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의 길을 따라서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12-04-18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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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그동안 수 백 번 일본을 왕래했지만,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은 난생 처음이었다. 오전 8시에 서울역을 떠난 KTX는 2시간 40분 만에 부산역에 필자를 내려놓았다. 대우건설 시절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과 부산을 자주 오르내렸으나, 실로 오랜만에 찾은 부산이었다. 오후 3시. 20,000톤급 크루즈선 팬스타(Panstar)가 거대한 몸체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배는 부산항을 밀어내면서 서서히 속도를 냈다. 산, 거리, 집, 자동차,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아졌다.


대한해협(
大韓
海峽)-

  조선해협에서부터 시작된 해협의 이름은 1950년 대한해협으로 명명됐다. 대한해협은 한반도와 규슈 사이의 해협을 일컫는다. 쓰시마(對馬島)와 규슈 사이를 '쓰시마 해협'이라고도 한다. 현해탄(玄海灘)이란 쓰시마 해협 중에서도 극히 일부구간이다.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파도가 검푸르고 거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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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오사카 항로도


  조선시대 통신사(通信使)들이 바로 이 뱃길을 이용했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 일본을 천하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서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국교 회복 사절단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무모한 조선침략을 비판하고 양국의 국교회복을 위한 우호적 교류를 도모했다. 이 통신사는 외교사절의 의미도 있었지만, 문화사절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울을 출발한 통신사 일행은 부산으로부터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下關), 세토(瀨戶) 내해를 경유해서 오사카(大阪)로 향했습니다."

'가토와키 마사토(門脇正人)' 선생의 <조선인 가도(街道)를 가다>에 쓰여 있는 조선통신사의 루트(route)다. 필자가 탄 배가 바로 그 옛날 선조들이 왕래했던 뱃길인 것이다. '가토와키(門脇)씨는 조선통신사의 문화적 역할을 보다 높게 평가했다.

"조선통신사는 문화적 사절로써 상사(上使), 부사(副使), 종사관(從事官) 외에 저명한 학자, 문인, 화가, 의사 등 그 수가 무려 500여 명에 달했습니다."

통신사들이 12차에 걸쳐서 일본을 오갔지만, 마지막 통신사는 쓰시마를 다녀온 것으로 끝이 났다. 1764년(영조 40년) 11차 계미사행(癸未使行)이 일본 내지까지 들어간 마지막 통신사인 셈이다. 

통신사의 왕래가 끊어진 후 1876년 2월 22일 수신사(修信使) 김기수가 고종으로부터 특명을 받고 일본으로 떠났다. 통신사와 수신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통신사가 우리의 문화를 주는 입장이라면 수신사는 반대로 일본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김기수는 일본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10년 전 조선통신사들의 기록은 유통기간이 지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과거 이미지와 일본의 현실이 너무나 달랐다는 말이다(이승원의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배가 두 시간 쯤 항해하자 쓰시마(對馬島)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쓰시마의 정확한 몸체를 볼 수 없었다.

"날씨가 맑으면 또렷이 보이는 데 오늘은 잘 안보이네요.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배가 흔들리지 않는군요. 이 지역을 지날 때는 배가 심하게 흔들립니다. 파도가 거칠어서 현해탄(玄海灘)이라고 합니다."

한 때 쓰시마(對馬島) 전문 관광 가이드를 하다가 팬스타(Panstar) 크루즈선(船)의 VIP실 매니저를 맡고 있는 김효상(41)씨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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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선 팬스타(Panstar)
  배는 흔들림 없이 현해탄을 유유히 헤쳐 나갔다. 부산을 떠나 3시간 30분이 될 즈음 방송이 나왔다. 6시 30분부터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갑자기 배(腹)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제대로 밥을 먹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바쁜 일정이었다.

  레스토랑은 분위기가 좋았다. 첼로 음률이 레스토랑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우크라이나 출신 첼리스트 카트리나(27) 양이 연주하는 노래는 어려운 클래식이 아니라 <광화문 연가>, <비처럼 음악처럼>,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등 우리의 귀에 익은 대중적인 곡들이었다.
작은 의자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비행기 여행과는 달리 배 여행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자주 이용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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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에서의 첼로 연주자 카트리나 양



간몬교(關門橋)

부산을 떠난 지 6시간 30분-

"저희 배는 곧 간몬교(關門橋)를 통과합니다."

  배에서 알리는 두 번째 안내 방송이었다. 길이 1,068m, 폭 26m인 이 다리는 1973년 개통됐다. 시모노세키(下關)와 규슈의 모지(門司)를 연결하는 다리다.
시모노세키(下關)는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나 유명하다. 교통과 상업 중심지이기도 한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왕래하는 '부관(釜關)연락선'이 1905년에 뱃길을 열었다. 이 부관(釜關) 연락선을 일본인들은 '관부(關釜)연락선'이라고 한다.
필자는 화려한 한강 다리의 조명을 연상하며 카메라를 들고 갑판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아무리 카메라의 앵글을 맞춰도 머리 위 다리엔 반딧불 같은 작은 불빛만 보일뿐이었다.

  망망대해- 끝없는 항해였다. 시간으로 보면 태국의 방콕 쯤 도착했을 시간이었으나 지루함이 없었다. 마음껏 바다 바람을 쏘이면서 파도와 대화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생을 나누며 선상(船上)에서 생맥주 한 잔 하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배는 어둠 속 항해를 쉼 없이 이어갔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갑판 위로 올라갔다. 바다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크루즈선의 안내판에는 일출 시간이 6시 29분으로 쓰여 있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세수를 하고 갑판 위로 나갔다. 하지만 잿빛 구름에 뒤덮인 태양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눈을 비비며 갑판 위에 올라온 한국사람 · 일본 사람 모두 실망한 모습들이었다. 배는 구름사이로 간간히 흘러나온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긴 다리를 향해 전진했다.


아카시(明石) 해협 대교를 지나
오사카(大阪)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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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와 아와지를 연결하는 아카시 대교


  아카시(明石) 대교는 고베(神戶)시와 아와지(淡路) 섬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 긴 다리라고 했다. 필자가 탄 배는 아카시(明石) 대교를 통과하는 순간 뱃고동을 길게 울리며 고요한 바다의 정적을 깨트렸다.

"부-웅, 부-웅."

배는 마치 개선장군과 같은 늠름한 모습으로 다리 밑을 통과 했다. 다리의 모습이 아스라이 사라질 즈음 배는 오전 10시 10분 오사카(大阪) 항에 도착했다. - 부산항을 출발한지 무려 18시간이라는 긴 항해였다.

오사카(大阪) 항은 역시 거대했다. 수많은 화물선들이 꼬리를 물고 들락거렸고, 부두에는 컨테이너 상자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배에서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우크라이나 출신의 첼리스트 '카르리나(27)' 양이 마지막 연주를 했다. 승객들 모두 첼리스트를 향해 귀를 쫑긋했다. 음악이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는구나.
입국 수속을 받는 동안 친절한 세관 직원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참으로 행복한 여행이었다. 여객 터미널을 빠져나오자 하늘도 맑았고, 파도도 잔잔했다. 바다위에서 갈매기들이 행복한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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