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남쪽 지방인 후쿠오카(福岡)는 겨울이라고 해도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이 그다지 매섭지 않았다. 기온이 영상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후쿠오카에 가면 빼놓지 않고 만나는 사람이 두 명 있다. '오츠보 시게다카(大坪重隆 · 71)'씨와 '와타나베 아키라(渡邊章 · 65)'씨다. 그들과는 업무적이 아니라도 필히 만나서 그동안 있었던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필자가 일을 마칠 무렵 오츠보(大坪)씨가 차를 직접 몰고 나타났다. 70세가 넘었지만 씩씩한 목소리와 경쾌한 발걸음은 아직도 청년이다.
"이 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소바(蕎麦) 집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후쿠오카 시내가 아닌 교외를 향해서 달렸다. 도로 표지판에 나타난 방향 표시가 다름 아닌 미쓰세(三瀬) 고개(峠)였다. 언젠가 필자가 오츠보(大坪)씨에게 미쓰세(三瀬) 고개에 대해서 문의한 것을 잊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미쓰세 고개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유명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吉田 修一)'의 소설 <악인>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 바로 미쓰세 고개이다.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연재됐던 이 소설은 2007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2010년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후쿠오카(福岡)와 사가(佐賀)의 경계
| 미쓰세 터널 입구 |
고개는 산으로 가로막힌 두 지역을 넘어가는 길목으로, 양(兩)지역을 이어주는 중요한 길이다. 우리의 지명중에서 고개를 일컫는 말로 재, 령(嶺), 현(峴), 치(峙) 등이 있다. 이와 같은 고개는 먼 옛날부터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위해서 인위적 또는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졌다.
"263번 도로는 후쿠오카(福岡와 사가(佐賀)를 잇는 총길이 48km의 국도로 세후리 산지의 미쓰세 고개를 타넘으며 남북으로 뻗어있다."
"이곳 미쓰세 고개는 예로부터 괴이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에도(江戶)시대 초기 산적 소굴이 있었다는 이야기와 사가(佐賀)의 기타가타초(北方町)에서 일곱 명의 여자를 살해한 범인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는 쇼와(昭和) 시대의 괴사건도 전해지고 있다."
소설 <악인>의 플로로그에서 묘사된 미쓰세(三瀬) 고개에 대한 설명이다. 생각만 해도 으스스하고 무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쓰세(三瀬) 고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범인은 체포되지 않고 미궁으로 끝나버렸죠."
오츠보(大坪)씨의 설명이었다. 그만큼 외지고 험한 고개(峠)였으리라는 짐작이 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건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고개를 넘지 않고 터널을 뚫거나 산을 깎아서 보다 빨리 이동하는 고속도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고갯길에 얽힌 사연들도 문명의 이기에 밀려 부리나케 사라지고 있다.
아무튼, 미쓰세(三瀬) 고개는 해발 581m로서 후쿠오카현(福岡県) 후쿠오카시(福岡市) 사와라구(早良区)와 사가현(佐賀県) 사가시(佐賀市)를 최단 거리로 잇는 주요 간선 도로이다. 도로가 좁은 2차선인데다가 급커브가 많아서 운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겨울철 적설로 노면 동결에 의한 교통 규제 및 급커브를 해소하기 위해 1986년에 터널이 건설됐으며, 2008년에는 규슈 최대 규모인 직경 약 200m의 루프(loop) 도로가 개통됐다.
순간에 사가시(佐賀市)로-
그래도 필자는 구(舊)도로가 궁금했다. 그러나, 구(舊)도로는 통행을 차단하고 있었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빠른 길이 뚫렸는데 일부러 위험한 도로를 찾는 사람이 없어서다. 차는 미쓰세(三瀬)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터널 중간에서 후쿠오카(福岡)와 사가(佐賀)의 경계선을 훌쩍 넘어 사가(佐賀)에 들어섰다.
"현(県)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雪)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의 소설 설국(雪國)의 첫 머리가 연상되었으나, 주변은 눈 대신 수풀이 우거진 시골 풍경이었다. 차는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달려 한 소바(蕎麦) 집에 도착했다.
"미쓰세 소바"
그런데, 식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때마침 주말인지라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최소 30-40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필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바 한 그릇을 먹기 위해 30분을 기다릴 시간적 ・상황적 여유가 없어서다. 다시 차를 돌려 미쓰세 터널 쪽 언덕길을 올랐다. 필자는 여행 중에 여러 가지 도전을 많이 한다. 새로운 구경거리나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저 쪽으로 갑시다."
필자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오츠보(大坪)씨는 차의 핸들을 도로변 소로(小路)로 꺾었다. 외진 숲 속에 소바(蕎麦) 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후우라보우(風羅坊)"
| 숲 속의 후우라보우 |
'어딘가에서 온 사람', '뜨내기-' 후우라이보우(風来坊)에서 유래된 듯 하는 이름이 코믹했다. 소바 집을 찾아 헤매는 '뜨내기(風来坊)'인 필자는 후우라보우(風羅坊)에 정착(?)하게 됐다.
후우라보우(風羅坊)의 처마에는 옥수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집의 덩치에 비해 출입구가 작고 낮았다. 머리를 잔뜩 숙이고 들어서자 깜짝 놀랄 정도로 식당 내부가 넓고 높았다. 거기에 잔잔히 흐르는 음악-. 바흐(Bach)의 무반주 첼로 곡(曲)이 실내 분위기를 리드하고 있었다.
"요요 마 (友友 馬)의 연주입니다. 중국계 미국인 세계적 첼리스트입니다."
필자가 '누구의 연주이냐?'는 물음에 지배인 '후쿠이 가츠도부(福井一翔 ・58)씨'가 대답했다. 분위기 상으로 예사롭지 않은 소바(蕎麦)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음식 주문으로 돌입했고, 쌀쌀한 날씨 탓에 '따뜻한 사케(酒) 한 잔-'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운전을 해야 하는 오츠보 씨는 못내 아쉬워하며 '무알콜 맥주'로 건배를 했고, 필자는 사케(酒)와 음악, 산골 소바집의 정취(情趣)에 젖어 시간가는 것을 잊었다.
| 손님들을 안내하는 후쿠이(福井)씨 |
"검은 소바(蕎麦)로부터 자가제분(自家製粉)을 고집한다."
밀가루를 섞지 않는 100% 소바(十割蕎麦)를 제공하는 장인 정신의 기본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식당 옆 공터와 창고에는 소바(메밀) 자루와 커다란 제분기가 버티고 있었고, 식당 밖 공터에는 소바 껍질 더미가 작은 '고개'를 이루고 있었다.우연히 발길을 내딛은 시골의 식당이지만, 한 그릇의 소바(蕎麦)에 담긴 정성이 새삼 감동으로 다가온 점심시간 이었다.

100% 소바(十割 蕎麦)
미쓰세(三瀬) 고개를 넘지 못하고 다시 터널로 들어서자 시야가 가려질 정도로 안개가 자욱했다. 마치 혼미한 세상을 암시하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