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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 다큐멘터리 한장면. |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는 구조개혁에 성공하여 ‘영국병’에 만연(蔓延)된 1970년대의 영국을 시장경제국가로 살려낸 정치가다. 이 공로로, 대처는 초대 총리 로버트 월폴 경 이후 290여 년 동안에 배출된 57명의 총리 가운데 이름 다음에 ‘이즘’(ism·대처리즘)이 붙는 유일한 총리다.1) 대처리즘 덕분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제2의 대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은 ‘바지 입은 대처’ 별명을 얻었다. 대처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탄생시켜 1980년대 이후 약 30년 동안 세계인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대처는 세계를 개조한 정치가다.
어떤 삶을 살았는가?
마거릿은 1925년 랭커셔주의 그랜덤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알프렛 로버츠(Alfred Roberts)는 교사를 꿈꿨지만 가난하여 초등학교를 마치고 식료품점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후에 시장까지 역임했다. 그는 딸에게 ‘첫째는 일, 둘째는 교회, 셋째는 정치’라는 생활철학을 심어주었다. 그의 집은 사업가, 교인, 정치가들로 늘 북적거렸다. 그러한 분위기에서 마거릿은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정치를 배웠고, 항상 정치에 매료되었다. 마거릿 대처가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의 새 주인이 되어 계단을 오르다가 갑자기 뒤돌아다보며 한 말은 유명하다―“제가 승리한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제게 모두 가르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시장인 아버지는 딸이 16살이 되어 재판 방청이 가능해지자 순회재판에 초청했다. 그날 마거릿은 판사 직업에 매료되었다. 마거릿이 옥스퍼드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기로(어느 자선단체가 화학을 전공하면 학비의 일부를 돕겠다고 제안했음) 입학이 결정된 직후 어느 날 아버지는 딸을 또 순회 재판에 초청했다. 재판 과정에서 감동받은 마거릿은 아버지로부터 판사를 소개받자마자 대뜸 물었다―“저는 장차 법률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법률을 공부하면 늦지 않을까요?” 판사가 대답했다―“늦지 않다. 나도 케임브리지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다음에 법률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된 거야.” 마거릿은 졸업 후 법률을 공부하기 시작한 지 7년 만에 변호사 자격을 땄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정치에 전념했다.
마거릿은 학생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녀는 통제경제를 버리고 자유경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 옥스퍼드 출신 하원의원들의 연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대학생 때 하이에크가 1944년에 쓴 『노예가 되는 길』(Road to Serfdom)을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읽고 일찌감치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마거릿은 195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보수당 최연소 후보로 하원의원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했고, 1951년 선거에서도 떨어졌다. 선거를 계기로 이혼 경력이 있는 데니스 대처를 만나 1952년에 결혼했다. 마거릿 대처는 34세 때인 1959년에 드디어 정치가 꿈을 이루었다. 선거에 참가한 지 10년 만에 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대처는 당선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당시 보수당 맥밀런 수상으로부터 연금관련 정무차관 자리를 제의받았고, 이후 1965년부터 1970년까지 장관직을 무려 일곱 차례나 역임했다.
대처는 1975년 2월 11일 보수당 하원의원 투표에서 영국 최초의 보수당 여성 당수로 선출되었다. 그것은 우연이었고, 그 우연은 대처의 ‘절친한 정치적 친구’ 키스 조지프로부터 주어졌다. 보수당 당수가 확정적이었던 조지프는 미혼모에 관한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이 문제가 되어 도중하차했는데 대처가 그 대신 당수로 선출된 것이다.
