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황의 원인이 된 잘못된 3대 노동관행

노동시장 유연성 막는 종신고용, 연공급 임금체계, 기업의 해고 기피 성향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업데이트 2014-04-03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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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캐논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조선DB.

일본은 1987∼1991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5.1%에 이르는 소위 거품경제(bubble economy)를 경험했다. 이 기간에 미국 LA에 있는 32개 대형 건물 가운데 16개를 일본인이 소유했을 정도로 일본 거품경제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곧 이어 일본은 1992∼2002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0.1%에 이르는 장기불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 후 연평균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인 2003∼2007년간 1.9%, 금융위기부터 최근까지인 2008∼2012년간 –0.1%다.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의 원인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되어야 하지만 필자는 이를 잘못된 노동 관행이 지배한 노동시장에서 찾고자 한다.

일본은 노동시장 규제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나라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측정하는 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첫째, OECD가 발표하는 ‘고용보호’(employment protection)를 보자. 일본은 OECD 국가 가운데 고용보호가 약하기로 1998년에 14위, 2003년에 9위다. 고용보호가 그다지 심한 편이 아니다. 고용보호가 심하지 않다는 것은 해고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프레이저 인스티튜트가 발표하는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economic freedom related to labor market regulation)를 보자. 이는 ‘최저임금, 채용·해고 규제, 중앙집권적 단체협상, 채용비용, 해고비용, 징집(徵集) 유무(有無)’ 6개 항목을 바탕으로 평가된다.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로 평가할 때 노동시장 규제가 약하기로 일본은 2011년 152개국 가운데 14위인데, 홍콩, 피지, 우간다 같은 국가 체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13개국을 제외하면, 5위다. 이런 논리로 노동시장 규제가 약한 순서대로 쓰면,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스위스, 일본, 영국, 아일랜드다.

일본 노동시장은 잘못된 노동 관행으로 경직돼
 
일본 노사관계의 3대 특징은 ‘종신고용제도, 연공급 임금체계, 기업별 노조’로 표현된다. 이들 노사관계의 3대 특징은 1970년대의 유가파동과 뒤이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기간에도 일본경제를 고도성장으로 이끌어 한 때 세계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를 제외하면, 이들 특징은 노동시장을 경직시켜 일본경제를 장기불황에 빠뜨리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들 노사관계의 3대 특징은 OECD의 ‘고용보호’나 프레이저 인스티튜트의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로 나타내는 노동시장 유연성 평가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상 이들 노사관계의 3대 특징은 ‘잘못된 노동 관행’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하려고 하는 잘못된 노동 관행이란 ‘종신고용제도, 연공급 임금체계’에다 ‘일본 기업의 해고 기피 성향’을 더한 세 가지 요소다.

종신고용제도의 등장

일본은 1904∼5년 간 러일전쟁을 치른 후 기계 산업 발전으로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유능한 사원을 확보하기 위해 스카우트 전쟁을 벌였다. 기업 간 스카우트 전쟁은 모두에게 피해를 주었다. 그러자 정부가 나서서 훈련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훈련학교의 강의내용과 시설은 좋지 않았고, 훈련을 마친 근로자들이 반드시 자기 회사를 선택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이때 큰 기업들이 나서서 회사 내에 훈련학교를 세워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로 하고, 내부승진을 원칙으로 삼아 사원들을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종신고용제도가 출발하게 되었다. 종신고용제도에서는 근로자가 다른 회사로 옮길 경우 취업기회를 잃기 마련이었다.

연공급 임금체계

종신고용제도가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근로자들에게 어떤 인센티브가 주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1920년대에 들어와 일본 기업들은 근로자들의 지속적인 근무와 협조적인 노사관계를 유도하기 위해 연공급 임금체계(또는 호봉제)를 도입했다.

연공급 임금체계란 임금이 성, 직급, 경력, 학력을 바탕으로 결정되는 일종의 임금결정 방식이다. 연공급 임금체계는 1947년 일본전력산업 노조가 성인 근로자의 하루 필요 섭취량 2,400㎈를 근거로 ‘생활임금’을 채택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는데, 노동력이 부족하던 시기에 종신고용제도가 뿌리 내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임금이 경력이나 근속연수에 따라 결정된다면 어느 근로자가 다른 회사로 옮기려고 하겠는가. 다른 회사로 옮길 경우 어느 회사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느 근로자가 회사를 옮기려고 하겠는가. 그래서 종신고용제도는 연공급 임금체계에 힘입어 쉽게 뿌리 내릴 수 있었다. 한국은 일본의 연공급 임금체계를 베껴다가 오래 동안 사용해 왔다.

