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론은 오류투성이, 주장은 현실에 맞지 않는 것

소득불평등, 무엇이 이슈인가? ①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업데이트 2014-10-2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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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9일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강연하고 있다. /조선DB

 
피케티 열풍이 불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1)이라는 책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본이 소수의 부유층에 집중되고 자본주의가 세습되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므로 국가가 고율의 누진소득세와 고율의 자본소득세를 부과하여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케티가 전 세계에 던진 ‘평등 메시지’와 관련해 “우리 한국인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한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자 7인이 비판서를 내놓았다. 이들의 비판서는 『21세기 자본』 한국어 번역판보다 앞서 출간되었다.
이 글은 안재욱·현진권 편저의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 집필에 참여한 자유주의자 7인의 피케티 비판 글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집필자들의 비판은 상당 부분 중복되고 있어서 필자는 한정된 지면에 비판 내용을 폭넓게 포함시키려다 보니 집필자들의 핵심 비판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이 글은 집필자들의 비판을 이슈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또 끝 부분에 프레이저 인스티튜트와 빌 게이츠의 피케티 비판 글을 첨부한다. 피케티 열풍을 계기로 필자는 다섯 차례에 걸쳐 ‘소득불평등, 무엇이 이슈인가?’를 다룬다.

Ⅰ.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론, 실증, 주장
 
토마 피케티는 ‘자본주의 제1∼제3 법칙’이라는 이론을 내세워,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본이 소수의 부유층에 집중되고 자본주의가 세습되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보았다. 그는 지난 300여 년간 여러 나라에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살펴본 후에,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와 자본주의 세습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가 고율의 누진소득세와 고율의 누진자본세, 글로벌 자본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피케티의 이론, 실증, 주장을 간략히 요약한다.

1.  이론: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1∼제3법칙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1∼3법칙을 요약한다.

1) 자본주의 제1법칙:  자본소득/국민소득  = 자본수익률 × 자본량/국민소득 
자본소득분배율(자본소득/국민소득 비율은 자본소득분배율이라고 일컬음)은 자본수익률에다 국민소득에 대한 자본량의 크기(배)를 곱하여 얻는다.

2) 자본주의 제2법칙: 자본/소득 = 저축률/경제성장률 
장기에서 자본/소득 비율은 저축률/경제성장률 비율과 같게 된다. (이는 신고전학파의 장기균형이론을 바탕으로 유도된 것인데 복잡한 설명은 생략함.) 예를 들면, 저축률이 12%이고 경제성장률이 2%이면 장기에서 자본/소득 비율은 6이 되는데 이는 곧, 자본량이 소득의 6배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제2법칙에 따르면, 인구증가율이 낮아져 경제성장률도 낮아지게 되지만, 저축률은 비교적 안정적이므로 장기에서 자본/소득 비율은 증가하게 될 것으로 피케티는 전망한다. 자본/소득 비율이 증가하면, 자본주의 제1법칙에 따라 자본량/국민소득 비율이 증가하므로 자본소득분배율도 증가할 것이다. 이 결과 피케티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리라고 본다.

3) 자본주의 제3법칙: 자본수익률〉경제성장률
장기에서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높다(이는 수식을 사용해서 유도될 수 있음1)).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으면 자본주의 제2법칙에 따라 자본/소득 비율이 증가하고, 이어 자본주의 제1법칙에 따라 자본소득분배율도 증가할 것이다. 이 결과 피케티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리라고 본다.
 
2. 실증: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
 
피케티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1700년대∼2012년에 이르는 방대한 통계 자료를 이용했다.
 
피케티는 실증을 통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는 지난 150년 동안 선진국들은 자본수익률이 4∼5%이고, 경제성장률은 1∼2%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국민소득에 대한 자본량의 크기가 18∼19세기 200년 동안에 6∼7 수준이 되어 자본이 고소득층으로 편중되었고, 1970년대 초에는 이 값이 2∼3.5로 낮아졌다가 1970년대 후반부터 다시 4∼7 수준으로 높아져 자본이 고소득층으로 다시 편중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상위 1%가 차지하는 부의 몫이 1928년에 43% 정도로 최고점에 이르고, 1978년에 25% 아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 2013년에 40%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예를 통해 피케티는 자본이 부유층에 집중되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주장했다.

