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津波)에서 살아난 사케(酒)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11-09-30  17:20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비상사태를 맞아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대피하고 가족을 위해 생필품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업자들이 비양심적인 가격으로 이득을 보는 상황을 정부가 팔짱을 끼고 바라 볼 수만은 없다."

마이클 샌덜(Michael J. Sandel)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들어있는<옳은 일하기> 중 한 대목이다. 남의 고통을 이용해 한 탕 해먹으려는 비양심적인 악덕 상인(商人)에 대한 꾸짖음이다. 이는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탐욕의 표본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이웃을 이용해 돈을 버려는 사람들이 활개 치는 사회는 좋은 공동체가 못된다. 좋은 사회라면 탐욕은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하는 악덕이다."

찜통더위 나고야(名古屋)

지난 3월 11일 일본 도호쿠(東北) 지진과 연이은 태풍 등의 이유로 참으로 오랜만에 일본 나고야에 갔었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6개월만의 일이다. 필자의 나고야 방문에 대해 많은 일본 친구들이 트위터를 통해 정보를 공유했고, 그 중에서 12명 정도가 참여한다는 소식이 왔다. 이미 또 다른 태풍이 일본과 한반도를 향해 접근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던 터라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전처럼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뜨지 않는 상황이 아니어서 다행스럽게도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비행기는 순조로운 착륙을 했다.
기사본문 이미지
절 입구의 카페 구츠로기(寬)
필자는 중부국제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시내를 향해 달렸다. 서울의 빗속과는 달리 뜨거운 태양이 강열한 열기를 뿜고 있었고, 대지는 불이 타는 듯 했다. 기차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얼굴은 물론, 등줄기에서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저녁 약속은 세이죠우지(淸淨寺) 입구에 있는 카페 '구츠로기(寬)'라고 했다. 필자 부부는 호텔로 마중 나온 이토 슌이치(伊藤俊一)씨와 함께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수는 나고야의 이날 기온이 섭씨 38도라고 했다. 말 그대로 찜통더위였다.

일본의 절들은 대체로 시내 한 복판에 있다. 필자 일행은 절 입구에 있는 고즈넉한 카페 앞에서 내렸다.

진재부흥기념(震災復興祈念)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 모임에서 가장 연장자인 '간다 소헤이(神田草平, 69)'씨, '시미즈 시게오(清水重雄, 68)'씨 부부. '사토 츠네오(佐藤永勇, 66)'씨 부부, '오오모리 미키히코(大森幹彦, 63)'씨, '후나하시 미치아키(舟橋三千秋, 62)'씨, '이이다 히데아키(飯田英明, 63)'씨, 얼마 전 서울에 왔던 '데라니시 다카오(寺西孝夫, 54)'씨 등 반가운 사람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뭉쳤던 것이다.

이 날의 모임도 언제나처럼 생맥주 한 잔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건배- 장 선생 부부의 나고야 방문을 환영합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우렁찬 박수를 마치자 뜨거운 기운이 급속도로 카페를 달구었다. 맥주에 이어서 등장한 술이 청주(淸酒) '오토코 야마(男山)'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교적 쉽게 마실 수 있는 사케(酒)다. 그런데 이 술의 라벨(label)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진재부흥기념(震災復興祈念)'-

기사본문 이미지
진재부흥기념(震災復興祈念)

'지진재해를 극복하고 부흥하는 것을 염원한다'는 것이다. 나고야 지역에는 지난 번 지진에 피해가 없었지만,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생산되는 술을 마셔서 그 지역의 경제 발전에 다소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참으로 갸륵한 마음씨다. '혹시라도 방사능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의 걱정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라벨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는 또 다른 문구였다.
 
"쓰나미(津波)로부터 회수한 술입니다."

우리가 일본 도호쿠 지진 때 방송된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밀려오는 쓰나미(津波)의 속도에 얼마나 놀랬던가. 비록 생명체는 아니지만 쓰나미(津波)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조(?)된 술병이 이토록 사람들의 입으로 다시 들어간다는 사실이 신비스럽기만 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남은 술입니다. 인생의 이치도 이와 같지요."

간다(神田) 씨의 한 마디에 가슴이 뭉클했다.

마이클 샌덜(Michael J. Sandel) 교수가 주장하는 정의((Justice)- 그것은 바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정성이 모여 어려운 사람들을 크게 돕는 것이리라. 그것이 바로 남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정의로운 공동체가 아닐까?

분위기가 무르익어

기사본문 이미지
뜨거운건배
시간이 흐를수록 밤의 열기는 진하게 무르익어갔다. 10월 초의 동남아 여행에 필자 부부도 참여하라고 했다. 나고야 중부전략연구회는 년 1회 이문화(異文化) 체험을 위해 해외 여행을 간다. 올해의 여행은 인도네시아, 싱가폴, 말레이시아다. 개인별 선택에 의해서 부부동반도 가능하다. 하지만, 필자는 일이 바빠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아무튼, 술잔은 계속해서 채워졌고, 중부전략연구회 멤버인 후쿠오카의 오츠보(大坪重隆, 70)씨에게 전화가 연결되어 참석자 모두가 필자의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게 됐다.

"여러분! 일본 국내에서 국제전화를 하면 요금이 너무 비쌉니다. 빨리 끊어주세요."

"하! 하! 하!...."

필자의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국가를 초월한 격의 없는 만남과 진솔한 대화의 장이었다. 뜨거운 분위기 속 카페 한 편에서는 시미즈(清水) 부인과 사토(佐藤) 부인 그리고, 필자의 아내가 잔잔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어서 디저트로 뜨거운 커피 한 잔 씩이 나왔다. 커피의 강렬한 향(香)이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최근 들어 필자가 커피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커피 잔을 든 시미즈(清水) 씨가 필자 옆으로 다가왔다.

기사본문 이미지
'커피는 문화다'고 강조하는 시미즈(淸水)씨
"장(張) 선생! 커피는 단순한 맛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일본의 커피는 일본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일본 국민들에게 품질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화가 일찍이 자리했던 것입니다."

시미즈 씨는 "세계에서 일본요리(日食)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음식만이 아닌 일본 문화를 접목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음식도 단순한 맛이 아닌 자국의 문화를 현지와 접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 잔의 커피에도, 한 잔의 술에도 그 나라의 문화가 스며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 잔의 술. 그것도 쓰나미(津波)에서 건져 낸 술-

술 한 잔의 의미를 재삼 인식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뜨거운 날씨처럼 좀처럼 식을 줄 모르던 열기(熱氣)는 밤이 이슥해 질 무렵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돌아오는 길 내내 '쓰나미(津波)에서 살아난 사케(酒)'의 여운(餘韻)이 길게 이어졌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