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현실화의 전제조건
‘공기업 개혁, 다음 단계는 공공요금 현실화다’라는 필자의 주장에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그것은 공기업 개혁에서는 효율성 제고, 보유자산 매각 등 빚더미 공기업들의 자구책(自救策) 강구와 정부의 방만 경영 감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위해 이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자구책 없는 공공요금 인상은 국민들에게 부담만 떠맡기고 말 것이다.
공기업 빚더미는 역대 대통령들의 책임
한 방송의 아나운서가 유난히 추운 겨울이 예상되는데도 도시가스요금이 평균 5.8%나 오른다고 꽤나 흥분된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도시가스요금이 작년 2월과 8월에 각각 평균 4.4%와 0.5% 올라 이번은 1년 새 세 번째 인상이다. 민생을 돌보는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마음으로 이를 결정했을까?
686개 공공기관의 총부채가 2012년 말 566조 원으로, 국가채무 446조 원보다 무려 120조 원이나 많은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LH공사 등 12개 공공기관의 부채는 412조 원으로, 전체의 84%나 된다. 이들 12개 공공기관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기 힘든 상황이다. 최근 정부의 KTX 경쟁체제 도입을 반대하여 노조파업이 발생한 코레일은 부채가 17조6028억 원에, 하루 이자만 13억5000만 원에 이른다.
공기업이 이렇게 빚더미에 올라서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 역대 대통령들에게 책임이 있다. 대통령은 당선 후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논공행상의 잔칫상을 차리기 마련인데 그것은 곧 공기업 CEO 낙하산 인사다. 이는 오래 동안 지속되어 온 관행이다. 공기업 CEO가 낙하산 타고 내려오면 노조는 기를 쓰고 이를 반대하고, CEO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와 끈질긴 협상을 벌인다. 협상의 결과는 자동 승진, 급여 인상, 직장 대물림 등으로 수놓는다. 그러다보니 공기업은 ‘신이 내린 직장’이 되었고, 평균연봉은 대기업 평균연봉을 웃돌게 되었다. 이런 관행 탓에 공기업 빚은 계속 쌓여만 갔다. 여기에다 역대 대통령들은 공약으로 내세운 사업까지 공기업에 떠맡겨 왔다. 앞에서 언급한 LH공사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사실상 어느 누구도 이를 탓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5년간 일하다 박수 받고 떠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공기업 빚더미는 공공요금 규제 탓
공기업이 빚더미에 올라서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공공요금 규제다. 역대 대통령들은 공공요금이 오르면 물가안정과 서민보호가 어려워진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공요금 인상을 규제해 왔다.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이럴진대 대통령이 낙하산 태워 내려 보낸 CEO가 감히 공공요금 현실화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필자는 한 가지 예외를 기억하고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의 필요성을 내세우다 임기를 2년여 남겨두고 2012년 11월 갑자기 사퇴한 김중겸 전 한전 사장의 경우가 그렇다. 이제 전기·수도·일반철도요금이 얼마나 현실화가 되어 있지 않는가를 보자.
전기요금은 생산원가의 90% 수준
한전 자료에 따르면, 2007∼2012년간 전기 관련 총수입은 한 해도 예외 없이 총원가에 미치지 못했다. 이로 인해 2007∼2012년간 누적 적자는 29조 원을 넘는다. 2007년 이전 연도까지 포함하면 누적 적자는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한전이 전기요금을 생산원가보다 낮게 부과했기 때문이다.