3. 주장: 고율의 누진소득세·누진자본세와 글로벌조세 부과
 
피케티는 자본이 상위 부유층에 집중되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자산 중에서 상속자산 비율이 증가하여 자본주의는 세습 자본주의로 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막기 위해 피케티는 고율의 누진소득세와 고율의 누진자본세 부과를 주장했다. 누진소득세의 경우 상위 0.5∼1% 고소득계층에 대해서는 80∼90%에 이르는 고율의 누진소득세를, 상위 5∼10% 소득계층에 대해서는 50∼60%에 이르는 누진소득세 부과를 제안했다.
 
자본소득세의 경우 모든 금융자산에다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을 시장가치로 평가한 비금융자산을 합한 다음 액수 구간을 정해 0.1%∼10%의 누진자본세 부과를 제안했다.
고율의 누진자본세를 부과하면 자본의 해외도피가 우려되므로 국제적인 협조를 얻어 글로벌 누진자본세 부과도 제안했다.

Ⅱ. 토마 피케티에 대한 자유주의자 7인의 비판
 
피케티의 이론, 실증, 주장을 대상으로 자유주의자 7인의 비판을 정리한 다음 피케티의 주장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한다. 안재욱, 현진권 편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의 집필자는 다음과 같다. (1) 신중섭(강원대 교수, 서양철학), (2) 현진권(자유경제원 원장, 경제학), (3) 안재욱(경희대 교수, 경제학), (4) 조동근(명지대 교수, 경제학), (5) 오정근(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경제학), (6) 김영용(전남대 교수, 경제학), (7) 좌승희(KDI 국제정책대학원, 경제학).
 
1. 피케티의 이론
피케티의 이론에 대한 자유주의자 7인의 비판을 정리한다.

‘자본주의 제1법칙’은 법칙이 될 수 없다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1법칙은 자본소득과 국민소득 간의 관계를 설명한 것인데 이는 하나의 항등식에 불과하므로 법칙이 될 수 없다(현진권, 안재욱, 조동근).
 
∙자본수익률은 자본의 한계생산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면 자본축적이 증가함에 따라 자본수익률은 감소한다. 그런데도 피케티는 수식에서 자본량이 증가하면 자본수익률은 서서히 하락하지만 소득에 대한 자본 비율은 증가한다고 본다. 여기에서 피케티는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고 보고2) 자본주의 제1법칙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재욱은 “자본의 순수익을 계산할 경우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큰 경우가 있는 연구는 없다”는 피케티에 대한 Summers의 비판을 인용한다. Summers의 비판이 옳다면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1법칙은 완전 오류다(안재욱, 김영용).

자본주의 제2법칙은 의미가 없다
∙자본주의 제2법칙은 경제성장률과 저축률이 독립적이라면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는 이 두 변수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의미가 없다(안재욱, 조동근).

자본주의 제3법칙은 불평등 심화와는 무관하다
∙자본주의 제3법칙은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것은 일종의 ‘제약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불평등 심화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현실적으로 “모든 국가에서 자본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항상 높다.”(조동근, 안재욱).

피케티의 이론에서는 기업가의 활동이 무시되고 있다
∙피케티의 제1법칙은 기업가의 활동을 무시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자본가-기업가에 대한 고찰이 없는 경제학은 부가 축적되고 경제 성장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없으며 끊임없이 동적으로 변화하는 경제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다. 피케티는 자본량만 늘리면 자본소득은 저절로 증가하는 것으로 보았다. 피케티는 자본을 물적자본으로 한정함으로써 ‘인적자본’ 개념을 배제했다(김영용, 현진권, 조동근, 안재욱, 오정근).

부와 자본의 개념이 모호하다
∙피케티가 사용한 자본 개념은 모호하다. 피케티는 자본과 부(wealth)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피케티가 유무형의 자본재와 자산을 혼합한 것에 대한 소득을 자본소득으로 간주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다. 자본은 상위 1%, 10%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중산층 역시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을 보유한다(김영용, 현진권, 안재욱, 조동근, 오정근).

피케티는 부와 소득의 계층 간 이동(mobility)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은 ‘출발선이 아니라 최종적인 결과’에 의해 결정된다. 미국의 백만장자들의 약 80%는 1세대들이다(안재욱).
 
∙싱가포르 자산정보업체 ‘웰스엑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10억 달러(약 1조4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빌리어네어’는 세계 인구의 0.0003%인 2325명인데, 이들 가운데 남성의 87%, 여성의 35%가 자수성가했다고 한다.3) 보고서는 또 빌리어네어가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35%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한 해 동안 155명이 빌리어네어 명단에 새로 이름을 올려 부가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가 반드시 ‘세습’되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다.

