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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민(좌) 작가와 야노 기요미(우)씨 |
나고야(名古屋) 중심부에 있는 국제 디자인 센터에서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일본의 유명 탤런트 겸 모델이며. 뉴스 진행자인 서예가 '야노 키요미(矢野きよ実, 50)' 씨와 한국의 중견작가 서정민(50) 씨의 작품 전시회가 개최된 것이다.
이번의 작품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은 두 사람 공히 '종이를 기본으로 한다'는 것이며, 도호쿠(東北)에서 지진과 쓰나미(津波)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자선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3월 21일 오후 6시-
봄기운이 감돌기는 했지만 아직은 봄이 멀리 있는 듯 바람결이 제법 차가웠다. 하지만, 전시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NPO(일본의 자선단체) 법인 외국인 교류정보센터가 주최한 전시회는 '도호쿠 대지진 1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조기부흥을 위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했다.
한지(韓紙) 작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도가 높았고, 도호쿠(東北) 대지진 피해로부터의 조기 부흥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시라는 점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오프닝 행사는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NPO의 이사(理事)인 이토 순이치(伊藤俊一, 59) 씨의 인사말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의 화지(和紙)와 한국의 한지(韓紙)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지난 해 서울에서 한지 작가 서정민 씨의 작품을 보고, 서예가 겸 유명 탤런트인 야노(矢野) 씨와의 공동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양국 교류 확대와 문화의 발전, 그리고 대지진의 아픔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이어서 서정민 작가의 인사말과 '야노 키요미(矢野きよ実)' 씨의 인사말이 이어졌고, 그녀의 남편이자 가수인 '나카무라 고이치(中村耕一)' 씨의 기타 연주와 노래가 전시장 분위기를 고조 시켰다.
"해가 떴으나 오늘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거늘/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누나/ 거기서 부터 너를 보살피리라."
천년의 기억
"한지는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3월. 일본 도호쿠(東北部) 지진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아픈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이 번 전시회의 주제를 ‘천년의 기억, 생명의 소리’로 정했습니다."
한지 조형작가 서정민(50) 씨의 말이다.
한국의 정서가 배어 있는 한지를 전통적인 기법에서 탈피하여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작품을 빚어내는 작가 서정민은 지금까지 11회의 개인전과 200회 이상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특히, 세계 5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터키의 '이스탄불 아트페어'에 2009년부터 연속 참여했을 뿐 만 아니라 독일, 영국, 스위스 등 국제무대에서 활발하게 전시활동을 펼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한지를 이용한 작업을 해오고 있는 서정민의 작품은 붓끝이 아닌 손끝으로 완성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한지를 여러 겹으로 붙여 단단한 묶음으로 압축한 후 잘게 쪼갠 조각들을 화면에 재구성하여 독창적인 색감과 질감을 창조시키는 기법이 독특하다. 단순히 보면 나무 조각들을 붙인 듯 한 느낌이 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겹겹이 말린 한지와 그 위에 스며든 먹의 깊고 미묘한 색감에서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치밀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 작품 당 보통 5000개에서 1만개 이상의 한지조각들로 완성되는 작업과정은 작품에 대한 작가의 사색적이고 집요한 작가정신을 보여주며, 순수하고 창의적인 노동의 경건함마저 들게 한다.
생명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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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쓴 작품 앞에서 미소 짓는 야노 키요미 씨 |
"천국행 열차에는 언젠가 모두 타게 될 것인즉/ 너희를 태우고 발차(發車) 했도다/ 나는 너희에게 전송도 못했구나/ 어제 내린 비(雨)는 너희의 눈물/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었도다/ 어제의 번개는 너희의 절규....."
야노 키요미(矢野きよ実) 씨가 지은 시(詩)이다. 그녀는 자신의 시(詩)를 직접 글로 옮겼다. 작품 아래에는 진(震), 적(跡), 우(友)라는 글도 걸었다. '지진 후(跡)의 친구'라는 의미로 썼다고 했다.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들을 돕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친구가 된 것입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항상 열정이 넘치는 목소리는 마주하는 사람에게도 활기를 불어 넣는다.
전시장 입구의 또 다른 공간에는 지난 해 3월 11일 발생한 도호쿠(東北) 대지진으로 피해가 컸던 이와테(岩手)현 리쿠젠다카타(陸前高田) 시(市)의 어린아이들이 쓴 서예 작품과 사진들이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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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행사 시 키타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자 야노 씨의 남편인 나카무라 고이치 씨 |
"그 때를 잊을 수 없어요"
"아버지"
"쓰나미(津波)"
"3월 11일"
"생명....."
서투른 글씨이지만, 한 마디 한마디가 호소력이 있었다. 야노(矢野) 씨는 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침은 물론,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항상 너희 옆에 있을터/ 언젠가 천국행 열차를 탈 것인즉"
읽으면 읽을수록 야노(矢野) 씨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귀다. 살아있다는 것은 삶의 기본이지만, 뜻하지 못한 자연 재해로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의 삶은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서울에서 어린 아이들의 작품 전시회를 하고 싶습니다. 현재 약 800점의 서예 작품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등불이 되어줄 구원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필자에게 호소하는 '야노(矢野)' 씨의 말은 그녀의 표현대로 '천둥 · 번개와 같은 절규(絶叫)'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는 말이리라.
한지(韓紙) 작품에 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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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 작품에 대한 뜨거운 열기... |
일본인들의 한지 작품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오전, 오후 계속해서 감상하러 온 사람도 있었다.
"감동했습니다. 저절로 숙연해 집니다. 종이의 세계가 이토록 심오하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서 느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는 '가토 하루야쓰(加藤晴康, 66)' 씨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주와 윤회, 그리고 자연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서양 문화에 빠져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동양의 독특한 오리엔탈리즘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일본, 한국, 중국이 중심이 되는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유화를 그리다가 10년 전부터 한지 조형작가로 변신한 서정민 작가는 유럽 시장에서 크게 어필된 이유는 '우리다운 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예술의 세계는 대화가 필요 없다. 작품에서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서(徐) 작가의 작품도, 야노(矢野) 씨의 작품도,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들의 설익은 작품도 모두 '생명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천년의 기억을 간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