1979년 3월 28일 하원의 급식업체가 파업에 들어갔다. 그 날 노동당 정부는 불신임투표에서 졌다. 그것도 딱 한 표 차이로! 노동당 캘러헌 총리는 총선거 실시를 선언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이 노동당을 누르고 정권을 잡았다. 대처는 임기 4년의 총리직을 세 번째 역임하다가 임기 6개월을 남겨두고 인기가 떨어져 당수로 선출될 가망이 없게 되자 스스로 정계를 떠났다. 대처는 2013년 4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사회주의 몰아내고, 노조 파워 무력화" 공약
마거릿 대처는 비전을 가진 정치가다. 보수당 당수가 된 대처는 1975년 2월 런던의 한 호텔에서 보수당 상・하원의원들과 당대표들을 대상으로 당수취임 수락 연설회를 가졌다. 연설 제목은 ‘비전을 잃은 사회는 망한다’는 것이었다―“비전이 없는 사회에서 인간은 틀림없이 망하는 법입니다. …. 과거의 영국인들이 그토록 무기력했다면 저 위대한 대영제국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모험심에 찬 항해로 인한 신대륙 발견 같은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해 1월 대처는 자유진영과 소련과의 관계가 화해 분위기였는데도 한 연설에서 소련을 강렬하게 비난했다. 다음날 소련 신문은 대처를 ‘철의 여인(iron lady)’이라 이름 짓고 강렬하게 공격했다.
대처는 보수당 당수로서 두 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첫째, 영국을 옛 대영제국처럼 영화로운 나라로 만들고, 둘째, 영국에서 사회주의를 몰아낸다는 것이었다. 대처는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면 ‘영국에서 사회주의를 몰아내고, 노조파워를 무력화시키겠다’고 공약을 제시했다. 당시 영국은 사회주의로 물들어 있었고,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 말해주듯 노조천국이었다.2) 보수당 대처가 승리했다.
구조개혁을 추진하여 영국을 시장경제 국가로 바꾸다
마거릿 대처는 영국경제가 각종 규제, 법과 제도, 노조파워 등으로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진즉부터 깨달았다. 대처는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영국을 시장경제 국가로 바꾸고자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구조개혁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3)
➀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예산을 삭감하고 정부조직을 개편하다
대처는 새로운 정부운용 방식, 개방적인 공무원제도를 도입하고 관료제도를 개선했다.
➁ ‘법과 원칙’을 적용하여 노사안정을 이룩하다
대처는 집권 11년 반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노동관계법을 제정 또는 개정하고, ‘법과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하여 노조천국 영국에 노사안정을 가져왔다.
➂ 영국을 세계 최초의 ‘민영화 수출국가’로 만들다
대처는 세금 보조로 운영되던 적자투성이 공기업을 과감하게 민영화하여 성공한 결과 ‘영국을 세계 최초의 민영화 수출 국가’로 만든 정치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➃ ‘빅뱅(Big Bang)’으로 불린 금융개혁에 성공하다
대처는 개혁을 추진하면 ‘빅뱅’이 되고 말리라던 금융개혁에도 성공했다.
➄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여 기업과 경제를 살리다
대처가 규제개혁을 추진하여 성공한 결과 영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규제가 가장 약한 나라가 되었다.
➅ 시장친화적(市場親和的) 분배정책을 실시하다
대처는 ‘영국병’을 치유하고 시장경제에 어울리는 분배정책을 실시했다.
➆ 교육 평등주의를 깨뜨리다
대처는 노동당 정부가 도입했던 ‘교육 평등주의’를 깨뜨리고, 교육을 전문가와 관료의 독점에서 해방시켜 부모와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질을 높였다.