한전 자료를 바탕으로 2007∼2012년간의 경우를 예로 든다. 으로 나타내는 적용단가는 2007년 77.7원에서 해마다 조금씩 올라 2012년에는 101.0원이 되었다. 이를 필자가 원가(이는 총수입을 총원가와 같게 해주는 단가)를 계산하여 비교해본 결과 모든 연도에서 적용단가는 원가보다 지나치게 낮게 나타났다. 한 예로, 2007∼2012년간 한전의 가장 많은 적자는 2008년 8조8억 원인데, 만일 2008년 적용단가가 79.2원 대신 원가인 102.0원이었다면 한전의 적자는 제로였을 것이다. 2008년 적용단가는 원가의 77.6%로 낮게 책정되었다. 한전은 예산 편성에서 아예 적용단가를 원가보다 낮게 책정했다. 한 예로, 2012년 예산에서 적용단가는 원가의 89.79%로 편성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물가상승과 민생보호를 내세워 전기요금 현실화를 외면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선진국 전기요금은 한국보다 1.3∼3.4배 많아
역대 정부가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낮게 책정해 온 결과 한국의 전기요금은 다른 나라보다 엄청나게 낮다. 2008년 한국의 전기요금을 100.0으로 볼 때 일본 231.5, 미국 127.0, 캐나다(2006년) 79.6, 프랑스 189.9, 독일(2007) 257.8, 영국 259.6, 이탈리아 342.7이다. 이처럼 선진국 전기요금은 캐나다만 제외하고 한국보다 1.3∼3.4배나 많다. 전기요금이 선진국에 비해 엄청나게 싸다보니 소비자는 아낄 생각을 덜 하게 된다. 따라서 전기요금 현실화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비싸면 적게 쓴다’는 인식을 갖게 해 한전의 적자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수도요금은 생산원가의 70∼80% 수준
수도요금은 어떤가? 수자원공사 자료에 따르면, 2000∼2011년간 수도요금 현실화율1)은 2000년 75.2%에서 2003년 최고치인 89.3%까지 증가하다가 그 이후로는 사실상 감소하여 2011년 76.1%를 나타냈다. 이 결과 2000∼2011년간 수자원공사의 누적 적자는 25조8천억 원을 넘는다.
일반철도요금은 7년 동안 동결
이명박 정부는 2012년 초 ‘공기업 선진화 계획’을 세워 KTX 운행을 일부분 민간에 맡겨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철도운영 경쟁은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부산행·목포행 고속철도 노선에 민간 사업자를 끌어들인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놓고 철도노조는 경쟁체제 도입은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토부는 2013년 1월 철도산업기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계획은 이명박 정부가 마무리하지 못한 채 박근혜 정부로 넘어갔다. 박근혜 정부가 KTX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하려 하자 2013년 12월 철도노조가 20여 일 넘게 파업으로 거세게 맞섰지만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의 KTX 경쟁체제 도입을 놓고 철도노조는 2013년 1월 보도 자료를 통해 정부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코레일은 KTX 흑자 수익으로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일반철도 적자를 보전해 오고 있다.
∙서민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는 2007년부터 4년 6개월간 일반철도요금을 동결했다.
철도노조가 일반철도의 적자 원인은 일반철도요금 동결에 있다고 반박한 것은 틀리지 않는다. 역대 정부의 일반철도요금 동결이 코레일의 적자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한편 코레일이 독점체제 KTX 요금을 높게 부과해 일반철도 적자를 보전한 것도 틀리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요금을 현실화해야
박근혜 정부는 ‘법과 원칙을 지켜’ 철도노조와의 싸움에서 KTX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공기업 개혁의 첫 단계에서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공기업이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효율성 제고, 보유자산 매각 등을 통해 빚더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해도 문제가 남는다. 그것은 공공요금 현실화다.
공공요금 인상 10개년계획 세워야
공공요금을 한꺼번에 원가 수준으로 올린다면 국민의 저항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실행이 어렵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공공요금 현실화 목표율’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이는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공공요금을 몇 년 후 원가에 근접할 수 있도록 매년 일정 %씩 인상해가는 계획이다. 예를 들면, 전기요금이 현재 원가의 80%일 경우 1년에 2%씩 올린다면 10년 후 적용단가와 원가는 같게 될 것이다. 수도요금, 일반철도요금도 마찬가지다. 10년이 짧다면 15년, 20년 계획이라도 세워야 한다.
비싸야 아껴 쓴다
사람들은 비싸야 아껴 쓴다. 그래서 전기·수도요금은 반드시 올려야 한다. 2012년 겨울과 2013년 여름 우리는 전력난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날들을 가슴 조이며 살았던가? 지나치게 싼 전기·수도요금이 과소비를 부추겨 공기업 적자를 키워왔다. 따라서 전기·수도요금 현실화가 과소비와 공기업 적자를 줄일 수 있는 확실한 해법이다.
각주
1) 이는 생산원가(원/㎥)에 대한 요금(원/㎥) 비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