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폭탄의 폐허를 딛고 힘겹게 살아난 잿빛 도시, 나가사키(長崎)-"
2010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한 '에릭 파이(Eric Paye·50)'의 'NAGASAKI'는 '나가사키(長崎)를 잿빛의 도시'라고 했다. 소설은 집주인 몰래 벽장 속에 숨어산 불쌍한 일본여인의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뤘지만, 나가사키에 대한 묘사가 현실적이면서도 아프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이나사(稲佐)'산과 만, 선박 작업장과 온갖 배들.....왼쪽으로 몸을 숙이면 '우라카미(浦上)' 성당이 보이지요. 제가 세례를 받은 곳입니다. 그리고 오른 쪽으로는 북쪽의 먼 동네들이 보이구요. 기독교 나라가 투하한 폭탄에 폐허가 된 그 가톨릭 동네들을 보면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 오우라(大浦) 성당 |
공원의 길목에서 서구 양식의 한 건물과 마주쳤다. 다름 아닌 오우라(大浦) 천주당이다. 1865에 세워진 오우라(大浦) 천주당은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톨릭 건축물 중 가장 나이를 많이 먹었다. 정식 명칭은 '일본 26성순교자당(日本26聖殉敎者堂)'. 실제로 일본 26성인이 봉안된 성당으로 건물 자체도 그들의 순교지인 '니시자가(西坂)' 언덕을 바라보고 서있다. 1953년 국보로 지정됐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올라있다.
나가사키(長崎) 항구가 한눈에-
공원에 오르면 일단 가슴이 탁 트인다. 나가사키 항(港)의 절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글로버 가든(Glover Garden)'의 일본 명칭은 '구로바- 엔(園)'이다. '미나미야마테(南山手)'의 낮은 언덕에 자리한 외국인 거주 시대의 풍정(風情)이 아련히 남아있는 공원이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잿빛 도시의 그림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단지, 낭만(浪漫)이 가득할 뿐이다.
공원에는 나이테가 드러난 나무들이 서 있고, 정원 사이사이의 연못에는 사람들이 던져준 먹이에 길들여진 살찐 잉어들이 노닐고 있다.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미쓰비시(三菱)' 조선소의 거대한 도크와 장대 같은 크레인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의 B-29가 노린 곳은 바로 '미쓰비시(三菱) 조선소'였으나, 먹구름의 방해로 죄 없는 '우라카미(浦上)' 성당을 화염 속으로 몰아넣고 만 것이다.
| 미쓰비시 조선소 |
여기서 잠깐 미쓰비시(三菱) 이야기를 해본다. 미쓰비시(三菱)의 설립자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郞, 1835-1885)'는 지하낭인에서 그룹의 총수가 된 사람이다. 한 때 말단 공무원을 했는데, 그는 나가사키에서 해외 무역과 관련한 정보 수집을 담당했다. 하지만, 공금을 무리하게 쓰는 바람에 반 년 만에 파직 당했다. '이와사키 야타로(岩崎弥太郞)'씨는 일본의 역사 드라마에서 코믹하게 그려지고 있다. 헐벗고 굶주리던 낭인 시절, 살기위해서 발버둥치는 모습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모든 수모와 질시를 견디어 '미쓰비시(三菱)'라는 거대한 그룹을 일궜다. 우리의 삼성·현대 등의 창업자들도 그러한 아픔 속에서 대그룹을 일궜을 것이다.
토마스 글로버(Thomas B. Glover)에서 따온 명칭
공원 전망대에서 미쓰비시(三菱) 조선소를 배경으로 삼삼오오 기념사진 촬영을 마친 필자 일행은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필자와 황상석 박사 등 몇몇 사람은 먼저 '토마스 글로버(Thomas B. Glover, 1838-1911)'가 살던 주거지를 향했다. 때마침 나가사키 방송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구경거리가 생긴 것이다. 방송하던 여자 앵커는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 글로버 동상 앞에서- TV앵커와 황상석 박사(좌) |
날씨만큼 맑고 밝은 목소리였다. 그녀의 어눌한 우리말 인사가 더욱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글로버(Glover) 공원의 이름은 '토마스 글로버(Thomas B. Glover)'에서 따왔다.
