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동력은 외자(外資) 유치에 있다➁- 리콴유의 싱가포르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 교수
  • 업데이트 2013-11-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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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성장 동력은 외자 유치에 있다는 관점에서, 4회에 걸쳐 해외직접투자를 중심으로 중국(1), 싱가포르(2), 아일랜드(3), 한국(4)의 경제발전을 이야기한다.
싱가포르는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경쟁력이 높기로 2013년 60개국 가운데 미국, 스위스, 홍콩에 이어 4위다. 또 프레이저 인스티튜트의 경제자유 평가에서 시장경제 활성화가 잘 되기로 2011년 152개국 가운데 홍콩에 이어 2위다. 그 바탕에는 리콴유의 ‘건국 정신’이 자리한다.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했다. 1959년 선거에서 인민행동당이 집권당이 되자 리콴유는 초대 수상에 취임했다. 그런데 한 때 연방 구성원이었던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축출한 뒤 집어삼킬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국민의 10%가 영국 해군기지와 관련된 산업에 고용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싱가포르 국민소득의 23%가 나왔는데 영국은 해군기지 철수 계획을 이미 세워놓고 있었다. 이런 여건에서 35세 리콴유가 수상이 된 것이다. 그는 1959∼1990년간 집권하면서 서울보다 1.1배 큰 싱가포르를 세계 초일류 국가로 발전시켰다.
 
리콴유, 국가의 틀을 세우다⑴
 
첫째,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다.
1959년 초대 수상이 된 리콴유가 풀어야 할 과제는 싱가포르의 진로였다. 리콴유는 영국이 싱가포르를 영구 식민지로 만들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 때 말레이시아 수상 라만은 연방국가를 세울 계획이었다. 리콴유와 라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자치주가 되었다. 그러나 곧 갈등이 불거져 싱가포르는 라만과 결별했다. 이런 배경에서 리콴유가 이끄는 싱가포르는 1965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같은 해 12월 헌법을 개정해 ‘싱가포르 공화국’으로 출범했다.
 
둘째, 인재 양성에 국운을 걸다.
리콴유는 자원이 부족한 싱가포르에서 오로지 사람만이 재산임을 깨달았다. 그는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고, 자체적으로 그럴 능력이 없으면 세계 끝까지라도 가서 인재를 데려오려고 했다. 능력만 있다면 성별과 국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라 싱가포르를 만들려고 했다. 싱가포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재 양성에 국운을 건 리콴유의 인재관 덕분이었다. 싱가포르는 교육개혁을 통해 2003년부터 싱가포르를 ‘국제교육거점’으로 삼겠다며 해외 유명 교육기관을 유치해 왔다. 미국의 MIT, 존스 홉킨스, 와튼 스쿨, 독일의 뮌헨공대를 포함한 10여 개 대학이 싱가포르에서 분교를 운영하고 있다.
 
셋째, 국가의 틀을 다지다.
리콴유는 생존을 위해 국가 이익과 공동선(共同善) 실현을 국가 목표로 삼았다. 그는 싱가포르의 이데올로기로 ‘사회민주주의’를 택했다. 사회민주주의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절묘하게 섞인 것으로, 가장 큰 특징은 ‘개인보다는 국가 이익과 공동선을 유지’하려는 이념이다. 리콴유는 질적 변화만이 ‘생존을 위한 원칙’이라고 강조하면서 국가의 틀을 다졌다. 그는 부패와의 전쟁을 벌여 싱가포르를 부패 없는 국가로 만들었다. 불법노조를 법과 원칙으로 다스려 굴복시켰다. 클린&그린(Clean & Green)정책으로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로 만들었다. 국가 충성심을 높이고자 토지 국유화로 공공주택을 늘렸다. 이런 정책 탓에 리콴유는 지금도 존경받고 있다.
 
넷째, 해외자본 유치에 국운을 걸다.
리콴유가 추진한 경제정책의 특징은 완전 개방체제를 만들어 해외자본 유치에 국운을 걸어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 결과 그의 리더십은 서울의 1.1배 크기에 지나지 않는 좁은 땅에, 자원도 인재도 없던 싱가포르를 세계경제의 중심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싱가포르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은 6,000개가 넘는다. 싱가포르의 항구와 공항은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적 물류 허브다. 싱가포르는 런던, 뉴욕, 홍콩, 도쿄와 더불어 세계 5위의 외환시장이다.
 
싱가포르는 금융시장, 자본시장, 선물시장도 탄탄해 세계 금융의 중심지다. 쉘(Shell), 영국석유(BP), 에소(Esso), 칼텍스(Caltex) 등이 진출해 싱가포르는 세계 3대 정유 산업국이다. 싱가포르는 1990년대의 전자제품 생산 기지와 물류 허브에서 2000년대에는 연구개발센터의 허브로 도약하는 등 21세기형 지식기반산업의 허브로 방향 전환을 모색해 왔다. 또 싱가포르는 높은 의료 수준과 전통적인 관광을 결합하여 의료관광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이렇듯 리콴유의 리더십에 힘입어 싱가포르는 세계 초일류 국가로 발전해 왔다.
 
개혁개방 후 해외직접투자가 밀물처럼 몰려오다
 
싱가포르도 중국처럼 선진국이 아니어서 해외직접투자는 유출 아닌 유입이 중요하다. 리콴유의 개혁개방정책으로 해외직접투자는 밀물처럼 싱가포르로 유입되었다. 해외직접투자 연간 유입액과 저량(貯量; stock)을 보자.
 
