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주인공을 찾습니다.”

베풂의 미학 ③: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한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업데이트 2014-07-23  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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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재산 95%를 장학사업에 쏟아부은 이종환 관정재단 명예이사장. /조선DB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베풀다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은 2000년에 사재 10억 원을 출연하여 ‘관정이종환교육재단(冠廷李鍾煥敎育財團)’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2014년 7월 현재 출연액이 약 8천억 원을 넘어선, 국내는 물론 동양까지 통틀어 가장 큰 장학재단이다. 이 재단은 2000~2014년간 장학생을 5,332명(국내 4,363명, 국외 969명)이나 배출했고, 장학금과 기부금 등으로 1,063.1억 원이나 지출했다. 이 재단 홈페이지 ‘재단소개’에 들어가면 “세계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주인공을 찾습니다”가 뜬다. 재단소개 ‘인사말’에 들어가면 “관정 장학생 여러분들이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를 바랍니다”가 뜬다. 이종환 회장은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베푼 대표적인 사례다.

누구인가?

이종환 회장은 2008년에 출간된 자서전 『정도(正道)』1)의 ‘머리말’에서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어 몇 군데 인용한다.

“나는 85년 전(필자 주: 이는 2008년 시점에서 쓴 것으로, 2014년 현재 91년 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의령초등학교를 거쳐 마산의 마산중학교(5년제)를 졸업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본의 메이지대학에 유학했다. 하지만 1944년 경상학과 2학년을 수료하자 학병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일본 관동군 소속으로 소·만국경과 오키나와를 오가며 사선을 헤매다가 1945년 8·15해방을 맞았다.
 
그 후 시골 고향에서 정미소를 한 것도 기업이라면 내 기업인생은 60년이 넘는다. 그러나 본격적인 기업인으로서의 활동은 1958년 삼영화학공업주식회사를 서울에서 창업한 때부터라고 할 때 올해로 50년이 된다. 따라서 나는 산업화시대의 창업 1세대에 속한다.
 
나는 지난 50년 동안 구두쇠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빚 없는 경영’을 해야 적자생존을 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행동철학을 지녔다. 내가 이 재산을 무덤까지 갖고 간다면 영원한 구두쇠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내 전 재산의 사회 환원으로 창립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은 세계 1등 인재 육성을 위한 동양 최대의 장학재단이다. ‘돈을 버는 데는 천사처럼 못 했어도 돈을 쓰는 데는 천사처럼 하련다’는 내 행동철학을 실천하는 데 그 동기와 목적이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학문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의 선진화는 물론 인류의 공동 번영도 주도해 나갈 초일류 인재들을 많이 길러내야 한다. 내가 환원한 재산도 바로 여기에 쓰이고 있다.”

이종환 회장의 자서전 뒤쪽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플라스틱 바가지를 생산하는 작은 공장에서 시작하여 최첨단 극초박막 커패시터 필름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구기까지!
그토록 어렵다는 애자(碍子) 산업에 도전하여 순수 우리 기술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자기애자(磁器碍子)를 개발하기까지!
IMF 외환위기를 흑자경영으로 돌파하고 팔순의 나이에도 중국 진출에 성공하기까지! 바른 길을 추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평생 일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까지!”

인용 내용은 이종환 회장이 누구이고, 그가 이끌어온 기업의 위상이 어떠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90을 넘은 나이인데도 중국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신념은 확고하다―“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 장학재단이 돈을 많이 쓸 수 있습니다.”

왜 장학재단을 세웠는가?

그는 1960년대 말 기계를 사기 위해 유럽을 방문하는 길에 스위스에 들렀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나라 크기는 한국의 3분의 1도 안 되고 인구는 6분의 1도 안 되는데 1인당 국민소득은 10배나 되지 않는가. 자원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1위였다. 그 때부터 그는 모교인 마산고등학교에 장학금을 내기도 하고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그는 자폐증에 걸린 둘째 아들을 위해 자선 정신병원을 세우기로 하고 땅을 구입했지만 규제에 묶여 계획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선병원 건립은 포기하고 인재 육성을 위해 장학재단 설립으로 계획을 바꿨다. 

그는 1995년부터 장학재단 설립을 준비했다. 2000년에 10억 원을 출연하여 ‘관정이종환재단’을 설립했다. 2002년에 기금 3,000억 원을 출연하여 재단 이름을 ‘관정이종환교육재단’으로 바꿨다. 2006년에는 제주골프장을 비롯한 25개의 부동산, 예금, 주식 등을 출연했다. 2006년에는 살고 있는 집까지 출연한 후 자신은 여생을 전셋집에서 보낼 계획까지 세웠지만 규제에 묶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2) 이 재단은 2014년 7월 현재 출연액이 약 8천억 원을 넘어서 동양 최대의 장학재단으로 우뚝 섰다. 그는 전 재산의 95%를 장학재단에 출연했다고 2008년에 발간된 자서전에서 밝혔다.

