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 공공기관’ 개혁, 칼날이 너무 무디다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업데이트 2013-12-1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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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철도노조가 지난 12월 9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12일 오후 경기도 의왕내륙컨테이너기지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DB.

686개 공공기관의 총부채가 2012년 말 566조 원으로, 국가채무 446조 원보다 무려 120조 원이나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LH공사 등 12개 공공기관 부채가 많은 12개 공공기관은⑴ 다음과 같다: LH,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 한국전력(발전자회사 포함), 가스공사,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석탄공사, 예금보험공사, 장학재단. 의 부채는 412조 원으로, 전체의 84%나 된다.
 
이들 12개 공공기관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기 힘든 상황이다. 또 마사회 등 20곳은 방만 경영의 극에 이르렀다. 이를 놓고, ‘한국의 대처’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급기야 공공기관 부채 해결을 향해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그러나 칼날이 너무 무디어 보인다.
 
‘빚더미 공공기관’ 개혁, 기관장과 주무부처의 자율에 맡긴다고?
 
‘빚더미 공공기관’ 개혁을 진두지휘하는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부채 과다’ 12곳과 ‘방만 경영’ 20곳 총 32곳을 중점 관리하고,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기관장은 해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빚더미 공공기관’ 개혁을 기관장과 주무부처의 자율에 맡긴다고 한다. 그런데 구조조정, 민영화, 낙하산 인사 개혁에 관한 언급은 아예 빠져 있다.
 
공공기관이 ‘빚더미’에 올라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역대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사업을 공공기관에 맡겼고 둘째, 공공기관장이 낙하산 인사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보금자리주택’을 보자.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의 지지를 얻고자 이명박 대선 후보가 내세운 보금자리주택은 그린벨트지역의 토지를 싼 값에 수용하여 1채당 9천만 원 정도의 정부 보조금을 부어 주변 시세보다 20% 정도 싼 값에 공급되었다. 이로 인한 빚을 LH가 떠안게 되어 LH 부채는 이명박 정부에서 138조 원으로 불어났다.
 
‘빚더미 공공기관’ 개혁이 기관장과 주무부처 자율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을 국민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역대 대통령들은 공공기관장 선정에서 ‘논공행상의 잔칫상’을 열심히 차려왔다. 지금도 떠도는 루머에 따르면, 공신 이름이 YS수첩에는 400여 개, DJ 수첩에는 800여 개가 있었다고 한다.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들의 수첩에는 또 얼마나 많은 공신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을까?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세 명의 공신들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 역대 대통령들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지 않았는가? 그래 낙하산 타고 내려간 공공기관장들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주는 ‘빚더미 공공기관’을 개혁할 의지를 갖겠는가? 이런 여건에서는 ‘자율적 개혁’이란 한 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래서 ‘빚더미 공공기관’ 개혁을 향한 정부의 칼날은 무디어만 보인다.  
 
공공요금 현실화 허용해야 자율적 개혁이 가능하다
 
필자는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에서 빠뜨린 내용 하나를 추가한다. 그것은 공공요금 현실화다. 역대 정부는 서민 보호와 물가 안정을 내세워 전기요금, 수도요금, 일반철도요금을 원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책정해 왔다. 그러다 보니 한전, 수자원공사, 코레일은 만년 적자상태를 면치 못한다.
 
2011년의 경우 전기요금은 원가의 90.3%여서 한전 적자는 5조9천억 원, 수도요금은 원가의 76.1%여서 수자원공사 적자는 1조8백억 원이다. 또 일반철도요금은 2007년부터 동결되어 2011년 누적부채는 10조8천억 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요금 현실화를 허용하지 않고 ‘자율적 개혁’이 가능할까?       