대처는 구조개혁을 추진하여 성공했다. 대처는 뉴질랜드의 롱이 총리가 1984년에, 아일랜드의 호이 총리가 1987년에 영국처럼 구조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OECD는 1990년에 『구조개혁의 진전』이라는 보고서를 출간하여 회원국들이 영국, 뉴질랜드, 아일랜드처럼 구조개혁을 추진할 것을 권고했다. OECD가 권고한 구조개혁 내용과 방향은 경제 전반에 걸쳐 경쟁원리를 도입하여 경제를 시장경제로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대처가 구조개혁에 성공하자 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밀튼 프리드먼은 ‘구조개혁은 취임 후 최초 6개월에서 9개월간에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대처, 루즈벨트, 레이건이 추진한 구조개혁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았다.4)
구조개혁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프레이저 인스티튜트가 해마다 발표하는 ‘경제자유지수’가 이를 보여준다. ‘경제자유지수’란 시장경제 활성화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다. 다음은 몇몇 연도의 영국의 경제자유지수 순위다. 수치가 작을수록 경제자유도가 높다는 것을 뜻하고, 괄호 안의 수치는 조사대상 국가수를 나타낸다―1975: 22위(109국), 1980: 34위(112개국), 1985: 12위(112개국), 1990: 19위(114개국), 1995: 7위(115개국), 2000: 4위(123개국), 2005: 5위(141개국), 2011: 12위(152개국). 이처럼 영국은 대처가 1979년부터 구조개혁을 추진한 결과 1985년 이후 영국의 시장경제 활성화 수준은 세계적으로 상위 5개국 안팎에 들 정도로 향상되었다.5)
대처가 탄생시킨 신자유주의 평가
신자유주의는 이념이 아니라 정책이다. 신자유주의란 1930년대 대공황이 초래한 정부 개입의 타당성과 1940년대 이후에 몰아친 사회주의 열풍에 짓눌렸던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대처가 추진한 구조개혁 성공을 계기로 ‘새롭게 얻게 된’ 이름이다. 신자유주의 탄생의 주역은 구조개혁에 성공한 마거릿 대처, 작은 정부를 실현한 로널드 레이건이다. 신자유주의 기간은 마거릿 대처가 구조개혁을 추진한 1980년경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다. UN 자료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기간 동안 성장률, 소득 등으로 볼 때 사람들은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산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좌파들은 신자유주의가 소득불평등을 악화시켰다고 보고 대처와 레이건을 혹평한다. 그들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신자유주의는 죽었다’고 외치면서, 금융위기는 ‘탐욕에 빠진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정부 역할이 더욱 강화되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놓고 『4.0 자본주의』를 쓴 칼레츠키는 “좌파들은 시계추를 무려 50년 뒤로 돌려 정부만능, 노조만능의 시대로 돌아가려 한다”고 지적하고, “정부만능의 2.0 자본주의(주: 1930년대부터 대처·레이건 등장까지의 기간)는 현재의 시스템(주: 대처·레이건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의 기간으로 3.0 자본주의)만큼이나 현란하게 부서졌다”며 좌파들의 주장을 일축(一蹴)했다.6)
대처는 2002년에 출간된 저서 『국가경영』(Statecraft)의 첫 쪽에다 이렇게 썼다―“이 책을 로널드 레이건에게 바친다. 세계는 그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이는 레이건이 사회주의를 붕괴시키고 냉전을 종식시켜 세계를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구해낸 것에 대한 감사를 나타낸 말이다. 대처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마거릿 대처는 세계를 개조한 정치가다.
각주
1) 박동운(2004), 『대처리즘: 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한 승리』, FKI미디어. 박동운(2008), 『CEO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 三英社.
2) ‘불만의 겨울’이란 1978년 말부터 1979년 초까지 자동차·운수·병원·청소노조의 연대파업으로 인한 ‘고통’을 뜻하는 말이다. 사람이 죽어도 시체를 옮기지 않았고, 쓰레기가 쌓여도 치우지 않았고, 특히 노인들은 ‘과연 겨울을 살아서 넘길 수 있을까’ 두려움에 떨었던 그야말로 악명 높은 노조파업이었다.
3) 박동운(2004), 『대처리즘: 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한 승리』, KKI미디어.
4) Friedman, M. & R.(1984), Tyranny as a Status Quo, Harcourt Brace Jovanovich.
5) 2011년의 경우 경제자유도가 높기로 10위 안에 든 국가 가운데 홍콩, 모리셔스, 아랍 에미리트, 바레인 등이 포함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영국 순위는 해마다 5위 안팎에 든다고 보아도 된다.
6) 《조선일보》〔Weekly BIZ〕, 2011. 11. 1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