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츠보 씨(우)와 와타나베 씨
"장상인 씨! 오츠보(大坪)입니다. 안녕하세요? 전일, 나고야의 구메(久米) 씨로부터 한글로 쓴 메일이 왔습니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데 대해 놀랐습니다. 다음에 나고야에 가시면 전화를 걸어보세요. 구메 씨가 보낸 한글 메일을 첨부합니다."
필자의 칼럼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오츠보 시게타카(大坪重隆 · 70)' 씨의 메일 내용이다. 오츠보(大坪) 씨는 후쿠오카에 살고 있으면서 나고야 사람들과 필자의 가교(架橋) 역할을 해주고 있는 친절한 사람이다. 그가 보내온 '구메 쇼조(久米正三 · 64)' 씨의 한글 메일을 원본 그대로 공개한다.
<안녕하십니까, 久米입니다.
이미 12월이네요.
오래간만입니다만 변함없습니까?
밤비가 지나친 나고야는 오늘도 따뜻합니다.
지구전체도 따뜻한 탓인가, 정치나 경제까지 이상한 상태입니다.
한반도 정세가 마음에 걸립니다.
張씨의 「월간조선」칼럼은 매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업데이트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이유가 있습니까?
大坪 씨나 여러분의 근황을 아는 방법이 없어진다고 곤란하네요.
추운 계절이기 때문에, 감기 걸리지 마세요.
한글 연습에 협력해 주시고,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참으로 놀라울 만큼 발전한 한국어 실력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접하면서 말을 더듬거릴 수 있지만,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쓴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적은 "張씨의 「월간조선」칼럼은 매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업데이트가 없습니다"는 대목이다. 필자의 칼럼이 늦어진데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다. 한국의 독자들은 물론 일본의 독자들도 관심이 많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칼럼을 올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금할 수 없다. 2011년에는 더욱 분발하리라........
아무튼, 한국어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양국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까?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아나타(あなた)는 한국인'(2004년 초판/2007년 2쇄: 정신세계사>이라는 책을 접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는 주장 때문이다. 일본사람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의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전 구마모토 대학 언어학과 교수와' 박명미(朴明美)' 현 규슈산업대학과 시모노세키시립대학 한국어 강사가 공동으로 집필한 내용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특히,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교수는 살아온 삶이 다채로웠다. 만주 출생으로 도쿄대학 대학원 재학 중 아프리카에 통역원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비교 언어 연구를 시작했다. 나이지리아의 아바단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 아프리카 연구소에 18년간 재직했으며, 규슈의 구마모토(熊本)대학 언어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박명미 선생 역시 구마모토대학에서 일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시미즈(淸水) 교수를 만난 것이다.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교수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고대 이집트 언어는 현대 아프리카 언어와 같은 계통이며, 또한 영어는 독일어의 자매어로서 게르만 언어 중의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어는 한국어와 같이 한어(韓語)를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구려, 부여 등의 언어와 일본 오키나와의 류큐어를 포함하는 한어비교언어학(韓語比較言語學)의 탄생을 선언했다. 저자들의 주장은 필자의 눈과 마음을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반도 한인은 물론 열도 한인들은 공통 한고어(韓古語)로 의사소통을 해왔음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일본어의 뿌리는 한반도에 있으며, 반도한어의 화자(話者)들이 바다건너 일본열도로 이주함으로써 열도 환어의 화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또다시 둘로 나뉘어 서쪽에서는 류쿠어(琉球語)가 되고 동쪽에서는 일본어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산길(山路)에서 시작된 연구
이들의 연구는 산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타큐슈(北九州)에서 시모노세키(下關)를 가다보면 산길, 즉 산로(山路-福岡県北九州市八幡東区山路)라는 마을 이름이 있다. 이 산로(山路)의 발음이 'Sanji'다. 통상의 한자 발음으로 보면 'Sanro'이거나 'Yamaji'가 되어야 하는데 'Sanji'로 발음하는 것이 특이했다는 것이다. 두 학자는 'Sanji'의 발음이 '산길'의 한국 사투리인 '산질'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화산으로 유명한 규슈의 아소지(阿蘇路), 고베 앞바다에 있는 아와지(淡路)섬 등도 이러한 연유로 명명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산길(山路), 바닷길(海路)과 같은 맥락이다.
이밖에도 우리말과 일본어가 비슷한 경우는 너무나 많았다. 노루->노로(獐), 다발->다바(束), 더기->다케(岳), 독->도쿠리(德利) 등 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비교하였는데, 시미즈 교수팀은 5천 여 개의 유사한 단어를 찾았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하카다(博多, 후쿠오카)에서 유명한 전통 축제인 야마가사(山笠)에도 한국어의 흐름이 엿보인다.
