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페 입구에 서있는 건담 로봇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 Z......목숨이 아깝거든/ 모두 모두 비켜라/ 마징가 쇠돌이/ 마징가 Z"
옛날에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던 만화 영화 '마징가 Z'의 주제가이다. 개인의 취미는 나이와 관계없는 것 일까? 어린이가 아닌 50대 후반의 나이에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 일본인이 있다. 도미타 카츠나리(富田一成 · 56)라는 사람이다. 그는 한 때 유명 무역회사의 서울 지사에 근무했으나 지금은 현해탄을 넘나들며 경영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봄 종로의 한 노래방에서 그에게 노래 한 곡을 부탁하자 '마징가Z'의 주제가를 우리말로 능숙하게 불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은하철도 999'는 물론 '태권V'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목청을 높였다. 놀라움 그 자체다.
일본에서 72-74년에 걸쳐 92회나 방영되었던 '마징가 Z'는 시청률 20%를 상회했던 인기 작품이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인기가 너무 좋아서 원작이 일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방영 수 십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마징가 Z'의 주제가를 완벽하게 부르는 성인(成人)은 흔치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처럼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도미타(富田) 씨를 얼마 전 도쿄에서 만났다. 그는 필자를 보자마자 도쿄 역을 지나 아키하바라(秋葉原)로 안내했다. 아키하바라(秋葉原)는 우리의 용산 전자단지 같은 곳이다. 한 때 한국인의 관광코스이자 견학코스이기도 했던 아키하바라- 이제 신축건물들이 우뚝우뚝 자리하여 그 모습을 달리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중국자본들이 대거 이곳에 파고들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일본 시장을 소리 없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필자는 도미타(富田) 씨를 따라 전자 상가 골목길을 돌다가 기차 길 아래의 허름한 카페 앞에서 발을 멈췄다. 이름 하여 건담(Gundam) 카페다. 평범한 음식점처럼 보인 이 카페에는 37도의 폭염(暴炎)인데도 기다리는 손님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을 잘 서기로 유명한 일본인이라지만, 이토록 푹푹 찌는 무더위 속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올 4월 오픈, 15만 명 다녀가

필자도 도미타 씨와 함께 줄을 섰다. 저녁 약속이 있어서 정장을 한 탓에 온몸에서 땀이 주르르 흘렀다.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약 30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30분을 기다려 음료수 한 잔 한다는 자체가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등줄기의 땀은 하염없이 흘렀고, 필자 뒤의 줄은 계속 길어졌다. 기다리는 얼굴마다 짜증스러움은 없었고, 카페 안을 기웃거리는 모습들이 사뭇 진지했다. 올 4월 문을 열었을 때는 4시간 씩 기다렸다고 했다.
30분 쯤 되어 안내 직원이 지정해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다지 독특한 인테리어도 아니었다. 그런데, 더위를 식히면서 하나하나 뜯어보니 '건담'의 분위기가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40평 남짓한 카페의 벽에는 TV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화면에서 '건담'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건담의 역사는 물론 제작과정, 설계도면까지 소개되었다. 그리고, 왼쪽 벽에는 '건담 시리즈'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음식 메뉴도 '건담 시리즈'와 같은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대목이다.
이 카페의 책임자인 '신 유스케(眞洋介 · 50)' 씨는 "이 곳은 단순한 유원지(遊園地)의 개념이 아니라 손님들의 추억에 서비스를 더한 건담의 모노가다리(物語; 이야기)"라고 했다.
종업원 50명이 15명 씩 교대로 근무하는 이 카페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식사를 하는 식당의 기능이지만,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는 칵테일·사케 등을 마시는 바(bar)로 바뀐다고 했다.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샐러리맨들이 추억을 떠올리며 가볍게 한 잔 하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서 돈을 번다고는 하나,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으면서 영업행위를 하는 것은 그렇게 지탄받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들이 스스로 즐겨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여름의 격투(激鬪)MS 카레라이스
이 카페에는 여름철을 맞아 특이한 메뉴가 등장했다. 통상적인 카레(라이스)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건담 시리즈와 같은 격투MS가 색깔과 맛으로 대결을 벌이는 형국의 이벤트다. 먼저 '아츠가이 카레(라이스)'와 '건담카레(라이스)'다. 값은 매운 맛의 '아츠가이 카레'가 980엔, 순한 맛의 '간담카레'가 890엔이다. 검은색과 하얀 색의 대결은 물론, 매운 맛과 순한 맛의 대결이기도 하다. 건담의 마니아들은 음식의 이름과 모양에서부터 호기심이 발동된다. '그린색의 카레'와 '빨간 색' 카레의 대결도 흥미롭다. 옆자리의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쿡쿡' 웃었다. 점심 세트인 PILOT LUNCH 메뉴도 재미있었다. '햄버거+ 탄막(彈幕)사라다+마늘 토스트'다, 손님들은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서 눈을 TV화면에 맞췄다. 새로 나온 건담 시리즈의 예고편 등 건담에 대한 정보가 계속적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손님들의 추억에 서비스를 더했다"는 '신 유수케(眞洋介)' 씨의 말에 공감이 갔다. 주말이면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건담의 역사는 물론 자신의 추억을 소개하면서 음식을 즐긴다. 그리고, 돌아갈 때는 과자, 빵, 장난감, 건담 티셔츠 등 선물을 한 보따리 씩 안고 간다. 앞으로 건담 카페 학습장도 만들 예정이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까?
기동전사(機動戰士) 건담

