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로 이어지는 인연(因緣)

  •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 업데이트 2011-08-29  16:52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사람이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수 천 번의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데, 하물며 나라가 다르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필자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고베(神戶)에 살고 있는 '이와타 고하치(岩田耕八·68/ 前 후쿠오카 하얏트 호텔 회장)'씨다.

"변함없는 우정은 어떠한 보배보다도 존귀하다. 술책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진실한 우정을 맺고, 그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인생이 곧 빛나는 인생이다."
 
종교가이자 작가인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83)'씨의 <명언 100선>에 들어있는 '우정'에 대한 정의다. 필자와 '이와타(岩田)'씨는 이처럼 별다른 이해관계가 없이 20여 년 동안 존귀한 우정을 맺고 있다. 
 

기사본문 이미지
이와타 고하치 씨
 지난 3월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이라는 긴급 뉴스를 접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이와타(岩田)씨였고, 고베의 UCC커피 박물관을 가기 위한 정보 파악을 위해서 전화를 건 사람도 다름 아닌 이와타(岩田)씨였다. 그는 1995년 6,400여명이 목숨을 잃은 한신 대지진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덤으로 살고 있는 인생 아닙니까? 하루하루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부인과 함께 놀러 오세요."

이러한 이와타(岩田)씨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머릿속에 각인(刻印)된 4대 무서움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진 · 번개 · 화재 · 아버지'다. 일본 국민이 '후쿠시마' 지진 이후 아직도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음을 볼 때, 지진의 무서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들 결혼식에 초청받아   

 필자는 2007년 가을, 그의 아들 '이와타 고이치(岩田耕一·32)'군의 결혼식에 초대되어 부부동반으로 참석했었다. 신부는 재일교포인 '도쿠야마 미네코(德山峰子·30)'양이었다. 그날 결혼식에 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결혼식과 피로연을 마치고 나서 신부가 낭독하는 <부모님께 드리는 편지>였다. 결혼 축하객을 모두 울렸던 편지의 한 부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천국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딸 미네코(峰子)의 결혼식을 천국에서 보고 계시겠지요? 아버지가 안 계신 미네코의 삶은 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미네코가 되어 새 가정을 꾸리면서 더욱 굳건하게 잘 살겠습니다."

"장 선생! 어디 쯤 오고 있습니까?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고이치(耕一)군의 가족도 모두 점심식사 자리에 참여합니다."

기사본문 이미지
결혼식에서의 고이치군과 미네코양
 UCC(上島)커피 박물관을 돌아보던 필자는 이와타씨의 전화를 받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으려고 하다가 '포트 라이너(모노레일)'를 놓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약속시간을 30분 늦췄다. 미나미(南)공원 역에서 '포트 라이너'를 타고 '포트 아일랜드'의 부두를 지나 다시 산노미야(三宮)역으로 돌아왔다. 산노미야 역에서는 택시를 탔다. 호텔은 바로 고이치(耕一)군이 결혼식을 올렸던 신고베(新神戶) 역 근처의 호텔이었다.

“아! 오랜만입니다. 건강한 모습을 보니 반갑습니다. 부인도 좋아 보이십니다."

 선물은 이와타씨 가족 모두가 환호하는 김치를 준비했다. 서울-나고야-고베에 이르는 동안 제법 시간이 걸렸고, 37-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라서 포장을 단단하게 했으나 김치에서 냄새가 많이 났다. 갑자기 호텔 공기를 오염(?)시킨 김치냄새가 이상했던지 로비를 오고가는 일본사람들이 고개를 갸웃 뚱하면서 코를 벌름거렸다. 눈치 빠른 이와타씨는 거북해하는 필자의 손을 끌면서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했다. 약속 장소는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빌딩 지하의 아담한 레스토랑이었다.

 

또 다른 만남

 

 "아! 반갑습니다."

이와타씨의 부인과 아들 고이치(耕一)군, '도쿠야마 미네코(德山峰子)'에서 '이와타 미네코(岩田峰子)'로 바뀌면서 울먹이던 신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 갓 돌이 지난 딸 리코(莉子)가 필자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본문 이미지
우로 부터 이와타 고이치 군, 미네코 씨와 딸 리코

"아이가 아빠를 그대로 닮았군요. 이런 경우 한국에서는 국화빵이라고 합니다."

"국화 빵???"

온 가족이 아이를 쳐다보면서 합창하듯이 "국화 빵"을 반복하자 옆자리는 물론 레스토랑 종업원들도 가세하여 '국화 빵-' 했다. 행복한 웃음소리가  스테이크와 함께 구수하게 익어갔다.

 고베(神戶)는 특히 스테이크가 유명하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주방장의 모습에서 음식의 참맛을 예견할 수 있었다.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자마자 "과연-" 이라는 탄성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식사하는 동안 내내 4년 전의 결혼식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피로연장에서 벌어졌던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올려지기도 했다. 필자가 쓴 월간조선(2008년 1월호)의 <일본 결혼식 참석記>는 수 십 부가 복사되어 신부 측의 친인척들에게 모두 배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원본은 가보(家寶)로 보관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일부러 저희 결혼식에 참석해주시고, 잡지에 기고도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월간조선 2008년 1월호는 가보로 영원히 보관하겠습니다."

 고이치군은 어엿한 아버지가 되어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말을 했고, 필자 아이들의 이름까지 대면서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들의 인연이 아이들 세대로까지 내려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쨍-" 다 같이 맥주잔을 부딪쳤다.

 

커피점(珈琲店)을 향하여   

 이야기가 좀처럼 끝이 나질 않았다. 고베는 54km의 연봉을 자랑하는 700-900m의 롯코산(六甲山)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수질(水質)이 좋아서 커피 맛이 뛰어나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단체로 커피점(珈琲店)으로 가기위해 레스토랑을 나왔다. 목적지는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기타노초(北野町) 언덕길에 있는 니시무라(西村) 커피점 이었다.

 인생을 건너는데 있어서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음이랴. 이와타씨의 걸음걸이가 편해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아팠다. 니시무라 커피점은 이국(異國)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유럽 풍 건물들이 많은 기타노초(北野町)의 이진칸(異人館: 외국인이 사는 집의 총칭) 언덕아래 있는 명품관이라고 했다. 이진칸(異人館) 일대는 때마침 주말이라서 관광객들이 무척 붐볐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잘 정돈된 전통적 건축물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기사본문 이미지
기타노초(北野町)의 관광객들

 항구 도시 고베는 1867년 문호를 개방했다. 개항과 함께 약 27ha의 외국인 거류지가 항구근처에 만들어졌다. 서양 상관(西洋商館)의 건설이 시작됐다. 6년 후인 1873년에는 보다 진화된 도시계획에 의해서 유럽의 소도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풍경이 연출됐다. 1887년 이후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외국인들은 주거지를 전망이 좋은 야마테(山手)로 옮겼고, 기타노무라(北野村)가 새로운 주택지로 개발됐던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이진칸(異人館)은 영국인과 독일인 건축가에 의해서 설계된 목조양관으로 1887년과 1912년까지의 건축물들이다. 당초에는 100동(棟) 이상의 이진칸(異人館)이 있었으나 지금은 20동만이 남아있다. '기타노초(北野町)'는 1980년 주요 전통적 건축물 보존지구로 지정됐다

필자 일행은 강렬한 태양을 머리에 이고 '기타노초(北野町)' 언덕길을 올랐다. 구슬 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으나, 명품(名品) 커피에 대한 기대감으로 더위를 잊은 채 사람들의 흐름에 맞추어 행복한 발걸음을 이어갔다(계속).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