야마가사(山笠)는 지금으로부터 770년 전인 서기 1241년(鎌倉時代)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하카다(博多)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이때 중국 송(宋)나라에서 귀국한 승천사(承天寺)의 국사(國師)가 사람들이 맨 가마 같은 틀(施餓鬼棚)을 탄 채 감로수를 뿌리고 다니면서 전염병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 가마가 오늘날 ‘야마가사(山笠)’의 형태로 발전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후쿠오카에는 7월 1일부터 도심 곳곳에 장식야마(山)가 설치되고 갖가지 의식이 거행되지만 ‘야마가사’의 하이라이트는 7월 15일 새벽이다.
그날은 참가자는 물론이고 구경꾼들까지 거의 밤을 지새운다. 새벽 두 시부터는 교통도 차단되고 신사 주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인원이 수 십 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축제의 기원과 우리와 관련이 많다는 것이다. 고대어 연구가 박병식 씨는 '일본어의 비극(1987년, 평민사)'이라는 책에서 야마가사(山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린 바 있다.
"가야족의 일본 상륙은 기원전 500년 무렵이다. 규슈(九州) 북부지방에는 '야마'가 붙은 지명이 많다. 현 고령(경북)지방에 해당되는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이 가야국 최초의 맹주(盟主)였다. 일본인들은 '미오사마국'을 '미오 야마코쿠'라고 한다. '야마가사(山笠)'는 '야마에 가자'라는 우리말에서 [ㅈ]이 [ㅅ]으로 변화되어 생긴 말(야마가자->야마가사)이다. '야마가사'는 고향을 그리는 가야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말로서,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절절한 염원을 토로한 절규의 목소리다"라는 것이다(필자 칼럼 No.14 참조).
한민족(韓民族)이며 서로 피를 나눈 형제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교수와 '박명미(朴明美)' 선생은 "한국과 일본은 단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이웃나라라는 영역을 넘어 원래는 같은 한민족(韓民族)이며 서로 피를 나눈 형제나라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박명미 선생은 <아나타(あなた)는 한국인>의 에필로그에서 '이 책이 탄생한 곳이 공교롭게도 윤동주 시인이 죽음을 맞은 후쿠오카(福岡)라는 사실'에 숙연해 했다.
"단지 한국어로 시를 썼다는 것만으로 죄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죽음까지 맞이했으니....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 이 일을 했더라면 바로 사형감입니다....선배님(윤동주)께 이 책을 바칩니다."
시대는 변했다. 한류(韓流)와 일류(日流)가 서로 교차되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위해 함께 손잡고 뛰어야 할 것이다. 희망찬 2011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기대를 해본다.
필자의 칼럼에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오츠보 시게타카(大坪重隆 · 70)' 씨의 메일 내용이다. 오츠보(大坪) 씨는 후쿠오카에 살고 있으면서 나고야 사람들과 필자의 가교(架橋) 역할을 해주고 있는 친절한 사람이다. 그가 보내온 '구메 쇼조(久米正三 · 64)' 씨의 한글 메일을 원본 그대로 공개한다.
<안녕하십니까, 久米입니다.
이미 12월이네요.
오래간만입니다만 변함없습니까?
밤비가 지나친 나고야는 오늘도 따뜻합니다.
지구전체도 따뜻한 탓인가, 정치나 경제까지 이상한 상태입니다.
한반도 정세가 마음에 걸립니다.
張씨의 「월간조선」칼럼은 매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업데이트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이유가 있습니까?
大坪 씨나 여러분의 근황을 아는 방법이 없어진다고 곤란하네요.
추운 계절이기 때문에, 감기 걸리지 마세요.
한글 연습에 협력해 주시고,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참으로 놀라울 만큼 발전한 한국어 실력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접하면서 말을 더듬거릴 수 있지만,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쓴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지적은 "張씨의 「월간조선」칼럼은 매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업데이트가 없습니다"는 대목이다. 필자의 칼럼이 늦어진데 대해 걱정하는 마음이다. 한국의 독자들은 물론 일본의 독자들도 관심이 많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칼럼을 올리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금할 수 없다. 2011년에는 더욱 분발하리라........