2. 피케티의 실증
 
앞에서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대한 피케티의 실증을 소개했다. 비판자들은 이를 대체로 인정하면서 피케티가 자신의 이론을 실증 자료에 꿰맞췄다고 비판한다.

3. 피케티의 주장
 
집필자들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 심화와 자본주의 세습을 막기 위한 피케티의 주장은 한결같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판단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다
∙“피케티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으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이미 ‘너무 높고’, 앞으로도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의 ‘너무 높다’는 판단은 사실 판단이 아니라 가치 판단이다”.
또 피케티가 말한 “‘세습자본주의’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그는 어느 자본주의가 ‘세습자본주의’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신중섭).
어떤 수준의 소득분배가 최적인지 제시하지 못하면 구호적 주장일 뿐인데, 피케티는 불평등 개선에서 어느 정도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수준은 제시하지 않았다(현진권, 조동근).

‘불평등 해소’가 아니라 ‘빈곤 해결’이 목표여야 한다
∙“상대적 소득격차는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정책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상대소득 문제는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해결할 수 없다. 특정 상위계층의 소득수준 지표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의 ‘배 아픔 정서’를 부추길 뿐이다.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은 빈곤해결이다”(현진권, 조동근).
 
“인간사회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것은 사람마다 능력과 재능이 다르고, 모든 사람이 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와 소득불평등 자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안재욱).
“인류를 부자와 빈자로 양분하면서 불평등을 문제 삼은 피케티의 정치경제학도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처럼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불평등이 아니라 빈곤을 문제 삼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신중섭, 김영용).

피케티는 ‘소득창출과 소득분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점유율 상한이 100%이기 때문에 특정 계층의 ‘소득점유율’이 높아져 결과적으로 다른 계층의 점유율이 떨어질 수 있다. 소득점유율이 낮아졌다고 그 계층의 삶의 질이 낮아진 것은 아니다. 절대로 소득 수준이 낮아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구성원의 ‘소득분포 구조’가 정책목표가 될 수는 없다(조동근).
 
피케티의 주장대로 부의 분포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인류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최하계층의 물질적 삶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피케티의 제안대로 불평등을 해소하면 이들의 삶은 지금보다 한결 나아질 것인가?(김영용).

상위 1%는 매년 바뀐다
∙“피케티의 지표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끄는 자료는 상위 1%의 소득과 부의 점유율이다. 피케티는 상위 1% 계층의 소득 및 부의 비중을 연도별로 보여줌으로써 불평등의 심화를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사람이 매년 상위 1%에 속하고,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높아질 때이다.
 
 피케티가 사용한 자료는 한 해 특성만을 보여줄 뿐, 상위 1% 계층의 소득이 어떻게 변했는가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다. 2000년에 상위 1%에 속했던 사람이 2001년에 하위 1%에 속할 수 있다. 상위 1% 계층의 소득과 자본 소유의 연도별 변화를 알려면, 한 사람의 소득을 여러 해 동안 추적조사한 표본 자료를 사용해야 한다(현진권, 조동근).

피케티는 불평등 추세를 잘못 해석했다
∙피케티는 불평등 추세를 역사적 사건과 연계해서 해석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89년에 상위 1%와 10% 계층의 전체 자본 대비 소유 비중은 각각 60%와 90%로,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1810년에는 유럽 전체를 대상으로 상위 10% 계층이 전체 자본의 80%를 소유했고, 1910년에는 90%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1918년 이후에는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낮은 수준을 지속했다.
 
결과적으로 1910∼1970년간에 불평등 수준이 감소한 상태를 유지한 배경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 정부의 자본통제 정책 등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부터 소련이 붕괴하였고, 개방화로 인한 세계경제 환경의 변화가 일어났고, 규제완화 정책이 주된 정책으로 채택됨으로써 자본집중이 다시 심화되었다는 피케티의 해석이다(현진권).
 
그러나 피케티의 결론이 지나치게 상식적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예컨대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불황 그리고 높은 조세 부과가 불평등을 완화했다는 식의 해석이 그 전형이다. 이 같은 주장에 충실하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황과 전쟁과 약탈적 세금이 필요하다’는 주장밖에 나오지 않는다(조동근).