“이 재단은 나의 재산 출연이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2008년 3월 말 현재 6천억 원(6억 5천만 달러)을 넘어섰다. 2002년 새 출범 때의 두 배나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내 전 재산의 95퍼센트 정도가 된다. 온 인류가 존경해 마지않는 알프레드 노벨의 환원 재산을 오늘날 가치로 평가하면 4,300억 원(4억 5천만 달러)이고 재산의 사회 환원율이 94퍼센트라는 통계를 보면서 스스로 위안하고 보람으로 삼는다.”
 
인용 내용은 이종환 회장이 장학재단에 출연한 돈의 액수와 재산의 사회 환원율이   2008년 현재 현재가치로 환산한 알프레드 노벨의 경우보다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맞는 얘기다.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장학금 외에도 『남북통일말사전』 발간 등을 돕다

관정교육재단은 8천억 원이 넘는 출연금에서 매년 나오는 과실금으로 장학사업 외에도 여러 가지 사업을 지원해오고 있다. 2000∼2014년간의 사업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장학사업: 국내 장학생 (4,363명에 232.6억 원) 국외 장학생 (969명에 797.8억 원)
-박사학위 받은 장학생 수: 국내 101명, 국외 174명
•보조금 및 기부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반도평화 프로그램 지원, 수해의연금 지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통일관 건립 지원, 제주국제화장학사업 지원, 『남북통일말사전』 출간, 『일본의 뿌리는 한국』(세키 유지) 번역 출간, 국기게양대 제작 기증, 중국 절강대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장학금 설립(3년간 30만 달러 지원), 서울대 관정도서관 건립 기부(600억 원) 등.

심재기 서울대 명예교수가 중심이 되어 발간한 『남북통일말사전』(두산동아, 2006)을 소개할 필요를 느낀다. 이 책은 ‘남북 말의 이질화 극복을 위한 통일 대비 사전으로 남북의 서로 다른 말 10,000여 개를 비교하여 이해를 돕는 겨레말사전’이라고 한다. 통일을 대비한 관정교육재단의 문화사업이다. 우리는 몇 개 단어만 봐도 남북 간 언어의 이질화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든다(괄호 안은 북한말): 달걀(닭알), 철새(계절조), 형부(아저씨), 헹가래(혜염가래), 누룽지(밥가마치), 휴게실(쉼칸), 박치기(머리받기), 열등감(렬등감), 휴대폰(손전화), 한약(漢藥)(동약(東藥)) 등.

인재를 키우는 기쁨에 폭 빠지다

이종환 회장은 인재를 키우는 기쁨에 폭 빠져 있다. 그는 재단의 지원을 받은 장학생들이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고 방에 찾아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의 입가에 미소까지 번진다. 그는 『논어』의 한 구절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를 떠올리며 기뻐한다. 그리고 말한다.
“여러분이 세계 1등 인재가 되어서 나라와 인류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나에게 뭔가 갚을 생각이 있으면 여러분 후배들에게 대신 베풀도록 하시오.” 이종환 회장은 장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국가와 세계를 위해 자기들 몫을 다하리라 믿고 더 이상 관리하지 않는다. 이종환 회장은 이렇게 당부한다.
“언젠가 자네가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반드시 듣고 싶네.”
이런 분위기에서 장학생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관정교육재단에 들르면 신이 납니다. ‘노벨상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언제나 들을 수 있어서요.”
   
이종환 회장은 장학사업의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관정 장학사업의 범위를 우선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으로까지 확대해서 중국이나 러시아 등으로 유학하는 북한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주도록 하는 한반도 장학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발상이다. 그는 3년간 3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하고 2012년에 중국 절강대에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장학금을 설립했다.

베풂은 기업가나 부자의 몫, 이종환 회장이 모범을 보이다

필자는 집필과 관련하여 2008년에 이종환 회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감탄한 적이 있다. 당시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소득양극화 해소’와 관련하여 필자가 질문을 던졌다.
“장학재단 기금의 일부를 떼어내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실 의사는 없으신지요?”
그는 필자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한 태도로 답변했다.
“돈은 쪼개면 안 됩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 명이라도 노벨상 수상자, 단 한 명이라도 빌 게이츠가 나올 것을 바라며 돈을 씁니다.”

인터뷰 때 자리를 같이한 교육재단 관계자들의 한 마디는 결코 빠뜨릴 수 없다.
“이종환 회장님은 점심은 항상 5,000원 이하이고, 1~2만 원을 쓸 때는 손이 떨릴 정도로 돈 쓰는 것을 무섭게 생각하는 분이십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재산의 94%를, 앤드류 카네기는 재산의 90%를, 빌 게이츠는 재산의 일부를, 한국의 대기업들은 적잖은 돈을 장학금 등으로 사회에 환원했지만 이종환 회장은 “세계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주인공을 찾습니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재산의 95퍼센트를 ‘자발적으로,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얼마나 훌륭한가! 이런데도 한국에서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부자라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겠는가!
 
각주
1) 이종환(2008),  『정도(正道)』, 관정교육재단.
2) 당시에는 장학재단에 부동산을 기부해도 세금을 내야 했고, 살던 집이 250평을 초과해 호화주택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세금폭탄을 맞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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