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실(滿室)입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1개월 전에 예약이 끝났습니다. 대기자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얼마 전 후쿠오카(福岡)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호텔 마다 전화를 돌렸으나, 똑 같은 답변이었다. 필자는 1988년부터 후쿠오카(福岡)를 수없이 왕래했기에 시내의 호텔은 거의 파악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늑장을 부리다가 다급해졌다. 평소 자주 다니던 호텔의 지배인을 찾아 예약을 시도했으나 통화료만 올렸을 뿐 모두 실패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일. '일본 경기도 어려운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고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알아봤다.
아라시(嵐)의 공연으로 호텔 동나
"아라시(嵐) 때문입니다."
한 호텔 지배인의 설명을 듣고 이해를 했지만, 상상 이상의 상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어의 아라시(嵐)는 '거센 바람'이나 '폭풍'을 의미한다. '폭풍'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818-1848)'의 소설 <폭풍의 언덕>이 떠올려 진다.
"북극 바다는 크나큰 소용돌이를 치며 아득한 북녘 끝 벌거숭이 어두운 섬들을 돌아 사납게 거품을 일으키고, 대서양의 파도는 폭풍우 쏟아지는 헤부리디즈 섬들 사이로 뛰어든다."
<폭풍의 언덕>이 연상되는 아라시(嵐)는 일본의 유명한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다. 그룹의 탄생도 아라시(嵐)라는 이름과 걸맞게 거친 파도의 바다에서 탄생했다. 그들은 1995년 9월 15일 하와이의 호놀룰루 앞바다에 떠있던 크루즈 선(船)에서 데뷔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아라시(嵐)'의 '아'가 일본어 50음의 첫 자인 'ア(아)'이고, 영어 알파벳의 첫 자가 'A'라는 것(선두)과, '음악 세계에서 폭풍을 일으킨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 그룹은 그들의 포부대로 'K-POP' 못지않게 곳곳에서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공연으로 후쿠오카 시내의 모든 호텔이 동이 날 정도로 만실(滿室)이었다는 점도 '폭풍'임에 틀림없다.
선(膳)과 숙박의 여관, 니시데이(西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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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관의 외관 |
결국 후쿠오카의 마당발인 나카무라 대학의 사무국장 '아타나베 아키라(渡邊章 · 65)'씨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타나베(渡邊)'씨는 필자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이다.
"아- 한 여관에 방이 두 개 남아있다고 합니다. 후쿠오카 시내에 있는 여관입니다. 프랑스 요리와 와인이 가능한 여관입니다."
여관이라면 흔히 온천장을 생각하는데 후쿠오카 시내에 여관이 있다는 사실도 의외였고, 방이 남아 있다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필자는 바로 '그 여관으로 예약을 하자'고 했다. 일단 머무를 숙소를 확보했으니 실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고야(名古屋)로부터 신칸센을 타고 하카타(博多)역에 도착해서 업무를 마치고 여관으로 향했다.
니시데이(西停) 여관은 택시 운전사도 길을 찾기 어려워 했다. 택시는 골목길을 요리조리 돌더니 인적이 드믄 골목길에 내려놓았다. 여관은 빌딩 사이에 다소곳이 들어서 있는 작고 아담한 일본의 전통 집이었다.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출퇴근 길 붐비는 지하철에서 움츠리고 서 있는 가냘픈 여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정원이 먼저 일본 냄새를 물씬 풍겼다. 여자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체크인을 하고 다락방 올라가듯,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자 각기 이름이 다른 방들이 있었다. 생각보다는 넓은 방이었고, 다다미 방 특유의 냄새와 장식품 하나하나가 오랜 역사를 지닌 온천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 현관 입구의 작은 정원 |
"이 집은 쇼와(昭和) 초기에 지어졌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전화(戰火)를 면해 쇼와 35년(1960년)에 선대(先代)가 이 집을 구입해 여관업을 했던 것입니다."
집 주인 '니시오 세이코(西尾 成子 · 64)'씨의 말이다. 그녀는 모친이 운영하던 여관을 물려받아 손님들에게 호텔에서 느낄 수 없는 아늑한 일본의 숙박 문화를 제공하고 있으며, 품격 있는 프랑스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저의 주방장이 프랑스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왔습니다. 맛도 있지만, 모든 코스 요리를 일본인에게 맞게 젓가락으로 드실 수 있도록 개선함으로써 포크나 나이프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아주 인기가 있습니다."
이 또한 발상의 전환이다. 서양요리를 서툴게 먹는 것보다 자신들의 습관에 맞추어 즐기는 방법도 좋을 성 싶었다.
방이 모두 5개에 불과한 이 여관은 프랑스, 독일 등 외국인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했다. 인터넷 시대인지라 아무리 빌딩 사이에 숨어있는 작은 여관이라고 해도 지구촌 반대편 사람들이 속속들이 찾아내는 것이다. 결국, 이 여관은 아래층은 모두 식당으로 쓰고, 2층은 본격적인 숙박시설인 셈이다. 그리고, 이 여관은 나름대로 엄격한 룰이 있다고 했다.
숙박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밤 12시에는 현관문을 닫습니다. 필히 자정 이전에 여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목욕탕이 작은 관계로 예약제를 시행합니다. 아침 식사 시간도 예약을 해야 하고요."
여관의 주인 니시오 세이코 씨
우리나라의 경우는 여관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호텔중심으로 급격히 변화됐으나, 일본은 서양식 호텔과 일본 고유의 전통적 여관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특히, 여관은 식사를 방으로 배달해 주는 것은 물론, 목욕탕 안내와 이불을 펴는 일 등을 종업원이 수시로 챙긴다.
밖에서 일을 마치고 여관방에 들어서면 푹신푹신한 이불과 요가 단정하게 깔려있다. 외부의 날씨가 춥더라도 이불 속의 따스함과 아늑함은 호텔과 다른 맛이 있다. 일본에 호텔 문화가 유입된 지 15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전통적인 여관문화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일본답다.
"서양식 호텔은 1863년 요코하마에 영국인이 세운 호텔로 시작해서 1867년 메이지유신 전년에 도쿄의 쓰키지(築地)에도 객실이 100개인 3층 규모의 호텔이 등장했다. 이어서 1878년 하코네에 호텔이 생기고 1890년에 도쿄에 제국호텔이 생겼다..... 계약에 의한 기능적인 서양식 호텔과 가족적 서비스의 전통을 잇는 일본 여관이 일본의 숙박시설로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일본문명의 77가지 열쇠)
필자가 머물렀던 니시데이(西停) 주인도 '이 여관을 장녀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하면서 일본의 전통적 숙박 문화와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숙박시설은 무엇보다도 서비스가 중요합니다. 저희 여관은 손님들에게 일본 전통의 문화는 물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숙박인들의 블로그와 입소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알려져 스스로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봄은 꽃, 여름은 두견새
가을은 달, 겨울눈(雪) 맑고 깨끗해 시원 하나니"
| 작별 인사를 하는 종업원 |
'니시오(西尾)'씨의 모친이 썼다는 '도우겐젠지(道元禪師)'의 노래(歌)를 뒤로하고 여관을 나섰다. 여관 종업원이 문 앞에서 필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