‘빚더미 공공기관’ 개혁, 민영화가 해법이다
 
어떻든 박근혜 대통령은 ‘빚더미 공공기관’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무딘 칼이 안 들면 칼날을 세워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대처’,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지만 공공기관 개혁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필자는 ‘빚더미 공공기관’ 개혁은 민영화가 해법이라고 주장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공기관 민영화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마거릿 대처에 관한 책을 세 권 쓴 필자는 공공기관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다. 이제 마거릿 대처가 공기업 개혁에서 어떻게 성공했는가를 소개한다. 이에 앞서 대처의 개혁 의지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평가되는, 석탄산업 구조조정과 관련된 노조와의 1년에 걸친 싸움부터 소개한다.
 
마거릿 대처, 363일간 석탄노조와 싸우다
 
대처가 구조개혁 과정에서 노조파워를 어떻게 무력화시켰는가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1983년 6월 선거에서 승리한 대처는 1기에 마무리 짓지 못한 정책과제를 손대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는 효율성이 낮은 탄광 구조개혁이었다. 1984년 3월 6일 석탄공사 맥그리거 총재가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효율성이 낮은 탄광 20개소를 1985년에 폐쇄・통합하고 직원 2만 명을 줄인다는 계획을 노조측에 제시했다.
 
석탄노조는 곧바로 파업에 들어갔다. 대처는 석탄노조 파업이 장기화하리라고 예상해 석탄을 몰래 수입해 놓는 등 대비책을 철저하게 마련했다. 이 파업은 대처의 정치철학에 대한 전면적 도전이라는 것을 대처와 노조위원장 스카길 둘 다 잘 알고 있었기에 양쪽 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었다.
 
스카길은 두 차례나 파업권 확립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투표를 실시했으나 실패했다. 그러자 그는 각 지부가 일제히 파업에 돌입하는 전국적 파업 전술을 택했다. 그러나 생산성이 높은 주(州)의 탄광 노조원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결과 석탄노조가 1984년 3월 6일에 시작해 363일 동안 끌어오던 파업은 드디어 스카길 위원장이 1985년 3월 3일 “여러분, 투쟁은 물론 계속합니다.
 
그러나 파업은 끝입니다”라는 선언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스카길은 1974년 전국탄광파업을 통해 당시 보수당 히스 정권을 무너뜨린 ‘제왕’ 같은 노조위원장이었다. 그러한 그가 ‘철의 여인’ 대처 총리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마거릿 대처의 공기업 민영화를 벤치마킹해야⑵
 
구조개혁에 성공하여 사회주의에 만연된 영국을 시장경제 국가로 바꿔놓은 공로로 마거릿 대처는 영국 총리 가운데 이름 다음에 ‘이즘(ism·대처리즘)’이 붙는 유일한 총리로 칭송받는다. 대처는 1980년대 초 표를 잃을까 봐 ‘민영화’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분위기에서 3단계에 걸쳐 48개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성공했다. 이 공로로 대처는 ‘영국을 공기업 민영화를 수출한 세계 최초의 국가로 만든 정치가’로 기록되었다. 대처가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는 박근혜 대통령이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처가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게 된 목적, 방법, 결과를 소개한다.
 
마거릿 대처의 공기업 민영화의 목적
 
영국은 1945~1951년간 집권 노동당 정부가 고용 창출과 사회간접자본 마련을 위해 전기, 통신, 도로, 항만, 조선 등 주요 기간산업과 공익산업을 국유화했다. 당시 국유화는 사회주의 열풍에 힘입어 영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등에서도 유행처럼 확산되었다. 그러나 계속된 국유화는 공공부문의 팽창과 비효율을 가져왔다. 영국정부는 적자 공기업을 세금으로 보전해야 했다. 영국의 재정적자는 증가했고, 정부는 팽창해 갔다. 이를 놓고 마거릿 대처는 1979년 총선거에서 “영국경제의 두 가지 가장 큰 문제는 국유기업의 독점과 노동조합의 독점”이라고 외쳤다. 총리가 된 대처는 공기업 민영화를 과감하게 추진했다. 대처가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객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사업과 서비스를 최대한 경쟁에 노출시켜 효율성을 촉진하게 한다.
둘째, 가능한 한 국민들의 주식 소유를 확산시킨다.
셋째, 정부가 매각하는 사업에서 최대의 가치를 얻는다.
대처의 민영화는 메이저 총리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국가전략 관련 일부 공기업을 제외하고 세계적인 규모의 공기업까지 무려 48개 주요 공기업이 매각되었다.
 