<표 1> 싱가포르의 해외직접투자 유입액과 저량, 1970∼2012 (단위: 미 1억 달러)
1970
1980
1990
1995
2000
2005
2010
2012
연간 유입액
0.9
12.4
55.8
119.4
155.2
180.9
536.2
566.5
저량
-
53.5
304.7
656.4
1,105.7
2,294.6
5,935.9
6,824.0
자료: UNCTAD.
 
싱가포르의 해외직접투자 연간 유입액은 1970년 0.9억 달러였는데 그 후 빠르게 증가하여 (<표>에는 모두 나타나 있지 않은데) 연간 유입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1980년, 10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1995년, 20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2004년, 500억 달러를 넘어선 연도는 2010년이다. 2012년 566.5억 달러에 이른다.
 
싱가포르의 해외직접투자 유입액 저량은, 유입액의 지속적인 증가에 힘입어 1980년 50억 달러를 넘어선 후 1994년 500억 달러, 1999년 1,000억 달러, 2004년 2,000억 달러, 2010년 5,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12년 6,824.0억 달러를 기록했다.
 
해외직접투자 관련 싱가포르의 현주소를 보자. IMD(국제경영개발원)는 <2013년 국가경쟁력>(National Competitiveness Yearbook)에서 여러 항목을 바탕으로 60개국의 경쟁력을 평가했는데 그 가운데 한 항목이 해외직접투자다. 싱가포르 평가를 보자.
 
∙직접투자 유입: 2012년 566.5억 달러로 7위(한국 48.4억 달러로 36위)
∙직접투자 유입저량: 2011년 5,185.3억 달러로 7위(한국 1,317.1억 달러로 30위)
∙직접투자 순유입⑵: 2012년 335.7억 달러로 4위(한국 -164.1억 달러로 53위)
∙직접투자 순유입저량⑶: 2011년 1,795.3억 달러로 4위(한국 -276.3억 달러로 45위)
∙GDP 대비 유입액 비율: 2012년 20.49%로 3위(한국 0.43%로 51위)
∙GDP 대비 유입저량 비율: 2011년 195.27%로 3위(한국 11.82%로 56위)
 
싱가포르는 면적이 남한의 0.7%, 서울보다 1.1배 큰 도시국가인데도 해외직접투자 유입, 유입저량, 순유입, 순유입저량에서 세계 60개국 가운데 모두 7위 안에 든다. 특히 2000년 이후 2004년과 2008년만 유입이 감소했을 뿐 나머지 연도는 모두 증가했다.
 
해외직접투자 유입이 성장 동력이 되다⑷
 
싱가포르에 유입된 막대한 해외직접투자는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가?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류콴유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경제가 크게 바뀌었다. 이 결과 싱가포르는 중국 다음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2012년 5만 달러를 넘어섰다.
 
<표 2> 싱가포르의 성장률과 1인당 국민소득 변화, 1970∼2012 (단위: %, 미 1달러)
연도
’71-’80
’81-’85
’86-’90
’91-’95
’96-’00
’01-’05
’06-’10
’11-12’
연평균 성장률
9.1
6.9
8.7
8.6
5.8
4.8
6.6
3.3
연도
’70
’80
’90
’95
’00
’05
’10
’11
1인당 국민소득
934
4,732
6,873
25,173
23,899
27,428
43,926
49,009
자료: UN통계국.
 
싱가포르의 연평균 성장률은 1970∼2012년간 8.6%로, 9.9%의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이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국가 출범 당시 자원도 인재도 없는 초라한 실정이었지만 리콴유가 개혁개방을 통해 외국자본을 도입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특기해둘 것은 싱가포르는 법인세율이 12.5%의 아일랜드에 이어 17.0%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다는 점이다.⑸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을 보자. 1인당 국민소득은 1970년 934달러로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에 비해 높은 편이었는데 고도성장에 힘입어 1971년에 1천 달러, 1981년에 5천 달러, 1989년에 1만 달러, 1994년에 2만 달러, 2006년에 3만 달러, 2009년에 4만 달러, 2012년에 5만 달러를 넘어섰다. 1만 달러에서 5만 달러까지 23년 걸렸다.
 
싱가포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지도자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덩샤오핑이 “가난이 공산주의는 아니다”며 사회주의 중국을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로 바꾼 다음 고도성장을 이룩했듯이, 리콴유는 자원과 인재가 없는 싱가포르를 개혁개방을 통해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일본과 독일에서 외자를 끌어들인 박정희 대통령을 제외하고 외국자본 도입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려 한 대통령은 없다고 생각된다.
 
둘째, 우리도 싱가포르처럼 법인세율을 낮춰 외국자본 유치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한국은 ‘법인세 인하’만 꺼내면 부자 감세라고 야당이 기를 쓰고 반대한다. 그러나 세계는 진즉 법인세 인하 경쟁에 들어갔다. 그 바탕에는 외국자본 유치가 자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셋째, 싱가포르에 대한 주요 투자국들은 미국, 영국, 일본, 네덜란드, 홍콩 등 선진국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싱가포르가 구축해 온 지식기반산업을 대상으로 투자해 왔다. 이를 감안할 때 한국은 선진국들로 하여금 IT산업을 대상으로 한국에 투자하도록 홍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각주
1) 김성진(2007), 『리콴유 작지만 강한 싱가포르 건설을 위해』, 살림.
2) IMD는 순유입(유입-유출) 대신 순유출(유출-유입) 용어를 쓰고 있는데 필자는 순유입으로 바꿔 쓴다.
3) IMD는 순유입저량 대신 순유출저량 용어를 쓰고 있는데 필자는 순유입저량으로 바꿔 쓴다.
4) 박동운(2007), 『희망한국 이야기 더 좋은 대한민국 가꾸기』, FKI미디어.
5) KPMG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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