일본 기업의 해고 기피 성향

여기에다 일본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해고 같은 과격한 고용조정을 기피하는 성향이 짙다. 일본 기업들이 해고를 기피하는 이유는 첫째, 해고를 할 경우 회사의 평판이 나빠져 좋은 근로자를 유치하기가 어렵게 되고 둘째, 해고가 잘못되었을 경우 일본 법원은 이를 바로 무효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하는 《노동경제동향조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의 정리해고 건수는 해마다 거의 제로에 가깝다.

잘못된 노동 관행이 장기 불황의 원인

‘종신고용제도, 연공급 임금체계, 일본 기업의 해고 기피 성향’으로 표현되는 잘못된 노동 관행이 일본경제에 미친 효과를 언급한다. 일본경제가 장기불황에 들어간 1990년대 전반기를 보자. 이 무렵,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 입사한 근로자들이 연공급 임금체계하에서 최고호봉에 놓여 있었고, 퇴직보너스까지 받게 되어 있어서 일본 기업들은 임금비용의 부담을 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1987∼1991년간의 거품경제기에 무더기로 입사한 근로자들이 30대 중반에 이르고 있어서 일본 기업들은 인력이 남아돌고 있었다. 이러한 실정에서도 일본 기업들은 해고를 기피하는 성향 때문에 남아도는 인력과 인건비 부담을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 결과 일본 노동시장은 경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나타난 것이 1992∼2002년간의 장기불황, 곧 저성장・고실업이다.

일본의 잘못된 노동 관행과 관련하여 비정규직 문제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비정규직이 1975년 290만 명에서 1999년 630만 명으로 증가했고, 2003년 불황을 벗어날 무렵 정규직 대 비정규직 비율이 6대 4에 근접했다. 또 일본은 2001년 정규직에 대한 파트타임 비중이 약 28%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네덜란드 다음으로 높았다. 뿐만 아니라 청년실업률은 1990년 4.3%에서 2003년 10.2%로 증가했다. 2012년 일본의 청년실업률은 7.9%다.

그러나 일본은 2003년 이후 경제가 다시 호황국면으로 치닫자 고용 사정이 크게 호전되어 대학생 취업은 3년 연속 20% 이상 증가했고, 대학생들의 취업은 입도선매(立稻先賣)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근로자 1명당 채용을 원하는 사용자수 비율인 구인배율(求人倍率)이 2.14로, 같은 시기에 0.25에 지나지 않은 한국보다 무려 8배나 높았다. 이런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2008년 일본경제도 강타하고 말았다. 이 결과 2008∼2012년간 일본의 연평균 성장률은 다시 장기불황 때와 똑같은 –0.1%로 떨어졌다.

어떻든 일본이 다른 선진국들과는 반대로 1992년부터 장기 불황에 빠지게 된 원인의 하나는 일본이 ‘종신고용제도, 연공급 임금체계, 사용자의 해고 기피 성향’이라는 잘못된 노동 관행으로 노동시장이 경직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종신고용제도와 연공급 임금체계가 빠르게 무너져 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일본 노동시장도 머지않아 미국과 영국처럼 경쟁원리가 바탕이 되어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노동시장이 한국에 주는 교훈

한국은 일본 노사관계의 3대 특징인 ‘종신고용제도, 연공급 임금체계, 기업별 노조1)’를 베껴다가 사용해 왔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한 번 직장은 평생 직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노조는 파업 때마다 ‘연공급 임금’ 고수를 내세우고, 기업별 노조는 대표적인 노조 조직형태로 뿌리내려 있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한국이 앞으로도 계속 ‘종신고용제도, 연공급 임금체계’를 유지해 간다면 한국 노동시장은 일본처럼 경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일본 노동시장이 한국에 주는 교훈이다.

다행히도 일본 노동시장이 변하는 것처럼 한국 노동시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종신고용제도는 산업구조의 다양화로 근로 선택과 창업 가능성이 확대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라져 가고 있고, 연공급 임금체계는 직업의 다양화로 그 존속이 위협받음으로써 비중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노조 조직형태도 진즉부터 기업별 노조에서 직업별·산업별 노조로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한국 기업을 위한 임금체계의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관리직, 전문직, 연구직, 영업직 등은 연공급 임금체계(호봉제)를 폐지하는 대신 능력과 업적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연봉제가 도입되고, 생산직은 근무연수에 관계없이 직무에 따라 동일한 시간급 또는 일급이 지급되는 직무급제가 도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행히도 박근혜 정부가 ‘연공에 따라 정기적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축소하고 성과와 직무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2014년 3월 19일에 내놓았다. 올바른 임금체계 개선 방향이라고 평가된다.
 
각주

1) 기업별 노조는 전두환 대통령이 1980년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후 노조에 대한 탄압을 완화할 목적으로 도입되어 뿌리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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