기동전사(機動戰士) 건담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작품이다. 여기에는 '도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李 · 69)' 감독의 역할이 컸다.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오오츠카 에이지(大塚英志, 1958- )' 씨는 <만화 ․ 애니메이션>이라는 책에서 '도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李)'와 '기동전사 건담'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도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李)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기동전사 건담>은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작품이다. 1970년 대 후반에 일었던 애니메이션 붐의 중심은 우주전함 '야마토'였다. 그 붐을 이어받아 1980년대에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견인차가 되었던 것이 <기동전사 건담>이다. 이 시기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둘러싼 상황은 크게 변하게 된다. 그 커다란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이 바로 도미노 요시유키다."
도미노(富野) 씨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린 사람임에 틀림없다. 지난 달 한국에 온 도미노 감독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형 로봇이 전쟁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다 보니 우주전쟁에 까지 발전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30세가 된 건담은 더 이상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건담은 더 이상 안 한다"면서도 "건담의 연장선상에서 같은 장르를 이어갈 것이다"고 말했다. 건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건담에도 항상 성공적 요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동전사 건담>의 최대 문제점은 '프로그램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연령층과 스폰서가 바라는 연령층이 어긋났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령의 갭(gap)은 의외로 빨리 메워지기 시작했다. <기동전사 건담>의 프라모델(건프라)이 발매되자 폭발적으로 팔렸다. 이 제품을 출시했던 회사는 당초 후원자였던 '클로버'가 아니라 대형 완구회사인 '반다이(BANDAI)'였다. 이를 계기로 애니메이션의 내용과 상품의 연령층이 일치하기 시작했다. 거대 <로봇 애니메이션=어린이용 상품>이라는 도식이 무너진 것이다. 이것은 애니메이션 MD(merchandising) 역사에 있어서 대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大塚英志의 만화 ․ 애니메이션).

참으로 재미있고 독특한 건담이야기다. 필자는 '신 유수케(眞洋介)' 씨, 도미타(富田) 씨와 함께 생맥주를 마시면서 담소했다. 필자는 '이 카페가 한국에 진출하면 어떻겠느냐'고도 물었다.
"글쎄요. 한국 사람들도 가끔 저희 카페에 오십니다만, 한국에 건담 팬이 얼마나 될까요? 일단, 건담 팬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본의 분위기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일본 방식이 우리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통해서 상품화를 도모하는 창의성은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필자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카페를 나섰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늘어선 손님들의 줄이 더욱 길어졌다.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은 듯 밝은 표정으로......
























