경제적 불평등은 경제번영의 필요조건이다
∙“자유가 번영을 가져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유가 불평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와 불평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설령 경제적 자유가 있다 하여도 경제적 불평등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번영을 누릴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은 경제적 자유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많은 경우 자신의 책임이지 사회도 국가도 책임질 수 없다”(좌승희).
 
좌승희는 피케티의 주장인 ‘경제 평등주의’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일 뿐이고 ‘경제적 차별화’가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하면서 불평등의 원인은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 기능”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가 명명한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 기능’이란 이러하다. “시장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란 우리의 구미에 맞는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더 많은 구매력(돈)으로 투표함으로써 우수한 경제주체들에게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시장은 경제적 번영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인 셈“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좌승희는 ‘칼 마르크스는 종국에는 자본수익률이 제로가 되어 자본주의는 망하게 된다고 주장했는데, 토마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높고, 오히려 경제성장률보다 높기 때문에 소득불평등이 발생한다고 주장했으니 피케티는 마르크스가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한다.4)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고율의 누진세 부과는 시대착오다
∙피케티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조세정책을 강화하자는 주장을 폈다. 소득편중에 대해서는 소득세의 최고한계세율을 80%로 올리고, 자본편중에 대해서는 자본세제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고율의 누진조세로 인해 국가 간의 자본이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국가 간 글로벌 조세 부과도 제안했다. 
 
7명의 자유주의자들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고율의 누진소득세·누진자본세, 그리고 자본이동을 막기 위한 글로벌 자본세 부과를 강하게 비판한다.
 
현진권은 글로벌 조세 인하 추세를 언급하며 피케티의 조세정책을 비판한다. 다음은 현진권의 비판이다. “선진국 7개국의 법인세율 변화를 보면, 1981년에 44%에서 2009년에 27%로 인하했다. 소득세제도 최고한계세율이 점차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영국은 대처 총리가 취임하기 전 1970년대에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이 90% 수준이었으나 대처 정부는 거의 40% 수준으로 낮추었다. 전 세계적으로 소득 관련 세제의 세부담이 떨어지는 이유는 형평성을 경시해서가 아니라 개방화로 인해 국가 간 세금 낮추기 경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피케티 주장대로, 소득세 한계세율을 최고 80%로 올리면, 고소득자의 해외 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를 가졌던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소득세제는 단일세율 체계로 바뀌었다. 형평성을 강조하는 북유럽 국가들도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강화가 아닌, 세금 완화로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예를 들면, 스웨덴은 2005년에 상속세를, 2006년엔 부유세를 폐지했다. 피케티의 제안대로 (국가 간 자본이동을 막기 위해) 높은 자본세를 부과하려면 모든 국가가 과세 자료를 공유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4. 한국에 주는 시사점
 
자유주의자 7인의 비판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요약한다.

경제민주화의 열풍을 차단해야 한다
∙피케티의 주장을 바탕으로 경제민주화의 열풍을 되살리기 위한 불씨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피케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 차단해야 한다(신중섭).

한국은 조세부담이 낮은 국가여서 피케티의 주장이 맞지 않다
∙“한국은 낮은 세금 부담을 가진 국가이므로 유럽 국가들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소득세의 경우,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수의 68%를 부담하고, 법인세는 상위 1%, 10%가 전체 법인세수의 86%, 97%를 부담할 정도로 누진도가 높은 구조이다. 자본 관련 세금은 이보다 더 높은 구조이다. 한국의 상속세 부담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다. 상속 및 증여세제는 5단계 누진 구조로서 최고한계세율이 50%이며, OECD 평균세율 26%와 비교할 때 거의 두 배 수준이다”(현진권).

자본주의 제2법칙은 한국경제에 맞지 않다
∙오정근은 한은의 국민대차대조표 자료를 내세워 자본주의 제2법칙, 곧 ‘장기에서 자본/소득 비율이 증가하게 된다’는 이론이 한국경제에는 맞지 않다고 비판한다. 한국의 경우 “고도성장기간 중에는 성장률과 비례해서 자본/소득 비율이 상승해 왔고, 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총자본/소득 비율은 건설자산/소득 비율의 꾸준한 증가에 힘입어 상승했다. 즉, 경제성장률과 무관하게 자본/소득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장률이 하락하면 자본/소득 비율이 증가한다는 피케티의 자본주의 제2법칙은 적어도 한국경제에는 맞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피케티의 책을 무조건 평가절하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김영용은 “피케티의 주장은 많은 나라들이 부의 불평등 해소와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지금 상당한 호응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피케티의 책을 무조건 평가절하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라는 견해를 편다. 

