으로 마련되었다. 자유주의는 핵심적 가치를 개인의 자유에 두고 발전해 갔다.
산업혁명의 기여와 자유주의의 발전
이어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발달을 가져왔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계약을 통해 결정됨으로써 임금노동이 등장했다. 임금노동 등장으로 노동자는 노예제도와 농노제도에서와는 달리 인격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웠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걸쳐 산업혁명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와 당시의 지배적 사상인 자유방임주의에 힘입어 자유주의는 자유를 가치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개인을 사회의 궁극적인 존재로 강조하면서 발전해 갔다. 자유주의는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대의정치와 의회제도 발달을 가져와 자본주의 발전에 힘을 더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 사회주의의 등장
그런데 자본주의 발전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는 여러 나라에서 소득불평등 문제를 일으켰다. 이를 놓고 19세기 후반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모순을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는 사람이 사고파는 상품으로 취급되어 노동자는 인격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사회주의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거쳐 제정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드디어 실체로 등장했다. 그 후 사회주의는 전 세계 일부 지식인들과 정치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날개를 달았다.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그 기여
사회주의는 1940년대에 들어와 유럽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정치 세력화되어 갔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44년에 『노예가 되는 길』(Road to Serfdom)을 써서, 사회주의 체제가 지배하게 되면 우리 모두는 노예가 될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하이에크는 평생 동안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하이에크의 영향을 받은 마거릿 대처는 ‘영국에서 사회주의 정책을 몰아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1979년에 정권을 잡고, 사회주의에 만연(蔓延)된 영국을 구조개혁을 통해 자유시장국가로 살려냈다. 때맞춰 1981년에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정권을 잡고, 자유시장경제의 핵심요소인 ‘작은 정부’ 실현에 박차를 가했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은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에 힘입어 뉴질랜드가 1984년부터, 아일랜드가 1987년부터 자유시장경제로 돌아섰다. 2000년대에 들어와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이 자유시장경제로 돌아섰다.
신자유주의가 바탕이 되어 인류는 1980년대 초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때까지 소득과 일자리 면에서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과 자본주의의 위기
잘 나가던 세계경제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돈 가지고 돈 벌려는 은행들의 탐욕, 곧 자본주의의 탐욕이 개입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 정부가 잘못된 금융제도에다 금융관리마저 잘못해서 일어난 정부실패의 결과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 무렵 『자본주의 4.0』을 쓴 아나톨 칼레츠키는 한국에 와서 행한 연설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좌파들의 비판을 놓고, “좌파들은 시계추를 무려 50년 뒤로 돌려 정부 만능, 노조 만능의 시대로 돌아가려 한다”며 “정부만능의 자본주의 2.0(주: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부터 1980년대 신자유주의 등장까지의 자본주의 시기)은 현재 시스템(주: 1980년대부터 금융위기까지, 곧 신자유주의 시기)만큼이나 현란하게 부서졌다”고 못을 박았다.1) 사회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단호한 주장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경제체제 변화는 아직 눈에 띄는 것이 없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와 보조를 맞춰 지속적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왜 중요한가?
그러면 개인의 자유는 왜 중요한가? 개인의 자유는 인류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다. 개인들은 자유의 토양 속에서만 자신들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개인들은 자유의 토양 속에서만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자유의 토양 속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기업가정신은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 예를 들면 종교계, 언론계, 학문계 등에서도 발휘될 수 있다. 빌 게이츠를 보자. 그는 “나는 열아홉 살의 나이에 나름대로 앞날의 세계를 점치고 내가 옳다고 여긴 방향에 나의 미래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판단은 옳았다”고 썼다.2) 그는 소프트웨어 ‘윈도우’를 개발하여 세계 사람들이 인터넷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했고, 1994년 이후 사실상 세계 1등 부자이고, 부부가 함께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을 세워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이 베풀어 오고 있다. 빌 게이츠는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1990년 7월 구소련을 방문했다. 한 호텔에 숙소를 정한 우리 일행은 1시 넘으면 점심을 놓친다는 가이드의 말을 되새기며 오후 1시 직전 식당으로 달려갔지만 셔터문은 내려지고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굶어야 했다. 그런데 2005년 7월 구소련이 사라진 후에 시장경제로 전환하던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아무 때나, 아무 것이나 사먹을 수 있었다. 시장경제는 내게 ‘개인의 자유’를 허용한 것이다. 또 나는 2005년 7월 러시아 이르쿠츠크의 한 호텔에 숙소를 정한 후 저녁에 앙가라강 주변을 산책했다. 강 주변에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스케이팅, 디스코텍, 맥주, 음료수, 보트, 낚시 등 세계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는 시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바뀐 다음 이르쿠츠크는 어디에서나 개인의 자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자유주의의 발전으로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경제적 자유의 확대는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경제력 분산과 정치력 분산을 가져왔다. 이제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도 기업가가 될 수 있고, 보통 사람들도 대통령이나 총리가 될 수 있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자유주의의 기여다.
미국이 없었다면 세계는 과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을까?
개인의 자유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미국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만일 미국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세계는 과연 오늘날처럼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을까? 미국은 1620년에 영국에서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다. 미국은 이민 초기에는 사람이 적어 공동체인 타운제도(town system)를 실시했다. 그러다가 인구가 증가하자 1624년에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경작지 1에이커씩이 분배되었다. 이어 1626년에는 각 호마다 20에이커씩이 분배되었다. 이런 식으로 토지는 계속 분배되어 갔고, 결국 미국은 토지의 사적소유 확대를 통해 시장경제의 핵심 원리인 사적소유제도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미국은 1776년에 13개 주(州)가 연합하여 독립한 나라다. 건국 초기에 미국을 지배한 사상은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이었다.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여서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 사상이 쉽게 뿌리 내릴 수 있었다. 이 사상은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미국 독립선언문의 첫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man is born equal.).” 그 후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 사상은 ‘기회의 평등’ 사상으로 발전해 갔고, 이를 계기로 미국은 ‘자유, 자유기업, 경쟁, 자유방임, 시장경제’ 등을 강조하는 나라로 발전해 갔다. 이 결과 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대표적인 자유시장국가로 자리 잡았고,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자유시장경제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수많은 자선활동이 쏟아져 나왔다. 카네기재단, 록펠러재단, 포드재단, 빌게이츠재단 등이 그 예다.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의 취임사는 명문으로 유명한데, 그 내용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한 것이다. 필자가 그의 묘비에서 메모한 구절을 인용한다.
“나의 전 세계 친구들이여,
미국이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 말고
우리가 다 함께 인간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십시오.”
자유를 강조하는 나라 미국은 대통령 취임식 때 대통령이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한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3년에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의 인권을 주장하다가 1964년에 흉탄에 쓰러졌고, 버락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2009년에 취임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 사상 위에 세워진 미국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면 과연 세계는 오늘날처럼 자유, 구체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자유시장경제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자유주의의 실천적 측면인 자유시장경제가 우리를 잘살게 해준다
인류의 사상 가운데 핵심적 가치를 개인의 자유에 두고 발전해 온 사상이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혁명, 자본주의 발달에 힘입어 중세적 사회 특성을 근대적인 것으로 변혁시킴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 후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의 대혁명은 개인의 자유 보장에 필요한 제도 도입의 발판을 마련했고,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산업혁명은 자유주의 발전과 개인의 자유 확대에 기여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가 등장하여 지구의 약 3분의 1 지역에서 70여 년 동안 실험했지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탓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는 자유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게 발전해온 자유주의의 실천적 측면인 자유시장경제가 우리를 잘살게 해준다는 확신을 나는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