마거릿 대처의 공기업 민영화 추진 방법
 
첫째, 민영화가 단계적으로 추진되었다. 만일 민영화가 단계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혁명적’으로 추진되었더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째, 민영화 대상 공기업들은 다양한 전략을 세워 추진되었다. 예를 들면, 종업원의 반대가 심한 공기업은 종업원에게 주식을 무상이나 염가로 제공하는 전략으로, 경영층의 저항이 심한 공기업은 기존 공기업의 분리나 완전한 경쟁 도입을 일정 기간 연기해 주는 전략으로 대응했다. 특히 민영화가 개별기업에 경제력 집중과 특혜를 가져온다는 일반 국민들의 우려에 대해서는 국민주 방식으로 주식을 매각하거나, 민영화한 후 독점규제 장치나 별도의 감독기관을 만드는 등 적절한 정책을 세워 대응했다.

셋째, 민영화는 전체 구조개혁 전략의 일부로 추진되었다. 대처는 문자 그대로 민간에게 매각한다는 의미의 ‘민영화’를 유일한 전략으로 삼지 않았다. 대처는 민영화와 함께 민간위탁, 민간과 정부내 팀 간의 경쟁 입찰제도인 시장시험을 동시에 실시했다.

넷째,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추진했다. 대처는 국가전략산업 보호와 민영화 부작용 최소화에 역점을 두고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했다. 대처는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개인 또는 기관별 소유지분 제한, 무의결권주식 도입, 대상 기업의 사업 분할, 경쟁기업 육성, 정부의 황금주 보유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독점을 방지하고, 가격 인하와 서비스 향상을 도모했다.
 
마거릿 대처의 공기업 민영화의 성과
 
첫째, 48개 주요 사업과 다수 소규모 사업을 매각했는데 기업들은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영국항만은 민영화된 지 6개월 만에 이익이 150만 파운드에서 680만 파운드로 급증했고, 영국항공은 종업원 1인당 생산성이 50% 이상 올랐다.
 
둘째, 민영화는 정부독점에서 벗어나 민간부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했고, 신기술 도입과 경쟁 촉진을 통해 기업경쟁력을 높였다.

셋째, 민영화된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실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고객에게 질 좋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의 이익을 증진시켰다.

넷째, 정부소유의 임대주택을 세입자에게 매각하여 중산층을 두텁게 했고, 국영기업 주식 매각을 통해 개인 주식소유자를 확대했으며, 국민주주화를 통해 민주적 자본주의의 기초를 튼튼하게 했다. 1979년 주식소유자 수는 300만 명이었는데 1993년에는 1000만 명을 넘었다.

다섯째, 주식 매각을 통해 약 600억 파운드(950억 달러)의 재원을 마련하여 공기업의 만성적인 외부차입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재정적자를 해소할 수 있었다. 
  
여섯째, 공기업 민영화는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 실현에 기여했다.

이렇게 하여 성공을 거둔 마거릿 대처의 공기업 민영화정책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마거릿 대처의 공기업 민영화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각주
 
1) 부채가 많은 12개 공공기관은 다음과 같다: LH, 수자원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 철도시설공단, 한국전력(발전자회사 포함), 가스공사,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석탄공사, 예금보험공사, 장학재단. 
2) 이 부분은 필자가 쓴 칼럼(한국경제연구원, keri칼럼, “‘빚더미 공기업’ 개혁, 민영화가 해법이다” (2013.10.11.)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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