Ⅲ. 프레이저 인스티튜트와 빌 게이츠의 피케티 비판
 
최근 발표된 프레이저 인스티튜트와 빌 게이츠의 피케티 비판을 소개한다.

1. 프레이저 인스티튜트: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근본적으로 오류다(Picketty’s Capital fundamentally flawed).”
 
프레이저 인스티튜트는 Phlip Cross의 발표를 통해 피케티는 “근본적으로 오류”라고 지적했다.5) 다음은 Cross의 발표 가운데 한 부분이다.
“피케티의 주장은 자본수익률의 과장된 견해와 경제성장률의 비관적 견해가 바탕이 되었다. 피케티는, 공적 논쟁이 성장 없이 소득재분배를 하자는 쓸데없는 쟁점으로 방향을 바꾼 유럽의 현재 상황의 영향을 역시 크게 받았다.”

2. 빌 게이츠: 피케티는 ‘자본의 속성과 사회적 기능’을 구별하지 못했다
 
빌 게이츠는 『21세기 자본』에 대한 비판을 써서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고 한다.6) 진위(眞僞)를 따지지 않고 빌 게이츠의 글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문단을 인용한다.
 
“이 책에는 피케티와 다른 경제학자들이 고민해봐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결점이 있습니다. 피케티가 모은 역사적 자료 전체를 통틀어봐도, 그는 어떻게 부가 창출되고 어떻게 부가 사라지는지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r>g 라는 간단한 방정식 하나로 요약됩니다. 여기서 r은 평균 자본수익률이고 g는 경제성장률입니다.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을 웃돌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을 가진 계층과 노동에 의존하는 계층 사이의 빈부격차는 벌어지게 됩니다. 이 방정식은 너무 중요해서 그는 이 공식이 ‘근본적인 발산력(force for divergence)’이며 ‘내 결론의 전체 논리를 요약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불평등을 이해하는 데 과연 r>g 라는 공식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경제학자도 있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 전문가가 아닙니다. 제가 아는 것은 피케티의 r>g 공식이 자본의 여러 속성과 사회적 기능을 적절히 구별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세 가지 부류의 부자들을 생각해 봅시다. 한 사람은 자본을 자기 사업을 일으키는 데 쓰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자신의 부를 자선사업에 쓰고 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자신의 부를 요트나 비행기 같은 것을 사는 데 대부분 소비합니다. 이 세 사람의 부가 모두 불평등에 기여하는 게 사실이지만, 앞의 두 사람은 세 번째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나은 가치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케티는 이런 차이를 구분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더 중요한 결점은, 피케티의 r>g 분석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부의 축적을 막는 데 딱히 강력한 힘이 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미 부자가 된 가문이 다시 부를 세습하는 귀족사회, 특히 피케티가 불로소득이라고 부르는, 돈을 빌려주고 얻은 이자나, 땅을 빌려주고 얻은 지세 등을 통해 부가 세습되는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이 저런 사회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미국 부자 순위 상위 400명 명단을 한 번 보십시오. 그중 절반은 (자신의 노력과 적당한 행운 덕분에) 기업을 일으켜 성공시킨 사업가입니다. 피케티의 불로소득 이론과는 달리, 조상이 18세기에 땅을 사서 그 지세를 축적해 부를 쌓은 가문의 사람은 저 400위 명단에 한 명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구세대 상속 부자는 사회적 불안정, 인플레이션, 세금, 기부, 지출 등의 이유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각주(서문)
 
1) Thomas Piketty,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이 책은 프랑스어 판은 2013년 8월에, 영어 번역판은 2014년 3월에, 한국어 번역판은 2014년 9월에 글항아리에서 발간되었음).
 
각주(본문)
 
1) 조동근은 Harrod 성장모형을 바탕으로 저축률과 자본수익률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pp.138-9.
 
2) 자본축적이 증가할 경우 자본축적의 증가율에 비해 자본수익률의 감소가 상대적으로 작으면 자본소득의 몫은 증가한다.
3) 《동아일보》, 2014.9.30.
4) 좌승희는 이를 ‘정규재 tv’에서 밝혔다.
5) 이 글은 2014년 9월 18일에 발표되었다.
6) http://newspeppermint.com/2014/10/20/why-inequality-matters-capital-in-21st-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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