영국의 스코틀랜드 출신인 '글로버(Glover)'는 1859년 일본의 개방과 함께 중국의 상하이(上海)에서 나가사키(長崎)로 건너온 인물이다. 그의 나이 21세 때다. 그는 '글로버 상회'를 설립하고, 막부 말의 격동의 시대에 지사(志士)들을 비밀리에 후원하기도 했다. 그의 집에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5-1868)' 등 개혁파들이 모여 밀담을 나누던 은밀한 방도 있다. 다양한 무역 거래를 하던 그는 오우라(大浦) 해안에 일본 최초로 증기기관차를 달리게 한 장본인이다. 그가 살던 주택은 일본에서 현존하는 목조 양관(洋館) 중 가장 오래됐다. 1911년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친 그의 묘지는 현재 나가사키(長崎)의 사카모토(坂本) 국제묘지(国際墓地)에 부인(Tsuru, 1851-1899)을 비롯한 자손들과 함께 잠들어 있다.
| 토마스 글로버 저택의 내부 |
거류지는 해안에서 가까운 곳으로부터 상등지(上等地)・중등지(中等地)・하등지(下等地)로 구분했고, 임대료가 비싼 상등지는 외국인의 상관이나 창고, 그 배후의 중등지는 호텔이나 은행·병원·오락시설 등을 세웠으며, 하등지는 일반 주택이나 영사관, 성당 등을 세웠던 것이다. 1899년 외국인 거류지가 폐지됐으나, 그 후에도 양관(洋館)이 남아 나가사키 거리에서는 아직도 이국(異國)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국(異國)의 정취를 느끼면서 호젓한 길을 오르면 다소 넓은 공간이 나온다. 거기에서 필자는 두 사람의 동상과 조우(遭遇)했다.
나비부인-'Madam Butterfly'
| 오페라 가수 미우라 타미키의 동상 |
이태리의 작곡가 푸치니(Giacomo Puccini, 1884-1924)와 오페라 가수 '미우라 타마키(三浦 環, 1884-1946)'이다. 두 사람 모두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한 세계적인 오페라 <나비부인-Madam Butterfly> 때문이다. '미우라 타마키'는 일본 최초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친 오페라 가수이다. 그녀는 도쿄 출신이지만, 나가사키를 세계적으로 알린 공로로 이곳 글로버 공원에 동상이 세워지게 됐다. 영국과 미국, 이태리 등에서 맹활약을 한 '미우라 타마키'는 1935년 이태리의 파레르모(Palermo)에서 <나비 부인> 출연 2000회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라 보엠(La Boheme)·토스카(Tosca)와 함께 푸치니(Giacomo Puccini)의 3대 걸작 오페라로 손꼽히는 <나비 부인>은 1900년대 일본 큐슈의 나가사키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무대가 바로 '토마스 글로버'의 저택이며, 나비 부인의 실제 인물은 토마스의 '부인(Tsuru)'이라는 설(說)도 있다.
푸치니는 '존 루더 롱(John Luther Long)'의 실화소설 <나비부인>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준비했다. 오랜 준비 끝에 1904년 2월17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La Scala)' 극장에서 첫 공연을 했다. 하지만 첫 공연은 실패하고 말았다. 각본과 무대를 대수술하여 1년 후인 1905년 5월. '브레시아'에서 재 공연했다. 두 번째 공연이 대성황을 이뤄 가능성이 엿보였고. 다음해 런던공연 때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며 세계 최고의 오페라로 발돋움했다(글로버 기념관).
"어느 갠 날, 바닷물 저편에 연기 뿜으며 흰 기선 나타나고 늠름한 내 사랑 돌아오리라. 하지만 마중은 안 나갈 테요.
나 홀로 그님 오기를 기다릴 테요. 사랑은 이 언덕에서 맞을 테요...."
| 글로버 공원에서 바라본 나가사키 항구 |
오페라 <나비 부인>의 아리아 중 '어느 갠 날'의 일부다. 필자 일행이 '미나미 야마테(南山手)'의 글로버 공원을 산책할 때도 맑은 날이었다. 하늘도, 바다도, 고요할 뿐 연기 뿜은 흰 기선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사랑을 맺으려는 연인들의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었다.
"카스텔라는 'CASTILLA'라는 16세기 스페인의 작은 왕국의 이름을 어원(語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잘 먹는 과자'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이 과자의 이름이 나라의 이름인 'CASTILLA'로 불리었습니다. 이 과자가 1573-1591년 경 나가사키에 들어와 카스텔라가 탄생했습니다."
글로버 공원을 내려오면서 어느 유명 카스텔라 가게 앞에 쓰여 있는 '카스텔라'에 대한 유래를 발견했다. 산책길에서 덤으로 얻은 배움이다. 그래서 여행은 소중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