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한국의 시인 이승신(李承信)씨가 3·11 도호쿠(東北) 대지진으로 고통 받는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집 <그대의 마음 있어 꽃은 피고>를 일본어로 출간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다친 그대의 가슴....다시 시작이다/ 살아남은 우리가/ 위대함을 만든다."
'지진으로부터의 고통을 털어버리고 힘찬 미래를 향해 달리자'는 희망의 시(詩) 192편이 담겨 있다(중앙 SUNDAY). 다음날인 21일 일본 나고야에서 도호쿠 지진의 조기부흥을 염원하는 그림과 서예전시회가 열렸다.
"천년의 기억, 생명의 소리-"
| 작가가 작품 과정을 시현하는 모습 |
작품 속에 빠져들면 고통을 털어내고, 희망을 부여잡을 수 있을까? 아무튼, 그림의 세계는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
그림을 크게 동양화와 서양화로 구분하는데, 동양화는 한자 문화권의 나라인 중국 · 한국 · 일본에서 그려진 그림을 일컫는다.
"지(紙), 필(筆), 묵(墨)을 기본 매개로 하는 동양의 회화는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어 한반도로 들어오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각기 독자적인 내면을 담고 형식을 가꾸는 동안 여러 부분에서 차이를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미술 평론가 오광수 선생의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쓰여 있는 동양화 이야기다. 그렇다. '지(紙), 필(筆), 묵(墨)'을 서양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지(紙), 필(筆), 묵(墨)'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소재 즉, 글이 담겨진 한지(韓紙)를 재료로 현대 미술을 구현한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일본인들의 감상을 옮겨본다.
자기(磁気)에 투영된 영기(霊気)를 느껴
<현대 미술이니까 기괴한 오브제의 색채가 맞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무너졌다. 먼저 의표를 찔린 것은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나무 조각 같은 것이 무수히 캔버스에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한 걸음 작품에 다가가면 종이를 접어서 올린 것 같기도 하고,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뭔가 몸이 희미한 자기(磁気)에 투영된 영기(霊気)를 느꼈다. 캠퍼스 위에 수 천(千) 아니, 수 만(萬) 이라는 종잇조각의 칩이 행렬을 만들어 서로 소용돌이를 치며 마주보고 있었다. 작품의 이름이 <天心>, <獨白> 또 어떤 것들은 <無心>, <念願>으로 표기됐었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그런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지....나는 시간도 있어서 사카에(栄)를 피해 지하철 후시미(伏見) 역으로 향했다. 어느새 봄기운이 서린 시라카와(白川) 공원을 빠져 나가면서 작품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반추했다.>
| 작품 앞에서 활짝 웃는 사토 씨 |
<다음 날 친구가 주니치(中日) 신문의 "생명의 소리에 느껴- 한국 아티스트 작품전" 소개 기사 스크랩을 보내왔다. 기자는 "종이에 나무의 힘(力)이 머문다. 버려진 종이에 문자의 힘이 서린다. 화면(画面)에서 스며 나오는 생명감"이라고 썼다. 문화란(文化欄)을 담당하는 젊은 기자가 쓴 것인가? 정확한 코멘트에 감탄을 했다.>
<종이에 나무의 힘이 머문다면 나무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좋을 듯싶다. 자연 속의 많은 것들 중 '나무는 신성(神聖)이 머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무를 신목으로 숭배하기도 한다. 그것을 사용하여 불상도 조각, 신앙을 심화하여 오늘에 이른다.>
'친(親)한국'의 방향으로 선회
<아!! 깜짝 놀랐네요. 서정민 씨 개인전, 「천년의 기억, 생명의 소리」
주니치(中日) 신문의 소개 기사에는, 일본 종이가 아니고 「한지(韓紙)를 사용한 아트 기예의 일종」이라고 썼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지의 종이접기나 자른 종이그림 등을 생각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기사는 「서도(書道)로 사용한 종이를 단단하게 둥글게 한 것을 평면에 정성스럽게 붙이고, 음영을 표현한다」라고 기술했습니다만, 이미지가 잘 연상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었습니다. 작품은 검은 것도 있었으나, 선명한 녹색이나 밝은 하늘의 색이 붙은 것도 있었습니다. 점화묘법의 입체 버전 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아찔해진 것 같은 노동력의 집적이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는 지진 재해에 있었던 도호쿠(東北) 아이들의 서예 작품이 우정전시 되고 있었고, 피해지역의 「조기부흥을 비는 이웃나라에서의 메시지」라고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이 전시회는 지금까지 어딘지 한국에 거리를 두고 있었던 나를 '친(親)한국'의 방향으로 한 걸음 가까이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토(佐藤)씨, 소개 고맙습니다.>
<저는 그냥 '조용히-' 라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후지산(富士山)의 복류수(伏流水)가 펑펑 솟아오르는 것, 아니 더 격렬한 이미지를 받았습니다. 이 부분은 나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후지산(富士山)의 복류수(伏流水)가 솟아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작품을 보다가 거기에 귀를 기울이면 '천년의 기억 생명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복류수(伏流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후지산의 강수량은 일일 약 600만 톤으로 계산된다고 한다. 이 중 25%가 증발되고 나머지 450만 톤이 대부분 지하로 스며든다는 것이다. 복류수는 바로 땅속에 스며든 지하수를 지칭하는데, 이 물은 지하에서 거대한 수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 물이 분출된다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감상을 한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 전시장의 모습-중앙이 야노 씨 |
한지 작품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하루에 두 세 번 씩 작품을 감상한 사람도 있었고, 부인과 친구들을 대동하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한지 공예라고 해서 종이접기 정도로 생각했다가, 넘치는 파워와 에너지에 감동했습니다."
나고야에서 다소 떨어진 '도요하시(豊橋)에서 신칸센을 타고 30분이나 달려왔다'는 '미야모토 미요코(宮本 美代子)'씨의 평가다.
이러한 반응과는 달리 작금의 일본 상황으로 작품이 팔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서정민(徐正旻) 작가는 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특히, 공동 전시회를 개최한 '야노 기요미(矢野きよ実)'씨와 스텝들, 나고야 중부 전략연구회와 NPO관계자 여러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협조해주고 격려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다. 모든 일이 처음부터 잘되는 것은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 보면 큰 뜻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나고야의 오랜 친구들- '
도시락까지 싸들고 전시장을 방문한 '간다 소헤이(神田草平)'씨 부부, 딸기·과자 등 먹을거리를 준비한 '사토 츠네오(佐藤永勇)'씨 부부, 마지막 정리까지 땀을 흘린 '시미즈 시게오(淸水重雄)'씨, '오오모리 미키히코(大森幹彦)'씨. '후나하시 미치아키(舟橋三千秋)'씨. '아카키 신이치로(赤木紳一郞)'씨, '데라니시 타카오(寺西孝夫)'씨, 금번의 전시회를 기획한 '이토 슌이치(伊藤俊一)씨, 그리고 전시회의 PR을 위해 애써준 '구메 소조(久米正三)'씨 등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