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의 기억은 새까맣게 지워졌습니다. 단지, 제가 살던 곳이 청진의 '나남(羅南)'이라는 것과 저희 집이 나남역(羅南驛) 앞이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양친을 따라 산에 올랐을 때, '스즈란(은방울꽃)' 한 송이를 머리에 꽂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아! 또 하나 있습니다. 아카시아 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미뤘던 숙제-한국말 공부-를 예순 살(60)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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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밝은 미소로 안내를 하는 야마모토 할머니 |
"이른 봄 수풀 속에서 고개를 살짝 내미는 초롱초롱한 '스즈란(은방울꽃)'의 모습이 너무 예뻐요."
"그렇군요. 야마모토(山本) 님의 모습이 바로 은방울꽃입니다."
"그렇습니까? 거짓말이죠? 호호호"
아무리 봐도 나이에 비해 젊게 사는 청춘(靑春) 할머니다. 필자는 '은방울꽃'과 '야마모토(山本)'씨를 오버랩 하면서 '나태주' 선생의 시(詩)를 노래로 만든 <은방울꽃>을 연상했다.
<누군가 혼자서 기다리다 돌아선 자리
은방울꽃 숨어서 남몰래 지네.
밤마다, 밤마다 달빛에 머리를 감고
아침이면 햇볕에 몸을 씻고서,
누군가 혼자서 울다가 떠나간 자리
어여뻐라 산골아가씨 또 다시 왔네.>
'밤마다 달빛에 머리를 감고, 아침이면 햇빛에 몸을 씻고서...' 애틋하면서 청결(淸潔)한 이미지의 꽃이다.
신사(神社)에서는 청결이 중요해
| 신사에서 손을 씻는 방법을 설명하는 야마모토(우)씨와 따라서 하는 박주성(좌)씨 |
"신사(神社)에서는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먼저, 오른손으로 국자를 잡고 물을 떠서 왼손을 씻습니다. 이어서, 손을 바꿔 오른손을 씻습니다. 마지막으로 손에 물을 부어서 입을 행굽니다."
'야마모토(山本)'씨는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일행들에게 따라서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이것은 일본의 전통적인 관습이자 문화다'고 강조했다.
필자와 전남대 역사탐방 팀(단장: 황상석 박사)은 손을 씻고 '야마모토(山本)'씨를 따라 덴만궁(天滿宮) 뒤편으로 갔다. '야마모토'(山本)씨는 하늘을 찌르는 키 큰 나무(높이 39m, 몸통 지름 12m)를 가리키면서 질문했다.
"여러분! 이 나무(구스노기)의 수령이 얼마라고 보시나요?"
"500년이요. 600년이요. 1,000년이요...."
"모두 틀렸습니다. 1,500년입니다."
'구스노기'라고 하는 이 나무는 우리말로 녹나무다. 이 나무에는 수령(樹齡)에 걸 맞는 훈장이 하나 달려있다. 일본 문부성(文部省)이 지정한 천연기념물이다. 필자는 1,500년을 살아온 나무에게 할 말이 많았으나, 시간 관계상 사진 몇 장으로 갈음했다.
매화 떡에 얽힌 사연과 '간제온지(觀世音寺)'
| 매화떡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 |
"이 곳에 매화가 많은 관계로 매화와 관련한 상품이 많습니다. 그러나, 매화떡(梅餠)에 얽힌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眞, 845-903)' 선생이 홀로 외딴 집에서 살 때 이웃의 할머니가 떡을 만들어 매화나무 가지에 끼워서 선생께 드렸습니다. 요즈음 인기를 끌고 있는 매화떡(梅餠)의 유래입니다."
'야마모토(山本)'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곳은 매화떡(梅餠)을 파는 가게가 많다. 색깔은 하얀색. 단, 25일 하루는 녹색(요모기: 쑥의 종류)의 떡을 판다. 이유인즉, 학문의 신 '미치자네(道眞)' 선생이 25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맛으로 소문난 집은 떡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이 없다. 필자 일행 중 두 사람이 줄을 섰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는 야마모토(山本)씨를 따라 '간제온지(觀世音寺)'로 향했다. '간제온(觀世音)'은 우리 귀에 익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같은 개념이다.
| 간제온지(觀世音寺) |
'아! 백제 사람들-' 하면서 만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서로의 마음이 통했는지 절의 입구에서 전남대 역사탐방 팀과 야마모토(山本) 씨는 서로 어울려서 노래를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 국보급 범종 |
'간제온지(観世音寺)'는 국보급 불상(佛像) · 종(鐘) 등 많은 중요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규슈(九州) 제일의 사찰이다. 지금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에 재건된 강당과 금당이 남아있다.
국보급 불상(佛像)과 범종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에서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92-1333/ 일본 봉건주의 기초가 확립된 시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우리는 시간이 늦어서 절의 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만 관람했다. 대신, 야마모토(山本)씨의 한국말 설명을 들었다. 이 절에 있는 범종은 금이 가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철망을 설치했다. 그러나 섣달 그믐날에 단 한번, 종을 친다. 백팔번뇌(百八煩惱)의 의미로 108번 타종한다. '스가하라 미치자네(菅原道眞)' 선생도 그 당시 이 종소리를 들으면서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100년 후의 약속
2시간 정도의 역사탐방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야마모토(山本)'씨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증정하고 작별을 고했다.
'야마모토(山本)'씨의 마지막 인사가 의미심장(意味深長)했다.
"여러분!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100년 후에 우리 또 이 자리에서 만납시다. 약속 했습니다? 호호호."
우리네 생(生)- 앞으로의 100년을 어느 누가 기대하랴. 77세의 '야마모토(山本)'씨의 약속은 '내세(來世)의 만남'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야마모토(山本)'씨는 백제인(전남대 역사 탐방 팀)들과의 작별이 못내 아쉬운 듯 찬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가 시야(視野)에서 사라질 때 까지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국경이 따로 없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시각, 서쪽하늘의 붉은 태양이 아름다운 자태로 버스를 좇아왔다. "100년 후에 이 자리에서 또 만납시다"는 '야마모토(山本)'씨의 마지막 인사말이 석양의 그림자처럼 길게 여운(餘韻)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