아무튼, 한국어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실은 양국의 미래를 위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까?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아나타(あなた)는 한국인'(2004년 초판/2007년 2쇄: 정신세계사>이라는 책을 접하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어의 뿌리는 한국어라는 주장 때문이다. 일본사람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의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전 구마모토 대학 언어학과 교수와' 박명미(朴明美)' 현 규슈산업대학과 시모노세키시립대학 한국어 강사가 공동으로 집필한 내용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특히,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교수는 살아온 삶이 다채로웠다. 만주 출생으로 도쿄대학 대학원 재학 중 아프리카에 통역원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비교 언어 연구를 시작했다. 나이지리아의 아바단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 아프리카 연구소에 18년간 재직했으며, 규슈의 구마모토(熊本)대학 언어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박명미 선생 역시 구마모토대학에서 일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시미즈(淸水) 교수를 만난 것이다.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교수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고대 이집트 언어는 현대 아프리카 언어와 같은 계통이며, 또한 영어는 독일어의 자매어로서 게르만 언어 중의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어는 한국어와 같이 한어(韓語)를 어머니로 해서 태어난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구려, 부여 등의 언어와 일본 오키나와의 류큐어를 포함하는 한어비교언어학(韓語比較言語學)의 탄생을 선언했다. 저자들의 주장은 필자의 눈과 마음을 더욱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반도 한인은 물론 열도 한인들은 공통 한고어(韓古語)로 의사소통을 해왔음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 일본어의 뿌리는 한반도에 있으며, 반도한어의 화자(話者)들이 바다건너 일본열도로 이주함으로써 열도 환어의 화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또다시 둘로 나뉘어 서쪽에서는 류쿠어(琉球語)가 되고 동쪽에서는 일본어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산길(山路)에서 시작된 연구
이들의 연구는 산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타큐슈(北九州)에서 시모노세키(下關)를 가다보면 산길, 즉 산로(山路-福岡県北九州市八幡東区山路)라는 마을 이름이 있다. 이 산로(山路)의 발음이 'Sanji'다. 통상의 한자 발음으로 보면 'Sanro'이거나 'Yamaji'가 되어야 하는데 'Sanji'로 발음하는 것이 특이했다는 것이다. 두 학자는 'Sanji'의 발음이 '산길'의 한국 사투리인 '산질'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다. 화산으로 유명한 규슈의 아소지(阿蘇路), 고베 앞바다에 있는 아와지(淡路)섬 등도 이러한 연유로 명명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산길(山路), 바닷길(海路)과 같은 맥락이다.이밖에도 우리말과 일본어가 비슷한 경우는 너무나 많았다. 노루->노로(獐), 다발->다바(束), 더기->다케(岳), 독->도쿠리(德利) 등 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들을 비교하였는데, 시미즈 교수팀은 5천 여 개의 유사한 단어를 찾았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하카다(博多, 후쿠오카)에서 유명한 전통 축제인 야마가사(山笠)에도 한국어의 흐름이 엿보인다.
야마가사(山笠)는 지금으로부터 770년 전인 서기 1241년(鎌倉時代)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하카다(博多)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나갔다. 이때 중국 송(宋)나라에서 귀국한 승천사(承天寺)의 국사(國師)가 사람들이 맨 가마 같은 틀(施餓鬼棚)을 탄 채 감로수를 뿌리고 다니면서 전염병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 가마가 오늘날 ‘야마가사(山笠)’의 형태로 발전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후쿠오카에는 7월 1일부터 도심 곳곳에 장식야마(山)가 설치되고 갖가지 의식이 거행되지만 ‘야마가사’의 하이라이트는 7월 15일 새벽이다.
그날은 참가자는 물론이고 구경꾼들까지 거의 밤을 지새운다. 새벽 두 시부터는 교통도 차단되고 신사 주변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인원이 수 십 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축제의 기원과 우리와 관련이 많다는 것이다. 고대어 연구가 박병식 씨는 '일본어의 비극(1987년, 평민사)'이라는 책에서 야마가사(山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린 바 있다.
"가야족의 일본 상륙은 기원전 500년 무렵이다. 규슈(九州) 북부지방에는 '야마'가 붙은 지명이 많다. 현 고령(경북)지방에 해당되는 '미오사마국(彌烏邪馬國)'이 가야국 최초의 맹주(盟主)였다. 일본인들은 '미오사마국'을 '미오 야마코쿠'라고 한다. '야마가사(山笠)'는 '야마에 가자'라는 우리말에서 [ㅈ]이 [ㅅ]으로 변화되어 생긴 말(야마가자->야마가사)이다. '야마가사'는 고향을 그리는 가야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말로서,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절절한 염원을 토로한 절규의 목소리다"라는 것이다(필자 칼럼 No.14 참조).
한민족(韓民族)이며 서로 피를 나눈 형제
'시미즈 기요시(淸水紀佳)' 교수와 '박명미(朴明美)' 선생은 "한국과 일본은 단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이웃나라라는 영역을 넘어 원래는 같은 한민족(韓民族)이며 서로 피를 나눈 형제나라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박명미 선생은 <아나타(あなた)는 한국인>의 에필로그에서 '이 책이 탄생한 곳이 공교롭게도 윤동주 시인이 죽음을 맞은 후쿠오카(福岡)라는 사실'에 숙연해 했다.
"단지 한국어로 시를 썼다는 것만으로 죄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그곳에서 죽음까지 맞이했으니....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 이 일을 했더라면 바로 사형감입니다....선배님(윤동주)께 이 책을 바칩니다."
시대는 변했다. 한류(韓流)와 일류(日流)가 서로 교차되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위해 함께 손잡고 뛰어야 할 것이다. 희망찬 2011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기대를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